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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상 Sep 12. 2024

관리적 관점을 지양하자 1

-  교사부터 변하자

'안녕하세요. 생활부장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2학기 1회 고사에 2학년 학생이 휴대폰을 가방에 넣은 채로 칠판 아래에 가져다 놓은 것이 추후에 발견되어 부정행위 처리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학업성적 관리위원회에서는 2교시 시험을 0점 처리하기로 했다고 합니다. 이 부분에 대한 징계건으로 온라인 협의를 하고자 합니다. 이곳에 의견을 작성 부탁드립니다.


상기 학생은 의도적 조직적으로 부정행위를 통해, 성적 향상을 도모했다고 보여지지는 않는 바,(게으르거나, 혹은 정신적 태만에 의한 실수? 등) 해당 고사일 교과시간만 0점 처리되는 것으로 처리되었으면 합니다


시험 중 가방에 휴대폰을 넣고 칠판에 두었다면 시험을 보던 중에 소지한 것이 아니며, 담임교사에게 미제출한 것이 사용 목적으로 미제출했다고 단정지을 수 없고, 시험 중 핸드폰이 울려 학생들의 시험을 방해한 상황이 없는 한, 학생 0점 처리 및 징계 처리는 부당하다는 의견을 드립니다.


부정행위에 의한 영점 처리는 필연!!


0점 처리 자체가 부당합니다. 더 나아가 이런 상황까지 징계 운운하는 것이 혼란스럽습니다. 의도성이 전혀 없는 상황이었고, 타 학생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행위라고 판단되었다면, 단순 실수에 대하여 징계니 규정이니를 거론하기 앞서 교사들의 교육적 접근이 당연히, 그리고 우선시될 수 있는 학교가 되어야 합니다.


휴대폰 제출 여부는 고사 실시에 따른 부정행위 유형으로 이미 못 박혀 있는 사안으로, 다른 학생들에 의해 민원(=신고)이 접수된 사안으로, 일반적으로 학생들이 사용하는 개인 소지품? 이런 차원의 것이 아님을 유념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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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 기간 중 한 학생이 부정행위를 했다고 공지하며 징계 여부를 논하자는 생활부장의 메시지에 대한 교사들의 답변입니다. 학교 현장에서 수시로 발생하는 아이들 생활이나 모습, 태도 등에 대하여 교육적 고려 대신에 시끄러워질 수 있는 문제화를 피하기 위하여 우선적으로 행정적, 관리적 조치를 들이대는 한 예입니다. 사회에서조차도 생계형 범죄, 즉 빵 하나 훔친 범죄 정도에는 엄격한 법 적용을 자제하는 실정입니다. 하물며 교육을 한다는 학교에서 단순한 실수 조차 규정을 어겼다 하여 처벌을 하고 징계를 논합니다. 


나는 이런 상황을 맞이할 때마다 가슴이 깝깝해집니다. 아이가 겨우 깜빡하고 휴대폰을 가방에 넣은 채로 칠판 아래에 가져다 놓은 것이 추후에 발견되어 부정행위 처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시험 기간 중 무조건 휴대폰을 제출하라는 규정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걸 가지고 이미 성적관리 위원회에서 0점 처리를 해놓고, 추후 징계를 하느니 안 하느니 묻습니다. 아이들 누구나 쉽게 범할 수 있는 겨우 깜빡한 탓으로 벌어진 단순 실수입니다. 다음에 동일한 실수를 하지 않도록 차근차근 지도하면 될 일입니다. 이러한 단순 실수를 거창하게 대학수학능력 시험에 준하는 준거들을 적용하여 중도에 울려 피해를 주었는가 아닌가의 여부를 떠나 무조건 제출해야 하는 규정을 어겼다는 이유만으로 부정행위로 간주하고, 징계까지 운운합니다. 


특히 교사들보다도 교감이 더욱 적극적 징계 입장을 취합니다. 그리고 다수의 교사 의견에 개의치않고 자신의 주장대로 밀어부칩니다. 그럴거면 회의는 왜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의례적인 학교위원회, 그리고 일방적인 관리자의 위력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결국 또 한 명의 아이가 교육적인 접근이 우선이어야 할 학교에서 교사들의 관리적 처사로 인해  상처를 받습니다. 


치열한 입시 경쟁으로 인해 학교에서의 교육 활동에도 교육적 가치의 실현이나 유의미화 보다는 규격화, 기계적인 매뉴얼화가 강조되고 있습니다. 사회와 조직은 법과 규정 등으로 질서를 잡고자 합니다. 하지만 사회와 달리 학교에서만큼은 법이나 규정보다도 ‘교육적 배려’가 우선되어야 합니다. 마음과 마음으로 신뢰를 쌓아가며 아이들과 교사 간의 질서를 잡아가야 합니다. 하지만 오히려 학교가 더 엄격합니다. 사회에서 법을 어길지라도 정상참작이라는게 있습니다. 그러나 학교에서는 교육적 배려보다는 규정이, 아이들 간의 치열한 경쟁에 떠밀려 문제 유발을 피하고자 하는 경직됨이 더 지배적입니다. 지각 한번 해도 이유야 상관없이 생기부에 기록해야 하고, 친구들 간에 가벼운 몸싸움도 폭력위원회에서 다루어야 합니다. 교사들의 관리적 의식, 그리고 치열한 경쟁에서 뒤떨어질까 봐, 손해 볼까 봐 노심초사하는 아이들의 눈치를 보느라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식입니다. 


