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의 속도로 찾아가는 삶
오늘 어떤 분위기 좋은 카페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 카페에는 만삭의 아내를 둔 젊은 두 부부가 근처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여기서 한 부부는 아파트 분양권을 가지고 아파트 평수를 넓히려고 하는 얘기를 나누고 있었고, 다른 부부는 지금 원룸인데, 반지하로 옮겨야하나 고민하는 대화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전자의 부부는 후자의 부부의 대화를 들으면서 우리는 저렇게 살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며, ‘그들은 우리보다 불행할 거야, 우리는 저들보다는 더 행복한 것 같다’라는 대화를 나눈게 된다.
내가 이 이야기를 듣고 떠오른 생각은 ‘전자의 부부가 후자의 부부보다 더 행복할 거라고 단언할 수 있는가’였다. 내가 듣기로는 후자의 부부는 그들 나름의 행복을 찾기 위해 분위기 좋은 카페를 알아보고 찾아와서, 서로 사랑하는 이와 함께 아이와의 미래를 어떻게 그려가면 좋을지를 고민하며 서로에게 의지하는 모습이 머릿 속으로 그려졌다. 나는 그저 두 부부가 각자의 삶을 고민하며 각자의 행복을 위해 나아가는 것처럼 느껴질 뿐, 전자의 부부와 후자의 부부의 ‘행복’을 크기의 개념으로 비교할 수 없었다.
생각해보니, 나는 근래에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더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해보지 않았다. 그저 다른 사람들도 각자의 삶에서 힘듦과 행복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고 어렴풋이 인지할 뿐이었다.
사회의 잣대와 경제적인 기준은 명확하게 사람들을 나누어 볼 수 있지만, 그 사람들의 행복마저도 똑같은 기준표로 놓을 수 있다고 단언할 수 없다. 행복만큼은 우리가 각자의 삶에서 온전히 느끼고 받아들이면 되는 것이다. 다른 삶들의 행복과 비교할 필요도 없이 말이다. 그리고 행복이라는 개념은 그렇게 쉽게 가늠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
그러니 나는 내가 어떤 삶을 살게 될 지 몰라도, 어쩌면 사회적 기준으로 좋지 않은 인식 속에서 살아가게 되더라도,
나는 나에게 말하고 싶다.
행복할 자신은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