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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막얼음 Jul 20. 2021

하늘을 볼 수 있는 자격

권력자만이 가질 수 있는 풍경

인도에 카스트제가 있다면 한국에는 나이, 서열, 계급, 직급 문화가 있다. 사회에서는 나이, 회사에서는 직급, 군대에서는 계급. 다른 나라와는 다르게 유치원생 조차도 첫 만남에 서로의 나이를 물어보며 서열부터 따지는 어린이들의 첫 만남을 다루는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어려서부터 한국인은 뼛속 깊은 곳에서부터 위아래를 재며 본인의 위치를 정하는 것을 좋아함이 분명하다. 


회사에서 정신없이 일을 쳐내던 오후 잠시 카톡을 봤더니 친구에게서 연락이 와있었다. '곧 비오겠다!' 분명 출근 후 점심시간에 잠시 밖에 다녀왔을 때만 해도 비라고는 생각하지 못할 날씨였건만 비라니. 그래서 답장으로 무슨 소리야 아깐 전혀 그럴 날씨가 아니었는데? 라며 되물었더니 '아니야 지금 하늘 한번 봐. 딱 봐도 구름 엄청 꼈는데? 확실히 비 온댔어.'라는 말을 듣자마자 자동적으로 내 뒤통수로부터 8미터쯤에 위치해있는 회사 창 밖을 보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보이는 거라곤 창을 가득 메운 블라인드뿐. 


전통적으로 회사의 창가 쪽은 그 팀이나 부문 내 최고 권위자의 자리이다. 드라마나 영화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고로 권력을 가진 자들만이 창을, 아니 창 밖의 풍경을 소유하는 것이다. 하늘을 볼 수 있는 자격 조차 공평하지 않은 서열의 세계. 그깟 돈 한 번 벌자고 다니는 회사에서 치밀하게 정서까지 조정당하는 느낌이 들었다. 은연중에 내 심리를 조정하는 인테리어와 자리 배치 구조의 힘은 대단하다. 요즘 세상이 변했다고들 하니 모든 회사가 그런 건 아니겠지만 아직 대부분의 회사가 나의 근무 환경과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된다. 수평적인 문화를 가졌다는 이름 알만한 유명한 회사들도 친구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엄격한 서열과 보수적인 꼰대 기질이 없지 않다. 자고로 그런 기질이 없는 국내 회사는 들어보지 못했다.


하늘 한 번 보기 위한 순수하고 단순했던 행동이 내 생각을 여기까지 끌고 오게 하다니. 많은 생각이 들지만 현재의 유일한 희망은 풍경을 나눠가지는 관대함의 미덕을 가진 사람이 권력을 쥐었으면 좋겠다는 것뿐이다. 


언젠가는 창살 없는 감옥 속의 죄 없는 돈의 노예들이 생기 있게 웃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빌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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