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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막얼음 Jun 10. 2021

청첩장으로 정의내리는 친밀도

불편하지만 마주할 수밖에 없는 인간관계

나는 미혼이다.


30대 초인 현재까지 주변의 많은 사람들에게 청첩장을 받았고 대부분의 결혼식에 참석했다. 대외활동, 인턴, 봉사활동, 회사생활 등을 통해 다양한 인맥을 쌓을 수 있는 기회가 많았다. 덕분에 주변에 언니 오빠들이 많아 그런지 모르겠지만 내가 어떤 집단에 속하게 되면 꼭 주변에서 결혼을 많이 했다.


내 친구 피셜 나는 프로참석러라고 불릴 만큼 생각보다 거절을 잘 못하는 데다 내 마음이 불편한 것이 싫어 친한 사이가 아님에도, 따로 식사를 하지 않았음에도 결혼식에 참석하거나 불참 시 축의금만이라도 꼭 보내곤 했다. 훗날 친구가 나에게 '너 때문에 나도 덩달아 축의금 얼마나 많이 냈는지 몰라.'라며 탓하는 소리까지 들었으니 말 다했다.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서먹한 사이인데도 동기라는 이유로, 같은 조였다는 이유로, 동갑이라는 이유로 지출하는 일이 빈번했다. 아무런 거리낌 없이 오로지 축하하는 마음 하나만으로 참석할 때도 결혼식 주인공들의 한 번뿐인 아름다운 시간을 순수하게 즐겼었다.


그랬던 내가 회사를 다니고 온전한 나만의 시간은 한정된 주말뿐이라는 것에 서글퍼질 때쯤부터 친하지 않은 지인에게 청첩장을 받는 일 자체가 점점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더불어 그렇게 축하했던 사람들 중 절반은 자연스럽게 소식이 끊기다 보니 허무한 감정도 커졌다. 내가 인맥관리를 잘 못해서이기도 하겠지만 추후 언젠가 내가 결혼을 하게 된다고 해도 굳이 그들에게 연락하진 않을 것 같기에. 그냥 나는 그런 성격의 사람이다.


청첩장이라는 종이 한 장 또는 요즘 편리하게 이용하는 모바일 청첩장을 받는 순간부터 생각한다.


소중한 내 시간을 할애해서 그 결혼식에 갈 만큼 우리는 친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일까. 축의금은 얼마를 해야 할까. 몇 년 동안 연락 안 했고 모바일 청첩장만 왔는데 얼마가 적당할까. 그래도 사회생활한 지가 몇 년이 넘었는데 조금만 보내면 쪼잔해 보이는 것이 아닐까. 친하지 않은데도 잠시 철판 깔고 일단 아는 모든 사람에게 청첩장을 뿌리는 것이 국룰인 것인가. 앞으로도 연락 안 할 것 같은데 축의금을 내긴 해야 하는 것일까. 오만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매번 두통이 오는 것 같다. 그냥 수학 공식처럼 이런 경우에는 얼마를 내라고 답이 정해져 있었으면 좋겠다. 관계의 무게를 저울질해보는 내가 역겹지만 정의를 내려야 어떤 액션을 취해야 할지 답이 나오기에 괴로워도 결론을 맺어야 한다. 항상 그 결론의 끝에는 언제나 지갑이 헐거워져도 내 마음이 편하기 위한 선택을 내리지만 말이다.


친구들에게 물어본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이 사람과 연락 빈도수는 이 정도고 친밀도는 어느 정도이고 앞으로도 연락 안 할 것 같은데 이런 상황이야. 너라면 어떻게 할래?


모두 개개인의 판단이겠지만 결론을 내릴  누구든지 관계의 깊이를 재게 되는 것은 절대적인 사실이다. 애매한 관계의 사람들에게 청첩장을 받게 되었을  축하만 해야할 행복한 일에 상대와의 친밀도를 따지게 되는 현실. 불편하지만 마주할 수밖에 없는 . 살다 보니 잦아지는 골치 아픈 . 이런  성숙한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라면 평생 철들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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