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의 말

굳이 설명을 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

by 생각 덩어리

아니.. 뭐

'그냥-'



우리가 일상생활에 많이 사용하는 단어이다.

그렇기에 여러 상황에서 쓰이게 된다.


"나 아직 여기 그냥 있어."

그 자리에 계속 그대로 있다는 뜻으로

'어떠한 변화가 없음'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냥 그렇게 했어"

가장 많이 쓰이게 되는 경우인데 의도는 상관없이 나의 마음이 우선시되어 실행하고 있다는 뜻으로

'아무런 대가 또는 의미 따위가 없이'의 의미도 있다.


어원에 대해 찾아보니 19세기부터 '그-냥'으로 불렸다고 한다.

아쉽게도 이 전에 남아있는 기록은 없다. 대신 '그냥저냥'의 또 다른 부사가 있는 것처럼,

'그-' , '저-'와 연관되어있지 않을까 예측하고 있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가벼운 느낌으로 무난하게 사용하기에

상황, 분위기에 따라 적절하게 써야 한다.



예를 들어 회사에서 내가 실수를 한 상황에서 상사가 나의 행동의 직접적인 이유를 듣고자 할


"이거 왜 이렇게 했어?"

"죄송합니다. 그냥요"


진지하고 무거운 상황에서 사용하면 듣는 사람은 황당해하며 성의가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것이며 이를 회피한다고 생각해 책임감 없는 모습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행동의 이유를 듣고자 하는 상대방에게 그것을 언급하지 않다는 것은 상대를 무시하는 것처럼 느껴질 것이다.

아무 의미를 내포하고 있지 않는 '그냥'이라는 표현은 이 상황에서는 성의 없는 사람으로 보인다.





왜 성의 없이 느껴질까.


오롯이 그 상황의 나의 감정과 바로 직결되어 표현할 수 있기에

타인이 나의 행동의 의미를 찾아내야 하기 때문일까.


짧은 찰나에 상대방은 내가 힘든 일이 있거나 몸에 힘이 없거나 속이 불편해서 혹은 할 준비가 안 돼서 아니면 말하기 조심스러운 게 있는 것일까 등 모든 의미를 다 포함하며 유추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짧은 순간 이해하기 어려우니

'아 이 업무에 대해 별 생각 안 했구나'

태도의 문제로 바라보게 된다.


결국 타인이 내가 한 행동에 이유를 찾야 하는 과정 때문에 배려가 있는 행동은 아닐 것이다.




반면에 이유 따위는 중요하지 않고 내가 관심을 가지고 있음을 표현할 때 사용하면 긍정적인 느낌을 받을 수도 있다. 자신도 모르는 복잡한 감정을 에둘러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일까. 기분이나 감정을 굳이 설명할 이유가 없이 단순히 내가 하고 싶을 때 '그냥'이라고 표현하는 경우 말이다.


아마 내 취향이 아직 확고하지 않고 마냥 다 좋을 때, 혹은 기분 따라 하고 싶은 날일 때, 내 감정이 부끄러워 숨기고 싶을 때 등 여러 복잡한 감정과 이유가 있을 수도 있다.

그리고 때로는 적절히 가벼운 상황에서의 쓰임은 낙천적이며 밝은 느낌을 받는다.



난 '그냥' 네가 좋아.

(이유는 찾을 필요 없을래 너라는 사람이 좋나 보지)



'그냥' 귀여워

(내가 느끼는 귀여움의 포인트가 있나 보지)



'그냥' 재미있을 거 같아

(내가 흥미롭게 느낄 만한 요소가 있나 보지)

긍정적인 분위기의 '그냥'은 상대방에게 자신의 취향에 대해 자연스럽게 말하게 되는 것 같다.





그리고 그렇게 '그냥'의 사람이 된다.

타인에게 인정을 바라지도 어떠한 의미를 찾을 필요 없는 사람 그대로 말이다.



나는 생각이 많은 편이다. 원래 '그냥' 좀 예민해서 이것저것도 굳이 굳이 생각하는 사람인 줄 알았다.

주변 사람보다는 생각이 무턱대고 나와 걱정이 많은 사람이었겠거니 '아 또 난 왜 그랬지...' 피곤함을 자주 느끼던 사람이었다.

그러다 친구들과 대화를 하면서 유독 흑역사 생각이나 후회와 걱정을 많이 하는 편이구나를 더욱 깨닫게 됐다. 거의 십 년 전 더 나아가 유치원, 초등학생에서 했던 후회도 갑자기 막 떠올라 부끄러운 감정을 느꼈다는 점에서 말이다.


그것 또한 왜 그렇지 한숨 쉬며 답답해했다. 타인의 생각을 들여다볼 순 없으니 유전적으로 그렇구나 생각했는데 반년을 지켜본 정신의학 선생님께서 성인 ADHD 검사를 받아보는 건 어떻겠냐고 물으셨다.

사실 조금은 의심한 질환이었는데 막상 전문의에게 권유를 받아보니 놀랐다. 이미 어떠한 증상을 발견하셨을까. 그 당시에는 마치 비밀을 꽁꽁 숨겨 왔던 거를 들킨 것처럼 겁이 났지만 이후 검사를 받고 맞다는 결과가 나온다.

'주의력 결핍/과잉 행동장애.'

전두엽의 발달이 지연돼 생각, 감정, 행동을 조절하는 기능이 일반인에 비해 떨어진다는 소견이다.



