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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막얼음 Apr 27. 2021

(3) 미네소타, 그 곳으로 유학을 가게 된 이유

청소년기 미국 유학생활의 뒤늦은 기록

추억 회상기

[전에 쓴 글에 이어서]





부모님이 일본으로 대학을 다니고 있는 언니를 제외한 우리 세 식구가 일 년 동안 머무를 장소로 미네소타를 선택한 이유가 있다.


어려서부터 아빠끼리 친구여서 엄마들끼리, 자녀끼리도 어울리며 친해진 가족이 있다. 그 가족에는 외동딸이 있는데 나에게 그 언니는 아친딸(아빠 친구 딸)인 셈이다. 나보다 6살이 많은 그 언니는 중학교 때부터 미네소타에서 유학을 했고 이름을 대면 알 만한 명문 대학에 입학했다. 교육에 관심이 많은 우리 부모님은 그 가족에게 많은 조언을 구했고 평탄한 유학생활을 잘하고 있는 아친딸을 뒷바라지 한 아주머니는 미네소타를 교육에 최적화된 곳이니 기회가 되면 가보라고 추천해주셨다고 한다.


미네소타는 깨끗하고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가지고 있고 치안이 다른 주 보다 좋은 편이라 안심되며 표준어를 보편적으로 쓰는 곳이라 영어 발음을 제대로 배울 수 있어 회화를 배우기에도 제격인 곳이라고 하셨다. 그 때문인지 엄마는 내가 초등학교 4학년 겨울방학을 맞이 했을 때 두 달 동안 미네소타로 홈스테이를 보내주셨다. 워낙 겁도 없는 아이였던지라 그냥 두 달 동안 여행 가는구나 생각하고 아무 생각 없이 시키는 대로 따랐다. 그때부터 미네소타와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딸 둘 아들 하나가 있는 미국 백인 현지인 가족에 홈스테이를 가게 되었다. 제니퍼라는 첫째 딸이 나와 동갑이었고 잘 기억은 안 나지만 그 홈스테이 프로그램은 또래 친구가 있는 집에 머물면서 미국 초등학교를 체험해보는 프로그램이었던 듯하다. 한국의 겨울방학기간 2달은 미국 친구들에게는 방학 기간이 아니었기에 제니퍼가 다니고 있던 학교로 같이 등교를 했다. (앞서 전 글에서도 적었다싶히 미국은 겨울방학이 짧고 여름방학이 길다.) 당시 우리 반의 구조와 인테리어가 어렴풋이 생각나는데 한국과는 다르게 원의 모양으로 책걸상을 배치해놨었다. 신선한 충격이었고 알록달록한 색상으로 이루어진 책걸상과 주변 오브제들이 아티스틱하고 자유분방해 보였다. 제니퍼가 같은 반에 있어 적응을 도와주어 친구들과도 금방 어울릴 수 있었다. 쉬는 시간에는 학교 앞에 위치한 고무매트가 넓게 깔려있는 놀이터에서 시소나 그네를 비롯한 여러 가지 기구를 타고 뛰어다니며 놀았는데 뛰다 보니 땀이 많이 나서 그 한겨울에도 추위를 잘 느끼지 못했다.


하교 후 제니퍼의 집으로 돌아오면 매일 스낵 창고에서 풋 젤리를 하나씩 꺼내먹었다. 처음 풋 젤리를 먹었을 때를 잊지 못한다. 세상에서 처음 느끼는 환상의 맛이었다. 달콤하고 새콤한데 쫀쫀하고 질기지도 않은 게 딱 내 취향이었다. 홈스테이 아줌마 아저씨는 우리가 너무 과자를 많이 먹을까 봐 하나씩만 먹으라고 정해주셨지만 가끔 몰래 하나씩 더 먹곤 했었던 것 같다. 숙제 말고는 달리 할 게 없었던 우리는 플레이스테이션으로 스키와 보드를 타는 게임을 했었다. 나이가 어려서 그랬는지 지금과는 다르게 쉽게 친해지고 뭘해도 재미있었다. 그렇게 두 달간의 시간이 빠르게 지나고 부산에 있는 부모님과 친구들 생각이 날 때쯤 한국으로 다시 돌아왔었다. 사실 그때의 두 달이 영어 공부에 도움이 됐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린 나이에도 세상은 넓고 다양하다는 경험은 확실히 얻을 수 있었다.


그 이후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초등학교에서 중학교로 진학하고 평범한 한국의 한 여중생으로 지내고 있는 어느 날 저녁 늦은 밤 쯤 부모님이 나에게 갑자기 진지하게 할 이야기가 있다며 거실로 불렀다. 학원에서 다녀와 숙제까지 해야하는 일상에 지친 나는 터덜터덜 나와 거실 쇼파에 앉았다. 들어보니 언니를 제외한 우리 세 식구가 미네소타에서 일 년을 지내본다는 것이다. 갑자기 무슨 소리인가 싶어 장난 치는 것이 아닌지 물었던 기억이 선명하다. 내가 들은 것이 맞다길래 나는 안가겠다고 했다. 안가면 어떻게 되는거냐고도 물었다. 그랬더니 대전에 계시는 할머니 댁으로 가라는 것이다. 부산에 있는 내 친구들과 계속 지내고 싶어서 안가겠다고 한건데 대전으로 전학가면 무슨 의미인가 싶어 그냥 부모님도 나와 함께 안가면 안되냐고 물었었다. 안된다고 하시며 부모님은 떠나기로 결정했다고 완강하게 말씀하시니 나도 어쩔수 없이 따라가겠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내 의지를 물어보시는 듯 했지만 사실 답은 정해져있었다. 나중에 들어보니 이미 두 분은 예전부터 계획해왔던 일이었고 내 교육 때문에 미네소타를 선택한 이유가 컸다고 한다.


그렇게 미네소타로 오게 되었던 것이다. 부모님은 일년만 지내고 한국으로 돌아갈 예정이고 나는 추후에 혼자 남을지 같이 한국으로 들어갈지 고민해보기로 했다. 어떻게 되겠지. 일단 지금 8학년으로써 이 곳에서 하루하루를 잘 적응해보려한다.




[이어서 다음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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