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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만 원 쓰고도 500원짜리에
더 감동하는 이유

고객을 '땡잡았다' 느끼게 하라

by 강준식

수십만 원 쓰고도 500원짜리에 더 감동하는 이유

[K-브랜드의 생존 공식: 경계 파괴자들] 제3탄


"어차피 이미 지불한 돈에 포함되어 있는데, 왜 원가 몇백 원짜리 서비스에 이토록 감동할까?


얼마 전 지인의 초대로 강남의 한 고급 한우갈비식당을 가게 되었다. 한 끼 식사에 수십만 원이 훌쩍 넘는 제법 비싼 집이었다. 한우의 고기 맛도 정말 일품이었지만 나를 더 흥미롭게 만든 건 매장 출구의 아이스크림 냉장고였다. 식사를 마친 손님들에게 편의점용 아이스크림을 무료로 무제한 제공하는 것이었다. 식당 디저트로 벌크 아이스크림 통에서 직접 퍼 먹거나 소프트콘 기계에서 내려 먹는 건 많이 봤지만, 이곳은 달랐다. 편의점에서 파는 브랜드 아이스크림들이 냉장고에 그대로 진열되어 있어 취향껏 골라 먹는 재미까지 있었다.


작년 부산 출장 때 묵었던 한 호텔도 인상적이었다. 밤늦게 도착한 숙박객들에게 무료 라면을 무제한 제공했다. 너무 고단한 상황이라 호텔 밖으로 늦은 시각에 식사하러 나가기도 귀찮았을 때, 예상치 못한 '공짜 라면'의 고마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국내 어떤 골프장에서는 추운 겨울날 라운딩 중 그늘집에서 붕어빵을 무료로 내주었는데, 하루 라운딩에 20만 원을 훌쩍 넘게 지불한 우리는 고작 붕어빵 하나에 모두 소리를 지를 정도로 감동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상했다. 강남 한우집의 식사비는 이미 수십만 원, 부산 호텔의 숙박비와 골프장 이용료도 만만치 않았다. 원가로 따지면 기껏해야 500원에서 천 원 남짓한데, 왜 우리는 이 작은 서비스에 이토록 감동했을까? 분명 그 비용은 이미 우리가 지불한 금액에 포함되어 있을 텐데 말이다.


한국 시장의 '무료 제공' 문화: '덤'이 '서비스'로 치환되는 심리

예전 글로벌 기업에서 마케팅 담당자로 일할 때, 고객과 진행하는 인터뷰를 한 적이 있고, 외국에서도 마케팅 담당자들이 한국 소비자들을 더 이해하고 싶어 함께 참관한 적이 있다. 한 고객이 우리의 경쟁 브랜드가 우리보다 '서비스'가 더 좋다고 해서, 그 얘기가 무슨 얘기인가 우리는 긴장하면서 더 자세하게 물어봤는데, 그 고객의 의미는 경쟁 브랜드에서는 메인 메뉴 주문 시 콜라를 무료로 준다는 걸 '서비스가 좋다'라고 표현을 했다. 동시통역관 역시도 통역을 'good service'라고 하니 외국 담당자들도 매우 혼란스러워했던 기억이 있다.


그렇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외국과 다르게 '무료 제공'을 '서비스'라고 혼용할 정도로, 유독 우리나라에서만 '무료 제공'이 '서비스'라고 받아들여진다. 고객에게 제공하는 단순한 '덤'이 마케팅에서 잘만 활용된다면 소비자가 받아들이는 가치는 '덤'의 원가보다 수십 수백 배의 가치를 할 수 있는 강력한 툴이 될 수 있다.


더 놀라운 건, 사람들이 그 비용이 이미 포함되어 있다는 걸 알면서도 이런 작은 무료 서비스에 '진짜 가치를 받았다'는 감정을 느낀다는 것이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원가 몇백 원짜리 무료 서비스가 수십만 원짜리 제품보다 더 큰 감동을 주는 현상은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마케팅 효과를 만들어냈다. 마케팅 전문가로서 이 '제로 프라이스 마케팅'의 성공을 단순한 친절 서비스가 아닌, '행동경제학적 소비 심리'의 교과서적인 사례로 주목한다.


'매몰 비용'은 잊고 '현재의 이득'에 반응하는 고객 심리

이 현상을 이해하려면 인간의 소비 심리가 '과거의 비용'과 '현재의 이득'을 다르게 인식한다는 점을 파악해야 한다. 이미 지불한 큰 비용은 '매몰 비용(Sunk Cost)'으로 인식되어 감정적 영향력이 약해지는 반면, 예상치 못한 작은 무료 서비스는 '현재의 순수한 이득(Current Gain)'으로 인식되어 감정적 영향력이 극대화된다.