우리가 쉽게 말하고 있는 ‘법대로 하자’는 말은 윤리적, 도의적 책임은 안중에도 없다는 의미를 내포합니다. 법은 최소한의 도덕이라는 말처럼 학교에서의 규정도 교육적 가치 추구를 전제로 한 최소한의 수단에 불과합니다. 학교에서 그저 규정에 충실하겠다는 것 역시 교육적 책임을 도외시하고, 교육적 주체임을 포기한다는 의미와 같습니다. 또한 규정이 갖는 의미를 넘어서 교사들 스스로 아예 규정에 종속되고 있음을 인정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이렇듯 교육적 배려가 결여되어 있는 관리 위주의 학교를 아이들이 실망하고 신뢰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유교의 무의미한 세세한 절차, 규정에 대항하여, 인위적인 세상 법규들이 많아져서 사람들을 망치고 있다는 노자와 장자의 주장을 학교 현장에서 더욱 실감하게 됩니다.




'시험 끝나는 종이 치면 학번이나 이름 기입도 부정행위로 봅니까?'

'시험 종료 10분 전이라고 해야 하나요, 아니면 10분 정도 남았다고 말해야 하나요?'

'전자기기를 휴식시간에 발견하면 이전 시험 전부를 부정행위로 보나요, 아니면 그 시간에만 부정행위로 ?'


중간고사 대비 교사 연수 시간입니다. 감독 철저를 반복적으로 외치는 관리자에게 지레 겁을 먹은 젊은 교사들이 전혀 예상치못한 질문들을 쏟아 냅니다. 매번 보는 중간, 기말시험이지만 교육적 접근보다는 행정적, 문제 예방적 차원의 각종 사소한 우려와 논쟁으로 한 시간 이상이나 소비하고 있습니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가능한 예방 차원으로 접근하고, 정 사태가 발생하면 교사의 재량으로 적절하게 대처할 수 있을듯한 문제들인데 그 하나하나를 모두 명문화, 고정화시키려고 하는 사고방식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특히 젊은 교사들이 점점 더 행정적이고 관리적인 접근을 부쩍 더 강조하는 경향이 짙어집니다. 하도 세태가 뒤숭숭하니 이제는 교육 활동 하나하나에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모든 사항들을 매뉴얼화해서 문제의 소지를 아예 근원부터 차단하고자 하는 행정적, 관리적인 대처를 우선적으로 몸에 익혀가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객관식 답안지에 반 표시를 잘못한 아이가 뒤늦게 알고 반 표시만 고치겠다 했는데도 허락을 안 해주는 결단(?)을 보여주는 경우가 발생합니다. 


젊은 교사시절 부터 학교 현장에서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 활동들 모두에 대하여 교육적 사유가 우선시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미 '교육적 사유'라는 의식조차 남아있지 않은 듯 우리 교사들의 머릿속은 행정화, 관리화되어가고 있습니다. 이처럼 교직 생활 시작부터 머릿속에 깊이 각인된 서류나 규정에 찌들어 교육적인 모습보다 이미 관리적인 마인드로 완벽히 젖어들은 교사들이 되어갑니다. 한참 공부할 때 교사들은 초임 5년 안에 자신만의 교육적 관점을 형성하게 되고, 그 이후로는 절대 변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본 듯합니다. 그리고 경험해 보고 부딪쳐보면 실제로 그렇게 굳어집니다. 특히 교사는 다른 어떤 자유보다도 일종의 '비지배 자유'를 구가하고자 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동료나 남으로부터, 그리고 당연히 상사로부터 간섭받지 않고 자신만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공간, 직장을 잡고자 하는 성향들이 강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더더욱 의사소통의 벽을 느낄 때도 많습니다. 심지어는 지적 능력의 차이를 느낄 정도로 교사의 자질은 상당히 다양하여, 추구하는 교육적 가치까지 다를 경우 첨예하게 부딪치는 경우 대책이 없습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도저히 뚫고 들어갈 수 없는 벽처럼 의식 공유의 한계를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근본적으로 교사들 간 공유하고 있는 동일한 교육적 철학이 부재하고 있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교사들이 갖추어야 할 일관되고 바람직한 교육 철학에 대한 의식 함양이 사범대학이나 교사 양성과정에서 필히 강조되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교육을 하는 학교에서 마치 행정기관처럼 매뉴얼에 따라, 이에 전적으로 의존하여 아이들을 ‘관리해야 할 대상’으로만 상대하고자 하는 교사들의 마인드가 우려됩니다. ‘학교=관리’라는 의식이 교사들에게 자리 잡고 있는 한 작게는 아이들 개개인의 지도 방식에서부터, 아이들의 바람직한 성장이나 교사의 질적 향상, 그리고 학교교육의 변화를 기대하기가 어려워집니다. 본질적인 더 많은 것을 놓치게 된다는 것입니다. 어떠한 관점을 가지고 교사가 성장하느냐에 따라 교사의 수준이 결정된다는 점에서 더욱 심각한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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