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의 말

관점을 다르게 보면 생각나는 사람

by 생각 덩어리


띵동


"안녕하세요~"


편의점 일을 하다 보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또 가벼운 말들을 주고받다 보면 나름의 친한 단골 손님이 생기고 어떤 일을 하는지 알게 된다.

그들의 말투나 톤, 음높이, 사용하는 단어들을 보면 직업적 특성이 다 드러나 있는 거 같다.


아이들을 대하는 태권도 관장님은 음높이가 높고 음 길이를 길게 끈다거나. 현장에서 일하시는 분들의 큰 목소리, 서비스직을 하는 분들의 나긋나긋한 목소리, 빠르기 등 많은 시간 동안 생활을 하며 살아가기 때문에 말투에도 남아있구나 생각했다. 말표현은 각자의 환경에 따라 다르고 이는 화법에 반영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은연중 사용하는 단어들도 전공이나 직업에 연관되어 있을 것이다. 대학생활을 생각해보면 동기들과 가볍게 얘기할때 전문 단어로 상황을 비유하곤 했다.


다른 예시로 야구 선수들은 일상생활에서도 불안한 상황일 때 '2 아웃 풀카운트'라고 예시를 듣기도 하고 건축학과 친구랑 대화했을 때는 준비가 아직 덜 됐다는 말을 '아직 설계도 안 짰어'라고 말하곤 했다.

업무를 할 때 쓰는 전문적인 말이나 전공에서 배운 표현들을 근무 중이 아닐 때도 자연스럽게 사용하게 다.


이 같이 전공이나 일하는 환경에서 나오는 화법은 나의 많은 시간에 쓰이게 된다. 당연한 말이지만 환경은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더욱 깊게 스며들며 앞으로의 영향을 줄 것이다.


그리고 관념에도 영향을 준다.


보이는 직업이라 항상 관리하고 꾸며야 하는 사람이라면 자신과 가까운 사람이 자기 관리를 하지 않을 때 더 큰 아쉬움을 느낄 것이고, 손이 빨라야 하는 맛집 사장님은 어쩌다 행동이 느린 사람을 보면 타인보다 더 답답하다고 느낄지도 모른다. 또 운동선수들은 앉아서 많은 시간을 쏟고 있는 이들에겐 게으르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은연중에라도 말이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일하는 환경, 지금 하고 있는 직업은 곧 나의 앞으로의 모습을 형성하고 업무의 특성은 나의 정체성에 더욱 자연스럽게 고착화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말 습관으로 나타나는게 아닐까. 결국 아직 전공이나 직업은 정체성이라는 걸 부정하기 어렵다.




어느 날은 물리학 책에 빠져있을 때 건축학과 친구에게 천장을 가만히 보고 4차원은 왜 될 수 없는 건지 물어봤다.


그는 친절하게 '세 가지 모서리가 모여서 3차원 공간이 되는 건데 모서리 하나가 더 늘어나면 그대로 펼쳐져서 면이 되잖아. 그니깐 4차원은 될 수 없어'라고 말했다.

3차원 세상에서 4차원은 2차원이 되는 건가

그럼 '브이에 나오는 4차원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쓸모없는 사람들인 거야?'


갑자기 툭 말을 뱉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흐름에 맞지 않는 뜬금없는 소리를 했구나 생각한다. 관점이 달라졌던 순간인가 싶다.

건축학적인 답변을 인문학적으로 받고 이를 비관적으로 물어봤다.


내가 경험한 전공이나 직장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겪는 순간의 사건을 다른 시점으로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


앞선 경우를 다르게 생각하면 자기 관리를 많이 하지 않아도 풍기는 분위기가 멋있어 보이는 사람이 있고 행동이 느린 사람을 보고 시야가 넓어 꼼꼼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 창작을 하는 사람은 운동선수의 규칙적인 루틴이 멋있어 보여서 나름의 명확한 틀을 정하게 될 수도 있고 영상을 찍는 사람은 순간순간의 예쁜 모습을 잘 파악할 수 있지 않을까.



사람은 어쨌든 내가 변화하고 싶다고 생각할 때 성장을 하는 것이니 모든 사람에게서 배울 점은 분명히 있다.

나도 누군가에게는 배우고 싶은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많은 경험을 겪은 사람들은 단단하다는 말이 이해가 되었다. 여러 관점으로 시야가 트이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생각이 열리고 여유가 생기면서 판단력이 커지는 거구나.




또 건축학적인 사고를 인문학적으로 생각하면서 위로를 받았던 경우가 있다.


한동안 마음속 깊이 외로움이 가득해서 '나를 알아줘'라고 속으로 목청껏 소리친 적이 있다. 분명 주변에는 당장 옆에 있어줄 예쁜 친구들이 있지만 그 친구들에게 우울한 감정이 옮을까 봐 또 피곤할까 봐 회피하고 그렇게 나만에 세계에 깊이 빠졌다. 모든 일을 하면서도 표정 없이 우울한 얼굴로만 달고 다녔던 거 같다.


건물 외관이 왜 그런지 파악하려면 건물 내관의 구조를 봐야 이해할 수 있다고 한다. 나를 알아달라고 내 내관에 들어와 줘 소리치는데 다 쓰러질 것 같이 우중충해 보이는 건물에 누가 들어가서 내면의 구조를 파악할 생각을 할까.

스쳐 지나갔던 사람들의 눈에는 아마 사람 없는 폐건물로 보였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지도에 안 보이는 곳을 찾아와 먼지를 털어주고 전등을 갈아준 예쁜 사람들이 있다.

불이 켜지니 고마운 이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들 덕분에 화려하진 않아도 늘 깨끗하고 편안할 집의 모습으로 차곡차곡 짓고 싶어진다. 봄이 오면 꽃 향기가 돌게 자그마한 꽃밭을 관리하고 눈이 오면 미끄러지지 않게 집 앞을 쓸고 말이다.


앞으로는 외관이 아닌 밥 짓는 냄새로 사람들의 발걸음을 멈출 수 있는 따뜻한 공간이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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