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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막얼음 Apr 29. 2021

어느 날 친구의 가족이 죽었다.

죽음의 순서는 공평하지 않다.


부산에서 상경하겠다는 꿈을 가지고 대학 입시라는 인생의 첫 번째 고비를 함께 버티면서 친해진 우리 셋은 십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끈끈한 만남을 이어오고 있다. 


떠도는 글에서 여자 세 명이 돈독한 친구로 지내기는 힘들다는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셋이서 친하게 지내려다가도 꼭 2대 1이 되어버려 나머지 한 명이 서운해하는 경우가 있다는 설명이다. 우리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는 이야기이다. 기본적으로 서로의 마음을 잘 아는 데다 배려가 바탕이 되어 오랜 시간 연락하지 않아도 안정감 있는 탄탄한 우정이다. 몇 년째 곗돈도 들고 있으며 누구 한 명이 힘들어할 때면 서로를 응원해주고 기다려주고 한 번도 의 상한 적이 없다. 


한 명은 부산에서 사업을 하고 있고 나를 포함한 다른 한 명은 서울에서 자취를 하며 직장을 다니고 있다. (셋 다 부산 사람이지만 편의상 부산 친구와 서울 친구로 부르겠다.) 서울에 두 명이 있다고 하지만 둘만이라도 모이기 쉽지 않다. 기본적으로 서울 내 각자 집이 거리가 있는 편이고 바쁘게 생활하다 보니 약속 시간을 미리 잡아야만 만난다. 혹은 명절 때 부산에 내려가게 되면 짬을 내어 둘이서 혹은 셋이서 만날 때도 있다. 사회활동을 하는 성인이 되고 나니 한 분기에 한 번이라도 주기적으로 만나면 매우 친한 친구이다. 


여건이 힘들지만 셋이서 뭉치면 좋겠다는 생각이 강해서 그런지 둘이서만 만나게 되어도 꼭 페이스타임을 하던지 인증 사진을 찍어 단체 카톡방에 글을 남기게 된다. 혹시나 서로가 서운하지 않도록 배려가 바탕이 되는 셈이다. 사실 나를 빼고 만나도 전혀 서운하지 않을 정도로 이 친구들에 대한 믿음은 다이아몬드 급으로 단단하다.


우리의 단체 카톡방은 평소 조용한 편에 가깝다. 가끔 생각이 나면 카톡방이 활성화되는데 한 번 떠들기 시작하면 재미있게 대화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지만 매일매일 떠드는 카톡방이 아니기에 그날도 잠잠했다. 어김없이 회사에서 일하다 다크서클이 눈을 삼킬 때쯤 기어이 퇴근해서 귀가하는 중이었다. 집으로 터덜터덜 걷고 있는데 서울에 있는 친구에게 전화가 와서 받았더니 부산 친구가 연락이 잘 안 되어 걱정된다는 것이었다. 바빠서 그런 것이 아니냐며 왜 연락이 안 된다고 생각하냐 물었더니 최근 우리가 단체 카톡방에서 대화할 때 그 친구가 유독 말이 없고 참여를 안 하길래 전화를 해봤는데 이틀 연속으로 전화를 받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나는 전혀 그 친구가 카톡에서 호응이 없는지 참여를 안 했는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스스로 그런 면에 있어서 눈치 없고 둔한 사람이라는 것을 처음 깨닫는 순간이었다. 


일단 전화를 끊고 나도 부산 친구에게 여러 차례 통화를 시도했으나 부재중 자동응답기 소리만 반복되었다. 오늘 바빠서 그럴 수도 있겠지. 내일 다시 통화해봐야지. 

하지만 다음 날도, 그다음 날에도 친구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이런 친구가 아닌데. 점점 걱정과 상상력이 산처럼 불어나기 시작했고 서울 친구와 하루에 한 번씩 지속적으로 연락을 시도했다. 혹시 말 못 할 사정이 있는데 너무 자주 하면 부담스러울까 봐 빈도수를 높이지도 못하는 채로.


