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이름을 다시 불러봅니다.

이름 시리즈 - 1

by 미온


어릴 적, 나는 따끈한 이름을 받았다. 그리고 그 이름으로 모두에게 당당하게 불려지곤 했다. 내 이름은 OOO이다.

그러다가 나이를 먹고 애를 낳을 때쯤이 되면, 나의 이름을 흐리게 지우고 세상을 배워갈 아이에게 이름을 새겨준다. 너의 이름이 계속 제대로 불릴 수 있도록, 나는 너가 너의 이름을 지우기 전까지는 계속 뒤에서 소중한 배경이 되어줄 것이다.


그렇게 나의 이름은 OO 엄마, OO 아빠로 새롭게 적힌다. 흐려진 내 이름 위에 선명하게.

이때는 내 이름을 늙어버린 나의 부모와 내 친구들만이 불러주며, 그것이 그나마 흐려진 틈에서 존재감을 유지해준다. 새로운 이름으로 새롭게 살아가는 삶. 새로운 생명에게 나도 잘 모르는 세상을 알려줘야하는 시기. 너의 이름이 더 반짝일 수 있도록 갈고 닦는게 나의 생명력이자 삶의 이유가 되었다.



그리고 다 자라버리면, 이제 내 품을 떠나버리면, 결국 또 너의 이름도 지워지겠지. 그때쯤이면, 이제 내 이름을 불러줄 인연이 몇 남지 않겠다. 내 부모는 모두 내 마음 속에 담아두었고, 친구들은 멀리멀리 이름을 잊어가는구나. 그러고 나의 이름은 새롭게 정해지겠지. 나도 당황스럽지만, 더 선명하게 OO 할아버지, OO 할머니. 세월이 얼마나 흘러버린 걸까. 삶의 절반을 너에게 엄마, 아빠로만 불리며 내가 열심히 나의 이름을 지워냈구나.






나는 묻는다.

내 이름을 그렇게 열심히 지워내며, 엄마, 아빠라는 이름을 잘 살아냈을까.

나의 이름을 쓰던 잉크를 탈탈 털어, 너의 이름이 더욱 굳세지면 좋겠다.

어쩌면, 다들 이름을 지워가며 어른이 되는 걸지도 모르겠다. 내 이름을 지우고 누군가의 소중한 배경이 되어 주는 것의 의미를 되새김질 한다.





아아. 우리 엄마, 아빠. OO씨, OO씨.

당신도 그토록 이름을 지워오신 겁니까. 그리고 이렇게 나의 이름을 만들어주신 겁니까.

그동안 이름으로 불러드리지 못해서 미안합니다. 이제서야 내게 세상의 그 무엇보다 소중한 당신의 이름을 조용히 불러봅니다.

OO씨. 당신의 삶은 어떠셨습니까.

당신의 사랑은 어떠셨습니까.

세상이 당신을 떠올릴 때, 더이상 당신이 중점이 아니라, 내가 중점이 되어 설명될 때 어떠셨습니까. 당신의 삶이 나의 삶으로 덮어씌어질 때, 나의 배경이 되어버리는 상황 속에서 당신은 어떤 사랑을 일궈오신 걸까요.




나는 이제라도 당신의 빛나는 삶을 처음부터 끝까지 조명하고 싶습니다.

온전히 당신의 이름으로, 당신이라는 주인공으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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