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 맘, 예쁜 말로 말하기
예쁜 말, 미운 말 양파
어쩌면 누구나 다 들어봤을 작은 실험
장소, 온도, 습도 다 같은 공간에서
좋은 말만 계속 들려주었을 때와 기분 상할 말만 했을 때
어떤 양파에 싹이 트는지에 대한 실험이다.
대체로 실제로 해본 적은 없고 학교 교육을 통해 같이 결과는 모두 알고 있을 것이다.
물론 환경과 양파 크기가 각각 달라서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찾아본 블로그, 유튜브 영상 등 많은 실험에서 모두 예쁜 말 양파가 싹이 트는 결과로 이끌지 않았다.
음 예쁜 말이 아니라 그때의 말투 억양이나 세기인 소리에 따라 차이가 있는 것일까
그럼 시끄러운 곳에 놓인 양파와 조용한 곳에 놓인 양파로도 실험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살짝 웃음이 나지만 이 역시 근거는 명확하지 않다.
실험은 소리가 아니라 말표현에 집중하고 있다.
애초에 같은 환경이 아니여서 비교가 어려울 실험임에도 보이지 않는 말하기의 형태를 생명력을 예시로 들어 예쁜 말하기를 강조하려는 걸까.
이 실험의 과정은 양파(상대방)에게 꾸준히 예쁜 말을 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단순히 표면적으로 예쁜 말을 하는 행위만 볼게 아니라 우리는 알게 모르게 양파가 싹이 트는 것을 기대하는 마음을 가지고 며칠 동안 실험하게 될 것이다.
양파가 싹이트고 자라길 기대하는 마음은 상대방을 응원하는 마음이라고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다. 결국 상대방을 위하는 마음에서 시작된 배려 있는 말하기가 곧 실험에서 말하고 싶은 예쁜 말의 의미가 아닐까.
대화를 할 때 말이 주는 분위기는 사람에 따라 정말 다르다.
눈을 쳐다볼 때의 시각과 비언어적 표현을 제외하고 상대방의 말 빠르기와 목소리 톤과 크기 혹은 사투리 등이 주는 분위기로 그 사람이 어떤 성향을 가지는지 우리는 잠깐의 대화를 통해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다.
특히 처음 만나는 이와 대화할 때 어떤 사람인지 예측할 수 있는 건 말습관이라고 생각한다. 평소에 자신이 없거나 조금 눈치를 많이 보는 성향의 사람은 물음표 던진 의문형을 많이 쓰기도 하고 대게 느낌표 있는 어휘를 사용하면 자신감 있는 사람일 지도 모른다. 목소리의 떨림으로 사람의 진심을 판단할 수 있고 단어 사용에 따라 어떤 성향인지 대충 파악할 수 있다. 물론 실제 성격과 선입견을 별개로 말습관만 잡아내면 그렇다는 것이다.
나는 말끝을 흐린다는 피드백을 많이 받았다. 지금 와서 그 순간들을 꼬집어 보면 알바를 할 때도 발표를 할 때나 대화를 할 때도 심지어 단순한 음식 주문을 할 때도 말 끝을 하나의 온점으로 마무리하진 않은 거 같다.
...
자신감 혹은 자존감이 부족해서 그럴까 내 얘기를 하는 게 어렵다고 느끼는 순간부터 타인과 소통하는 게 자연스럽지는 않았다.
좋은 생각이 있으면 조급한 마음에 상대방의 말을 끊고
생각난 대로 내 말을 하거나 더 넓은 시야를 갖지 못해서 누군가에게는 내 말이 배려 없는 말이 된 적도 많았다.
그리곤 집에 와서 '아 이 말은 하지 말걸' 후회하는 일도 적지 않다. 의도치 않게 말로 상처를 줄 수도 받을 수도 있겠다는 걸 와닿은 뒤 대화하는 것이 조심스러워졌다.
대화를 하다 보면 청자의 마음은 양파의 모습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다. 싹트고 있는지 상하고 있는지 원래 상처가 난 양파였는지 그저 순간순간을 주고받으며 소통하게 된다.
미운 말을 하는 사람 역시 그 말을 듣는 사람 마음만큼 편하지 않을 수도 있다.
단순히 편한 대화를 하고 싶다. 예쁜 말로 말하고 예쁜 마음으로 듣고자 하면 우리는 어떻게 변할 수 있을까.
그래서 '말', '언어'에 대해 궁금해졌다. 아니 더 배워야겠다 싶다. 이 말은 어떤 의도로 만들어졌는지 이 상황에 사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왜 어떤 사람들은 이런 표현을 자주 사용하는 것일까. 말하는 것보다 생각하는 것이 더 편한 나에게 눈에 보이는 글로 어휘 하나하나 바라보려 한다.
어쩌면 나쁜 말 듣고도 변하지 않는 미운말 양파가 더 단단한 애일지도 모른다. 예쁜 맘으로 들어서 밉지 않은 말로 받아들였을까. 가끔 미운말 양파의 마음에 초점을 맞춰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