원가를 넘어선 감동의 세 가지 성공 키워드

제로 프라이스 마케팅이 단순히 '공짜 서비스'를 넘어 실제 브랜드 충성도를 높이고 바이럴 효과까지 창출하는 것은 마케팅적 요인이 분명하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1. 강력한 '제로 프라이스 효과'로 비합리적 감정 자극: 행동경제학자 댄 애리얼리(Dan Ariely)가 제시한 '제로 프라이스 효과(Zero Price Effect)'는 인간이 무료(Zero Price)라는 단어 앞에서 합리적 판단을 잃고 감정적으로 반응한다는 이론이다. 쿠팡의 로켓배송이 이 효과를 극대화한 대표적인 사례다. 고객들은 배송비가 이미 상품 가격이나 멤버십 비용에 포함되어 있음을 알면서도 '무료'라는 단어의 마법에 빠져든다.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공짜'라는 사실 자체가 고객에게 "나는 이 브랜드를 선택한 게 현명했어"라는 '똑똑한 소비'라는 자존감을 심어준다. 굳이 비싼 마케팅 캠페인을 하지 않아도 소비자들이 '이 집은 센스 있다'며 자발적으로 공유하게 만든 것이다.


2. '호혜성 심리'로 브랜드에 빚지게 만들기: 무료 서비스의 진짜 힘은 '호혜성(Reciprocity)' 심리를 작동시킨다는 점이다. 고객은 누군가로부터 무언가를 받으면 그에 상응하는 보답을 하려는 심리가 자연스럽게 생긴다. 자동차 타이어 바람이 빠져서 동네 타이어 매장에 가서 공기를 주입해 달라고 했을 때를 생각해 보자. 매장 사장의 "오늘은 그냥 가세요"라는 말 한마디는 단순한 친절이 아니다. 고객의 마음속에 '빚'을 만들어, 타이어를 교체할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그 매장을 찾게 만드는 전략적인 투자가 될 수 있다. 호텔의 무료 라면, 강남 한우집의 무료 아이스크림, 모두 원가는 몇백 원에서 돈 천 원에 불과하지만, 고객의 마음속에 심어지는 '이 브랜드는 나를 진심으로 배려한다'는 믿음은 재방문과 추천으로 이어진다.


3. '타이밍 × 서프라이즈'의 완벽한 조합: 모든 무료 서비스가 감동을 주는 것은 아니다. 제로 프라이스 마케팅의 효과를 극대화시키기에는 세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 예상치 못한 서프라이즈여야 한다. 고객이 당연하게 여길 수 있는 서비스는 감동을 주지 못한다. 기대 수준을 훌쩍 뛰어넘는 '갑작스러운 선물'이기 때문에 그 가치가 실제 원가보다 수십 배로 증폭된다. 둘째, 타이밍이 중요하다. 식당에서는 식사 후 디저트로, 호텔에서는 밤늦은 시간 허기를 달래주는 야식으로, 골프장에서는 아주 덥거나 추운 날씨에 지친 중간 휴식 시간에 제공될 때 효과가 극대화된다. 셋째, 진정성이 느껴져야 한다. 단순히 마케팅 수단이 아닌, 고객을 진심으로 생각하는 마음이 전달될 때 더 큰 감동을 준다. 특히 SNS 시대에는 이런 작은 감동이 고객들의 자발적 홍보(바이럴 마케팅)로 연결된다.


빼거나 덜어내지 말고, 작더라도 임팩트 있는 걸 더하라

요즘과 같이 극심한 불경기에 많은 기업들은 고민한다. 고객도 줄고 매출도 줄어드는 상황에서 '무엇을 더 뺄 것인가'를 먼저 생각한다. 원가 절감, 서비스 축소, 인력 감축. 하지만 제로 프라이스 마케팅의 성공은 정반대의 접근이 오히려 더 효과적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불확실성 시대의 소비자는 '내가 현명한 선택을 했다'는 확신에 즉각 반응한다. 이들은 큰돈을 썼더라도 원가 몇백 원짜리 서비스 덕분에 '땡잡은 경험'을 선사받고, 재방문과 입소문으로 보답한다.

무엇을 뺄 것인가가 아니라, 어떤 작지만 스마트한 투자로 고객의 마음에 '빚'을 만들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당신의 비즈니스가 제공하는 것이 '단순히 비싸거나 좋은 제품'인지, 아니면 '고객의 똑똑한 소비라는 자존감까지 채워주는 특별한 경험'인지 자문해야 한다.


[전문가의 한마디]


"마케팅은 원가가 아닌 감정에서 시작된다. 기업들이 '원가 절감'만을 외칠 때, 작은 무료 서비스로 '고객 감동'과 '브랜드 충성도'라는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을 때 강력한 경쟁력이 생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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