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상 누구 하나 문제가 생긴다면 조사단도 본사도 매우 곤란해질 수 있기 때문에, 트위스트는 피드를 비롯한 특수 정보부 대원들에게 지금까지 상황을 설명하고 T3D1만 데리고 팀프가 알려준 스네일의 비밀기지로 향했다. "아무 지원이 없을 거야. 그러니까, T3D1 너희들이 잘해줘야 해. 별거 아니야. 들어가는 즉시 만약을 대비한 3단계 대응 시나리오로 기본 세팅하고. 그래도 유사시에는 피드에게 긴급 모드를 위한 채널을 열어둬. 지난번처럼 셔틀에 갇히지 말고… 또… 등등… 열두 번째… " 초점이 흐린 듯한 T3.
- 서북단 4,916셀 외곽 -
"일단 트위스트 님만 들어오시죠" ”네, 아. 그럴까?" 등 뒤의 T3 시선이 따갑게 느껴지는 건 기분 탓인가? 안내 로봇을 따라 지하 목적지로 내려가는 워프 보드에 타며 물었다. "스네일 씨는?" "네. 아래 센터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센터? "와우"
눈앞에 펼쳐진 그곳은, 그냥 센터가 아니라 끝도 보이지 않는 거대한 군 전력 목적의 머시너리 공장이었다. 조사단에서 보았던 마스(Mars) 급 전함 수십 척이 이제 거의 완성된 듯, 줄지어 늘어서 있고, 수많은 자동 로봇과 엔지니어들이 작업하고 있다. 이미 오믹스함과 같은 급의 특수 전함은 이미 수백 척 이상이 진열장에 비치되어 있듯이 준비 되어 있었다. 뭐지? 이걸 비밀리에? "트위스트. 또 보다니 반가워" 스네일? 지난번부터 반말인데 D1을 불러 충격파를 한번 선물해야 하나 하고 뒤돌아 봤을 때, 제복 입은 그는 완전히 또 다른 모습이었다.
"스네일 총사령관, 그분인가?" 그의 뒤에 그보다 더 연류가 있어 보이는 자를 포함 6명이 반갑게 맞아 주었다. 그중 한 명이 스스로 작전참모라고 소개하며 악수를 청했다. "오셨군요. 우리의 구세주. 트위스트밤!" 반기는 건지 비꼬는 건지 모호하다. 서로 간단한 소개 후, 트위스트가 작전참모에게 물었다. "여긴 위원회 산하기관이 아닌 것 같은데, 무슨 목적으로 마르스급 함정들과 특수 전함들을 저렇게 많이 건조했죠? 설마, 쿠데타?" 직설적인 질문에 작전참모를 비롯한 다른 이들이 서로 마주 보며 머뭇거릴 때, 스네일은 그들 대신 "이주"라고 간단하게 말하고, 웃으며 다른 이들은 각자 위치로 돌아가게 하고는 트위스트를 센터 브리핑 룸으로 안내했다.
트위스트가 안내받은 자리에 앉자마자 "응, 들어오라고 해"하고 어딘가 지시하는 듯하더니, 곧 다른 문이 열리고 T3D1이 들어왔다. T3가 트위스트를 보자마자 억울하다는 듯이 이른다. "저기 따라오라고 해서 스캔하고 막 뭐 테스트하고… 3단계 대응이고 뭐고… 어쩌고… 짜증… 저쩌고…" 쉼 없이 말한다. 이를 본 스네일이 크게 웃는다. "자유도가 높다더니 저런 표현까지 하는구나!" 이제야 스네일을 인식한 T3. "안녕, 꽃미남 아저씨" "D1" 충격파. 스네일이 흠칫 놀랐다.
