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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막얼음 May 13. 2021

비관적인 이상주의자

자존감과 세상을 보는 시각

사람들과 밝게 외향적으로 잘 어울리고 낯을 가리지 않다 보니 종종 긍정적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내가 보는 나 자신은 전혀 그렇지 않다. 남에게는 관대하지만 나 자신에게는 사소한 것에도 매우 불평불만이 많고 만족을 잘 못하는 편이다.


한 번은 친한 친구가 우울한 나를 위로하려고 왔다가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너는 다 가진 것 같은데 왜 그렇게 만족을 못해? 내가 너였음 그렇게 안 산다!” 갑자기 프라이팬으로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누군가에겐 내가 다 가진 것처럼 보일 수 있구나. 평생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삶을 향해 달리기만 했다. 심지어 구체적이지도 않은데 그냥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향해서 말이다. 밑을 본 적은 없다. 사실 목이 빠지게 위만 바라보며 했던 모든 불평불만은 내가 더 발전하기 위해 나 자신을 채찍질하는 원동력이기도 했다. 지금보다 더 좋아지려면 편하게 쉬어서만은 안되니까.

 

스스로 발전하는 내 모습만이 삶에 있어 생동감과 뿌듯함을 느끼게 한다. 예전에 해봤던 MBTI 테스트에서 나왔던 나의 성향 ENFJ의 특징 중 ‘지나치게 이상주의적인’ 이 문구가 갑자기 떠오른다. 이상적인 삶을 원하는데 그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할 때 좌절감이 드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비판에 항상 수용적이다. 이상에 다가가려면 내가 고쳐야 할 점이 있다고 믿으니까. 어떤 문제점을 나 자신에게 투영하여 항상 고치려고 하는 경향도 있다. 꼭 내가 잘못한 것이 아닐 때도 말이다. 나 자신에게 관대해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머리로는 아는데 생각만큼 쉬우면 얼마나 좋을까.

 

신기하게도 이 모든 건 다른 사람에게 티가 나지는 않는다. 되려 그 반대이다. 자존감이 높아 보인다거나 쿨하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기 때문에 티가 나지 않았다는 것은 확신할 수 있다. 셀프 어필의 시대인 요즘에 내가 스스로 정해놓은 이상적인 기준에 못 미친다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굳이 말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기에 티 내고 싶지도 않다. 그 와중에 자존심은 센 모양이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칭찬도 잘하고 위로도 잘하면서 꼭 내가 힘들 때는 나 자신을 위로하기가 힘들다. 비관에 감성이 복합적으로 섞이면 스스로를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의 시너지는 더욱 극대화된다. 이러면 안 되는 것을 머리로는 아는데 비관적인 생각이 멈추질 않는다. 생각이 꼬리의 꼬리를 물어 잠 못 들고 뒤척이다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울 때도 많다. 오늘은 그런 밤이 되지 않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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