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 미래, 휴지통

by 요환

병에 물을 채우다 넘친 것은 쓸쓸함이라 하고

모자란 것은 외로움이라 하자


시계 대신 손톱을 보는 나는 시간을 싹둑싹둑 잘라

이리저리 튀는 시간의 종착지는 항상 과거였고

그것들을 줍다가 허리가 굽어버렸다


여름이 밤을 대하듯 너를 맞이할 준비가 되지 않았어


흔들리는 병에 물을 가득 채우는 것은 어려워

이리저리 튀는 탓에 오해를 낳기도

기름과 물처럼 우린 다른 생각을 한다


열린 문으로 들어오는 나뭇잎을 보고

여름이 왔다 할 수 있다면

바람을 타고 온 너의 소식은 뭐라고 할 수 있을까


넘친 쓸쓸함을 닦다 남은 물기는

그리움이라 하고

못 버린 휴지는 미련이라 하자


휴지통을 찾다가 도착한 곳은 숲이었고

네가 숲이었던 사실을 난 믿지 않았다

너를 다시 심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기에


집에 돌아올 때 나뭇가지 하나 꺾어왔다


안쪽에서 보는 풍경은 아름답기만 한데

창밖에서 보는 안쪽은 민망하며 야릇하기도


커튼을 치자 밖은 표정을 숨기고

헤드셋에 노이즈 캔슬링은 내 한숨도 막아주고

불 꺼진 방은 모든 걸 막아준다

이를테면 빛, 미래, 그리고 휴지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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