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하지만 마주할 수밖에 없는 인간관계
나는 미혼이다.
30대 초인 현재까지 주변의 많은 사람들에게 청첩장을 받았고 대부분의 결혼식에 참석했다. 대외활동, 인턴, 봉사활동, 회사생활 등을 통해 다양한 인맥을 쌓을 수 있는 기회가 많았다. 덕분에 주변에 언니 오빠들이 많아 그런지 모르겠지만 내가 어떤 집단에 속하게 되면 꼭 주변에서 결혼을 많이 했다.
내 친구 피셜 나는 프로참석러라고 불릴 만큼 생각보다 거절을 잘 못하는 데다 내 마음이 불편한 것이 싫어 친한 사이가 아님에도, 따로 식사를 하지 않았음에도 결혼식에 참석하거나 불참 시 축의금만이라도 꼭 보내곤 했다. 훗날 친구가 나에게 '너 때문에 나도 덩달아 축의금 얼마나 많이 냈는지 몰라.'라며 탓하는 소리까지 들었으니 말 다했다.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서먹한 사이인데도 동기라는 이유로, 같은 조였다는 이유로, 동갑이라는 이유로 지출하는 일이 빈번했다. 아무런 거리낌 없이 오로지 축하하는 마음 하나만으로 참석할 때도 결혼식 주인공들의 한 번뿐인 아름다운 시간을 순수하게 즐겼었다.
그랬던 내가 회사를 다니고 온전한 나만의 시간은 한정된 주말뿐이라는 것에 서글퍼질 때쯤부터 친하지 않은 지인에게 청첩장을 받는 일 자체가 점점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더불어 그렇게 축하했던 사람들 중 절반은 자연스럽게 소식이 끊기다 보니 허무한 감정도 커졌다. 내가 인맥관리를 잘 못해서이기도 하겠지만 추후 언젠가 내가 결혼을 하게 된다고 해도 굳이 그들에게 연락하진 않을 것 같기에. 그냥 나는 그런 성격의 사람이다.
청첩장이라는 종이 한 장 또는 요즘 편리하게 이용하는 모바일 청첩장을 받는 순간부터 생각한다.
소중한 내 시간을 할애해서 그 결혼식에 갈 만큼 우리는 친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일까. 축의금은 얼마를 해야 할까. 몇 년 동안 연락 안 했고 모바일 청첩장만 왔는데 얼마가 적당할까. 그래도 사회생활한 지가 몇 년이 넘었는데 조금만 보내면 쪼잔해 보이는 것이 아닐까. 친하지 않은데도 잠시 철판 깔고 일단 아는 모든 사람에게 청첩장을 뿌리는 것이 국룰인 것인가. 앞으로도 연락 안 할 것 같은데 축의금을 내긴 해야 하는 것일까. 오만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매번 두통이 오는 것 같다. 그냥 수학 공식처럼 이런 경우에는 얼마를 내라고 답이 정해져 있었으면 좋겠다. 관계의 무게를 저울질해보는 내가 역겹지만 정의를 내려야 어떤 액션을 취해야 할지 답이 나오기에 괴로워도 결론을 맺어야 한다. 항상 그 결론의 끝에는 언제나 지갑이 헐거워져도 내 마음이 편하기 위한 선택을 내리지만 말이다.
친구들에게 물어본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이 사람과 연락 빈도수는 이 정도고 친밀도는 어느 정도이고 앞으로도 연락 안 할 것 같은데 이런 상황이야. 너라면 어떻게 할래?
모두 개개인의 판단이겠지만 결론을 내릴 때 누구든지 관계의 깊이를 재게 되는 것은 절대적인 사실이다. 애매한 관계의 사람들에게 청첩장을 받게 되었을 때 축하만 해야할 행복한 일에 상대와의 친밀도를 따지게 되는 현실. 불편하지만 마주할 수밖에 없는 일. 살다 보니 잦아지는 골치 아픈 일. 이런 게 성숙한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라면 평생 철들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