그리고 뇌파 사진을 함께 보면서 선생님께서는

"시험 벼락치기 잘하시죠?"라고 물으셨다.


기억 속 시험 대비 공부 과정을 떠올리다

"어.. 아뇨 그냥 그렇게만 살았어요." 덤덤하게 말했다.

단순히 MBTI가 P 유형이라서 그런 거겠지 했는데 전두엽에 조금 이상이 있었구나.


그 이후도 가볍게 웃으며 살짝은 편안한 분위기에서 상담은 이루어졌다. 심각하진 않다는 거에 안심을 느꼈던 건가 사실 어느 정도 예상은 해서 크게 놀라진 않았다. 오히려 다행일 지도 모른다. 이 정신없는 생각을 약물로 치료가 가능하다니 나쁘지 않은 감정이 들었다.



그리고 생각을 분류했다.

그냥 갑자기 드는 많은 걱정을 세분화해서 나누고 각각 분리수거했다.

이 생각은 지난 과거에 대한 자책에서 시작된 앞으로의 걱정인가. 이제 해결할 수 없을 거라는 또 다른 불안함과 아쉬움인 건가. 아니면 사실 앞으로의 계획을 명확하게 하지 않아서 드는 걱정인가. 계획을 한다 해도 잘 실행할 수 있을지에 대한 불안함인 건가.

우선 고민을 하면 최대한의 안 좋은 상황까지 떠오르기에

쏟아지는 생각을 천천히 틀어막아 보며 안전한 고민만 남겨두고 묶었다.


이전의 유통기한 지나 돌이킬 수 없는 흑역사 생각이면 봉지 안 끝까지 넣고 꽁꽁 묶어 냄새도 안 나게 한다.

또 앞으로 먼 인생에 대한 허망한 고민이면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가 뭘까

'지금 상황이 어떻지?'

'괜찮다고 생각하고'

'근데 시작을 안 했는데 왜 굳이 그런 고민을 하는 거야?'

쓸데없이 깊게 펴지는 생각은 눈에 보이는 거부터 해결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흘러 보낸다.


앞으로의 까마득한 고민과 걱정은 적절히 떠오르도록

'그냥 하자'라는 행동의 거름망을 붙여야겠다.

보이지 않는 생각을 세분화해서 그냥 바로 해버리면 사라질 불안함을 줄였다. 그리고 앞으로를 더욱 편하게 계획을 해야겠다 싶다. 그것도 계획하기로 한 것을 계획하면서 짜고 있다.


'피곤하다. 왜 이렇게 생각이 많지'

'전두엽 때문이라고 결론을 내자. 어쨌든 이유가 있어야 탓을 할 수 있잖아.'

그리고 그냥 그렇게 끝냈다.


한동안 정신없는 머리는 2차로 글을 쓰면서 시각적으로 정리되어 마음이 편해졌다.

무턱대고 쓸데없는 걱정이 드는 걸 막기 위해 생각이 많은 걸 이용해 나름의 틀을 잡아야 했다.


그리고 그 생각들은

'그냥'으로 마무리 지었다.

더욱 깊게 의미를 찾으려는 생각을 끊어내고 단순하게 그냥이라는 맞춤표를 찍는다.




그렇게 인정했다.
나의 결핍이나 단점 혹은 아쉬운 점은 '자책'이 아니라 '그냥' 받아 들었다.

마음이 줄곧 편해지니 덮여있던 내면의 우울이 걷어지고 세상이 보였다. 그리고 현실이 다가왔다.

이제 그냥 나대로 조금 더 촘촘하게 살고 싶어진다.


눈에 보이면 바로 하는 습관을 들이는 중이다. 주변을 치우는 것도 정리하는 것도 가벼운 일처리를 할 때도 말해야 하는 게 있을 때도 지금 바로 그 상황을 해결하도록 하자.

남들에게는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지만 타인이 피해받지 않도록 넓게 보고 행동하려 한다. 돈 씀씀이도 가계부도 어플을 쓰면 폰으로 딴짓을 할까 봐 공책으로 정리한다. 책을 읽어도 예쁜 문구가 기억에 정신없이 돌아다니다 없어질까 봐 노트를 옆에 두고 기록하며 읽고 있다.


봉투에 욕심내서 터질 듯이 가득히 담고 한 곳을 꽉 묶다가 잘못하면 다른 곳이 구멍이 나는 것처럼

생각 정리가 또 다른 나의 강박의 문제로 넘어가지 않도록 적절히 의식해야겠다.






응.

그냥.


다른 흥미로운 것은 왜 그런지 이유를 찾아 나름의 답을 알고 싶은데

'나'라는 사람은 이유를 찾지 않는 게 곧 답일 것이다.



자아는 어쨌든 좋든 싫든 살아지는 것이다.

그니깐 어떨 때 좋아하는 감정을 느끼는지 슬픔을 느끼는지

꾸준히 나에 대해 잘 알아가는 시간 역시 있어야 하지 않을까.

또 그렇게 나를 인정해주고 싶다.



'그냥' 그런 사람.

딱히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

이해를 바라지도 이해를 할 필요도 없는 ''라는 사람.




"오늘 왜 이렇게 기분이 좋을까?

"그냥~ 그럴래"



그냥.

어쩌면 마냥 가볍지는 않은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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