오래 기다렸다. 농담할 기분이 아니다. 조금 전부터, 지난번처럼 벨트 쪽에서 자꾸 작은 진동들이 느껴진다. 그날 이후 혹시 빛이 새어 나갈까 봐 덮개를 한 겹 더 싸뒀다. 스네일 씨… 아니 스네일, 그쪽도 자꾸 반말하니까 편하게 부를게" 스네일은 고개를 살짝 비틀며 당연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럼 이것부터 해결하자. T3 일어나. 복원 영상 보여줘" 영상 속 자기 모습, 팀프 그리고 트위스트 2의 모습을 보는 스네일의 얼굴엔 조금씩 진지함이 묻어나고 있다. "저 영상 속 여자 잘 알지?" "알지. 트위스트2. 네 언니" 응? 별로 흔들리지 않네. "언니가 소멸된 당일 오전에 너는 캐드헤린 스위치 조절국에 가고 있었어. 맞지?" "응. 그래. 너도 보고 있었잖아. 반가워서 인사도 했고" 역시 그의 특수렌즈로 날 ‘역 모니터링’ 하고 있었다. "반가웠다고? 그럼 언니가 그 전날 1,123셀에 간다는 것을 알고 있었어?” “아니, 난 몰랐지" "언니가 알려주지 않았어?" "응. 나한테 알려주지 않았는데, 그런데 왜 네 언니가 나한테 그걸 알려줘야 한다고 생각하지?" 그의 냉정한 듯 말투에 순간 부글거리는 마음을 애써 차분히 가라앉혔다. 차분해지자. "뭐 연인이라도 비밀 작전이면 알려 줄 수 없는 사정이 있다고 칠게. 그럼, 왜 언니 추모식에는 왜 나타나지 않은 거야?" "어...난 그때, 다른 중요한 일이 있었거든"
이제 못 참겠다. 너무 뻔뻔한 모습에 화가 너무 난다. 벌떡 일어나며, "스네일! 넌 언니의 연인이라면서 어떻게 그걸 모를 수가 있지? 그리고 이렇게 뻔뻔하게 날 대할 수가 있어! 어쩔 수 없이 몰랐다 해도 추모식에는 나타났어야 하고, 그리고 적어도 날 봤을 때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니야?" 스네일은 멈칫했다. 갑작스러운 트위스트의 분노에 잠시 멍한 듯 있다가 말했다. "언니의 연인은 내가 아닌데?" 순간, 트위스트도 당황했다. "그… 그럼 누군데?" 그는 자신의 벨트 속에서 보랏빛을 발하고 있는 구슬 하나를 조심스럽게 꺼냈다. "저 영상을 찍고 있는… 나의 하나뿐인 형 스네일2 (SNAI2, O43623)" T3는, 다시 누워있기로 했다.
"그럼, 당신 형님 스네일2도 그날?" 스네일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스네일2 의 추모식. 트위스트는 순간 어디론가 숨어버리고 싶었다. 이걸 어쩌지? "저… 기, 아르기닌 커피 한 잔 마실 수 있을까? 우리, 차… 그래… 차분하게 얘기 나눠봅시다" 하며 슬며시 자리에 앉았다. 스네일은 서빙봇에게 마실 것을 요청하고 말했다. "오해였다는 걸 지금이라도 알아서 다행이네. 어쩐지! 지난번 트위스트 널 구하러 갈 때부터 내가 테러범들과 같은 무리라고 여겼기 때문에 냉랭했던 거로 생각했어. 전략적으로 그렇게 오해하게끔 일부러 그랬거든. 그런데, 그렇게 53의 기습에서 구하고 나서도 뭔가 내게 거리를 두고 차갑게 대한다고 느꼈었는데. 내가 언니의 연인으로 생각하고 있었다니. 이런 경우가 생길 거라고는 미처 생각하진 못했네, 하하…" 머쓱한 분위기를 바꾸려는 스네일의 반응에 트위스트는 언니의 삶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게 없는 나 자신에게 왠지 모를 화도 나고 더 부끄러웠다.
