‘왜 사는지’보다 시급한 문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7)
현대를 사는 사람이라면, 삶의 EASY MODE라는 욕구 충족을 위해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하는 것의 융합(가령, 좋아하는 거 하면서 돈 벌기!)을 원한다고 생각한다.
만약 본능과 반본능이라는 양극단을 지닌 일종의 리트머스 시험지를 상상할 수 있다면, 하고 싶은 것은 보다 본능에 가까운 축에 놓일 것이고, 해야 하는 것은 그 반대의 극단에 위치할 것이라 예상할 수 있다. 그만큼 하고 싶은 것은 순수한 내적 동기에 의해 어떠한 대상을 목표로 욕구하게 되며, 이를 충족하기 위한 외부 수단을 자발적으로, 보다 기꺼이 탐색하게 만든다. 정확한 개념 규정은 쉽지 않으나, 이것이 하고 싶은 것에 대한 하나의 정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반하여 해야 하는 것은 반본능적 성격을 띤다. 즉, 내적 동기가 꼭 선행될 필요는 없다. 해야 하는 것은 대개 외부로부터 목표가 부여되며, 그 이후에야 비로소 내적 동기가 이를 따라가도록 자신의 신체와 정신을 조율하게 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인간 사회에서 이른바 ‘성공한 사람’이 좋은 태도를 지닌다고 평가되는 이유도 설명될 수 있다. 그들은 끊임없이 자신의 정신과 신체를 특정한 목표에 맞추어 정렬하려는 노력을 지속하기 때문이다.
결국 이 둘의 핵심적인 차이는 반응의 방향에 있다. 해야 하는 것은 외부로부터 주어진 과제를 출발점으로 하여 내부의 고뇌와 계획 수립을 촉발한다. 이 지점에서 인간은 다른 생명체와 구별되는 특징을 드러낸다. 목표 달성을 위한 사고와 준비의 과정을 보다 장기적인 호흡으로 유지할 수 있다는 점이다. 마치 가족을 위해 일정 기간의 식량을 확보하고자 사슴을 기다리는 사냥꾼처럼, 인간은 보상을 전제로 한 보다 여러 행위를 지속할 수 있다. 물론, 해야 하는 모든 것에 보상이 반드시 존재하는 것은 아니나, 부수적 결과로서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한편, 하고 싶은 것은 일반적으로 삶 내부에서 자발적으로 발생한다. 인간은 스스로 목표를 설정하고, 때로는 ‘해야 하는 것’보다 더 높은 수준의 목표를 설정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 달성을 위하여 필요한 외부 수단을 능동적으로 수집한다. 이 과정에서 보상은 외부적 성취보다도 내부적 충족에 더 크게 의존하며, 그 충족의 난이도는 하고 싶은 것의 성격에 따라 상이하게 나타난다.
종합하면, 이러한 반응 방향의 차이는 왜 해야 하는 것이 일반적으로 더 어렵게 인식되는지를 설명해 준다. 인간 개체가 필연적으로 외부로 에너지를 발산하는 존재라는 점을 고려할 때, 내적 에너지의 응축을 선행적으로 요구하는 ‘해야 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더 큰 부담을 수반하기 때문이다. 다만 이는 일반적인 관찰에 불과하다. 보상의 측면에서 보면 오히려 ‘하고 싶은 것’이 더 어렵게 될 수 있다. 하고 싶은 것이라는 것을 한다는 것 자체로부터 대부분의 충족 상태가 찾아온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 실현이 시간적 지연을 전제로 하는 경우, 내부적 충족감이 쉽게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하고 싶은 것의 달성이 더 어려워질 수 있는 것이다.
좀 더 단순화를 해본다면, 이 둘은 어딘가 맞닿아 있다. 하고 싶은 것이라고 마냥 자의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닌 경우가 생긴다. 즉, 때로는 외부 자원의 확보와, 그 자원들 간의 연결을 파악할 수 있는 통찰을 요구한다. 마치 해야 하는 것을 수행하는 과정을 공유하지 않는가. 또, 해야 하는 것 또한 반드시 반본능 축에서만 순환하는 것은 아니다. 앞서 잠시 살펴봤듯, 하고 싶은 것의 기원이 외부 자극의 내면화에 있을 수 있는 가능성을 고려한다면, 해야 하는 과정을 통해 새로운 하고 싶은 것이 형성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 글의 두 가지 논쟁 대상은, 사실 서로 병존하며 서로를 필요로 하는 관계일 수 있음을 완벽히 도외시할 수 없다. 우리는 벌써 본능적으로,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살고 있다. 그러니, 이미 이룬 것일 수도 있는 융합을 공허히 바라기만 하는 것보다, 지금 내가 그 융합을 어떻게 이루며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 그 내용을 한번 풀어헤쳐 보는 것은 어떠한가?
그러한 해석 작업(해야 하는 것)이 수반된다면, 거기서 또 수많은 하고 싶은 것을 다시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좀 더 살아가고자 하는 내적인 동기를 가지게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