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잊고 현실에 파묻힌 나날 속에서
나는 오늘도 시체 같은 나를 인지했다.
알람시계에 맞춰 일어나고, 고를 것 없는 누더기를 고민하고, 매일 반복되는 만원 지하철에 나를 태워 보냈다. 그러고 내겐 그저 힘들기만 하고 어렵게 느껴지는 공학 공부를 하고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와서 흘러내렸다.
‘인생을 이렇게 살아도 되는 것일까.’하고 스스로 되뇌었지만, 답을 내리진 못하고 다른 사람들이 만든 세상 속의 블루라이트에 나를 한참 동안이나 가뒀다.
나는 하루에 갇힌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어제와 아무런 차이가 없고 내가 하고 싶던 빛나던 꿈들은 빛을 잃은 채 눅눅하게 상해있었다.
나는 순간적으로 깊은 두려움이 몰려와 도망치듯이 나를 나만의 구급차에 태워 급하게 다른 사람이 쓴 공감에 손을 옮겼다. 타인의 언어에 기대야만 겨우 깊은 밤을 견딜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은 의미 없는 일상들을 보내도 괜찮은 것일까. ”
그 물음에 확신을 주는 대사는 폭싹 속았수다의 드라마 속에서 건졌다.
“살면 살아진다”
이 문장은 내 마음속에 폭 안겨버렸다.
인간에게 고문을 하면 아무리 일상적인 삶에 찌들어 있는 인간이었더라도 그 아픔의 역치를 못 이겨서 부리나케 달려 나가 어떻게든 출구를 찾아낸다. 그러니 무기력한 일상이 쌓이고 쌓여 결국 나를 못 견디게 하면 나는 스스로 병원을 가든, 전과를 하든, 사랑을 찾든, 어떤 방식으로든 삶의 다른 방향으로 나를 보낼 것이다.
그러니 일단 살아보는 것이다. 내가 지금 그 힘듦이 쌓이고 쌓이는 과정 속에 있어서, 달리고 있던 자동차가 완만한 곡선을 그리며 서서히 방향을 돌리듯, 나의 삶도 그렇게 스스로가 행복할 만한 방향으로 서서히 돌아가고 있을 것이다.
나는 그 누구보다도 스스로가 행복하길 바랄 테니 말이다.
오늘도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살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