그렇게 일주일쯤 지나고 부산 친구와 드디어 연락이 닿게 된 서울 친구가 나에게 전해줄 말이 있다며 무겁게 입을 뗐다. 부산 친구의 친언니가 위암 말기라는 것이다. 충격이었다. 삼십 대 초인 우리와 한 살 밖에 차이 나지 않는 그 언니가 젊은 나이에 위암 말기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부모님과 세 딸로 구성되어있는 내 친구네 가족은 유독 화목한 집이었다. 친구가 힘들까 봐 정확한 내막과 모든 이야기를 캐묻지 않으며 일단 상황을 알았으니 우리도 언니가 빨리 쾌유하시기를 함께 빌겠다고 하고 끊었다고 했다. 통화내용을 전해 듣자마자 내 친구가 슬퍼하고 힘들어할 생각에 마음이 너무 아팠다. 나도 언니가 있지만 상상조차 안 되는 일이기에.


그로부터 한 달 정도 지난 3월의 어느 수요일, 회사에서 어김없이 반복되는 업무를 하고 있는데 우리 단체 카톡방에 부고가 올라왔다. 친구의 언니가 생을 마감한 날이었다. 장례식장은 친구의 고향인 진해였다. 나와 서울 친구는 그 글을 보자마자 오늘 짐을 싼 다음 내일 각자 퇴근하고 만나서 같이 내려가기로 정했다. 금요일은 연차를 쓰기로 했다.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어떻게 위로를 해야 할지 어떤 말을 꺼낼 엄두도 나지를 않았다. 그저 내가 울 것 같았다. 


다음 날 서울 친구와 각자 퇴근 후 서울역에서 만나 창원 중앙역으로 향하는 기차에 올랐다. 부고를 받는 경우가 많이 없었기에 내려가는 동안 장례식장의 예절을 유튜브로 찾아보며 혹여나 실수할까 봐 여러 번 되뇌며 복습했다. 그러다 문득 창 밖을 보니 경상도의 어느 시골 논밭을 지나가는지 사방이 어두컴컴한 공간에서 간간이 눈에 띄는 불빛들이 빠르게 기차를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삶 같았다. 최선을 다해 풀 액셀을 밟으며 목적지를 향해 가는 우리를 기차라고 쳤을 때, 바쁘게 삶을 살아가느라 미처 잊고 있었던 소중한 시간들이 저 불빛들처럼 그렇게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는 것 같았다. 좀 더 브레이크를 밟고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필요한 것이 아닌가. 


우리는 무엇을 위해 앞만 보고 달리는 것일까. 행복이라는 목적 달성을 위해 뛰는 장거리 마라톤을 에너지 분배 없이 미련하게 단거리처럼 빨리 달려 누구보다 먼저 도달해보겠다는 마음가짐이 문제인 것일까. 진정한 행복은 달리다 말고 잠시 멈춰 트랙 옆에 핀 야생화 한 송이를 보며 맑은 하늘과 햇살을 온전히 즐길 수 있는 여유를 가지는 것인데 말이다. 목적지에 확실히 행복이란 것이 있는지도 모르면서 그저 달리는 것이 아닌지. 되도록이면 자주 사소한 것에 행복을 느껴왔던 삶이 진정한 행복한 삶일 텐데 사람인지라 가진 것에 만족하는 일, 그거야 말로 제일 어려운 일인지도 모른다. 내 집 마련이며 학자금 대출 상환이며 취업난이며 육아 스트레스며 우리 모두 대체 뭘 위해 아등바등 사는 걸까. 삶의 본질에 대한 생각에 젖으며 착잡한 마음으로 조용히 창 밖을 바라보았다. 


이런 생각들이 다 무슨 소용인 것일까. 천천히 속도를 늦추며 종착역이 다가올 때 눈에 뜨인 것은 눈치 없이 만개한 벚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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