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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막얼음 May 06. 2021

(4) 미네소타, 처음 맞는 여름 방학 - 수영

청소년기 미국 유학생활의 뒤늦은 기록

추억 회상기

[전에 쓴 글에 이어서]




온 신경을 영어 리스닝에 쏟느라 긴장한 탓에 매일 하교하고 집에 돌아오면 물에 젖어버린 가쓰오부시처럼 침대에 몸이 녹아버렸다. 긴 시간 낮잠을 자고 일어나 미국에서 파는 식재료로 구현한 엄마표 한식 저녁을 먹고 숙제를 하는 것이 나의 일상이었다. 익숙하지 않은 언어를 알아들으려고 일분일초를 빠뜨리지 않고 귀의 모든 세포와 혈관을 예민하게 만드는 건 정말 대단한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한국에서 멍 때릴 때 무의식적으로 들리는 라디오나 주변 대화를 불필요한 소음으로 받아들일 때가 많았는데 듣고 바로 이해가 가능함 그 자체만으로 감사한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듣고 싶어도 들을 수 없는 상황을 이겨내는 건 지독하게 힘드니까.


매일이 피곤했던 학기를 끝내고 첫여름 방학을 맞이했다. 처음 맞는 미네소타의 여름 날씨는 고온 저습 말 그대로 환상적이다. 끈적끈적한 장마철이 지나면 숨 막히는 무더위를 견뎌야 하는 한국과는 달리 뽀송뽀송하고 따뜻한 햇살을 느낄 수 있다. 햇빛을 정면으로 마주하면 강한 자외선 때문에 살갗이 까질 것처럼 쉽게 뜨거워지지만 그늘 아래로 가면 바로 시원해진다. 오늘도 아파트 단지가 둘러싸고 있는 중앙의 야외 공용 풀장에서 손바닥만 한 비키니를 입고 수영해도 좋을 만큼 햇살은 따갑다. 최근에 가까운 로즈데일 쇼핑센터에서 수영복을 하나 장만하길 잘한 듯싶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부산에서 또래 아이들과 수영을 배운 적이 있었다. 한 줄로 서서 차례대로 물 안으로 뛰어든 다음 온몸을 킥판 하나에 의지하고 무릎을 굽히지 않은 채로 다리를 격으로 스치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법을 배웠다. 같은 자세를 몇 주에 걸쳐 반복한 뒤 킥판을 놓고 수영을 해야 하는 수업 시간이 다가왔을 때 다른 친구들은 다 놓는 킥판을 나는 도저히 놓을 수가 없었다. 물 안에서 숨을 쉬지 못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두려움과 상상력은 나를 삼켰고 킥판을 놓으려 여러 번 시도했지만 온 몸에 힘이 들어와 가라앉기만을 반복했다. 매번 시도할 때마다 물을 먹기 일쑤였고 결국 수영을 배우지 못한 채로 모든 수업이 끝이 났다. 정신이 몸을 지배할 수 있다는 것을 처음 깨닫게 된 계기였다. 그런 사실을 아는데도 불구하고 스스로 제어하지 못하는 내 정신을 탓하며 최면을 걸려고 노력해봤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햇빛 때문에 그물 같은 패턴으로 아름답게 일렁이는 투명한 에메랄드 빛 물이 가득 찬 야외 풀장에서 하늘을 보며 둥둥 떠 있으면 온갖 잡생각이 사라진다. 마치 데이비드 호크니의 그림 같은 풍경이다. 수영하는 법은 모르지만 유일하게 물에서 떠 있을 수 있는 자세가 있다면 하늘을 보고 힘을 빼고 눕는 것이다. 얼굴이 물아래로 향하는 자세로는 여전히 몸에 힘을 풀 수가 없어진다.


생각보다 빠르게 움직이는 구름을 향해 멍하니 바라보며 긴장을 풀면 귀가 물속으로 잠겨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게 된다. 물속에서만 들리는 특유의 몽롱하고 적막한 소리가 있다. 귀를 물속에 담근 채 눈 마저 감으면 햇빛이 닿는 내 몸의 면적을 더 선명하게 느낄 수 있다. 살갗이 타는 느낌이 싫지 않다. 여기서는 구릿빛 피부가 건강미로 여겨진다. 한국인 중에서도 원래 하얀 편이 아닌 나는 피부색 따위는 신경 쓰지 않고 그대로 살을 태운다. 어차피 내 피부는 타도 쉽게 껍질이 벗겨지거나 빨개지지 않아서 괜찮다. 다양한 인종이 응집되어있는 미국 땅에서 내 피부색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논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학기 내내 예민해져 있던 내 청각을 지금만큼은 쉬게 한다. 시각, 후각, 촉각에만 집중하며 자연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학교와 학원만 오가던 한국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평화로운 대자연, 이 자체가 점점 좋아지기 시작한다. 미국에 오지 않고 계속 한국에 있었다면 이런 기분을 느꼈을 수 있을까. 아무 생각 없이 시키는 대로 수동적으로 하루하루를 살았던 평범한 한국 여중생의 삶에서는 내 모든 감각을 통해 풀 소리를, 구름의 속도를, 공기의 온도를, 물과 햇빛에 닿는 내 피부를 이렇게까지 집중해서 느껴본 적이 없었다. 여기가 미국이어서가 아니라 낯선 곳에서 적응하려고 발버둥 치는 동안 내가 몰랐던 나의 모습도 새롭게 발견하고 내 정체성에 대한 생각이 많아졌기에 자연을 대하는 태도도 변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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