"우선 오해했던 거 사과할게. 그동안 언니한테 잘해주지 못한 것에 대한 내 미안한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 거 같아. 언니는 EX스페이스셔틀 프로젝트에 참여할 때부터 본사로 스카우트되어 특별 정찰 활동하는 내내 기밀이라고 하면서 내게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아서" "그랬구나, 난 이미 네 언니에게서 너에 대한 많은 얘길 들었었지. 사실 언니가 널 소개해 준다고 했는데 서로 바빠서 그럴 기회는 없었지만. 비밀리에 해야 할 것도 많았고. 대신 머시너리 사에서 나를 담당하는 엔지니어로 일부러 널 지목해서 요청하도록 만든 것도 네 언니 트위스트 2 야"
EX 스페이스셔틀 프로젝트 당시 그와 그의 형 스네일2는 역시 팀프와 한 팀이었고 언니는 다른 부서였다고 했다. 언니와 스네일2가 연인 사이로 발전하면서 자연스레 그들과 어울리게 되었다고 한다. 스네일이 셀 연합회 위원장의 지시로 이 비밀스러운 기지 구축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을 때 외부로 발설되는 것을 염려할 때, 언니가 같은 회사에 근무하고 있는 동생을 스네일의 머시너리사의 담당 엔지니어로 추천했단다.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친구라고 하면서. 추후 프로젝트가 수면 위로 떠올라도 믿을 수 있을 거라고, 또 자신이 동생에게 설명할 수 있다고. 그리고, 53의 테러 조짐이 있어서 비밀기지 총사령관인 스네일의 보호차원에서 위원장의 지시로 그의 로봇들에 모니터링 시스템을 설치해 두었다고, 그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스네일을 의심 한 건 완전히 오판이었다. 언니. 그랬구나. 아무것도 말해 주지 않은 언니한테 투정 섞인 짜증을 냈던 게 더 후회된다. "그래서 나는 오늘 스네일, 당신에게 더 듣고 싶은 게 많아. 당신의 그 이상했던 행적까지도"
고개를 끄덕이며 스네일이 대답했다. "그래서 여기로 와달라고 부탁한 거야. 이제 트위스트 당신도 모든 것을 알 때가 된 것 같아서. 나도 당일 오전 그때까지 형이 1,123셀에 있었다는 것을 몰랐어. 우리 모두 53의 거짓 정보에 속았지. 아마 53은 형과 당신 언니 그리고 나까지 한꺼번에 소멸시키려고 계획했던 것 같아. 당신 언니가 당일 새벽 팀원들을 따 돌리고 다시 돌아간 것은… 짐작하겠지만 위기에 처한 형을 구하기 위해서였어" 그가 고개를 돌려 보고 있는 시선을 따라 한쪽 벽면에 떠 있는 영상. 구슬로 변하기 전에 담은 스네일2의 벨트 모습이었다. 'Slug' 사인의 도메인 (domain, 특별한 기능을 갖는 3차 구조) 포켓을 갖고 있던 벨트가 구슬로 변하기 전에 스네일이 일부러 영상으로 남겨 놓은 것이라고 생각하니까 그 마음이 이해되면서도 아렸다. 언니의 추모식 날 형의 추모식을 하고 있었을 그가 동시에 떠올랐다.
"왜, 53은 그런 짓을 벌였지? 현재로서는 전혀 이해되지 않아. 그간 표면적으로 보여준 그의 모습은 날 위해 그렇게 했다는 친구들의 말 그대로를 믿고 싶을 만큼이야. 물론 뉴럴 네트워크의 일급 간부라는 사실에 정신이 들긴 했지만" "회장이야… 간부급 정도가 아니라" "뭐?!" 더 놀랄 것이 남았나 싶을 정도로 놀랐다. "놀랐지, 트위스트? 그런데, 모든 걸 설명하기 전에 우선, 이거 보이지?" 그의 손에 든 구슬이 계속 간헐적 진동을 하고 있다. 트위스트도 여기 들어온 내내 벨트의 진동이 계속 신경 쓰였는데 지난번 스네일과 만났을 때의 상황이 우연이 아니었다는 게 이제 확실해졌다. "우리, 이것부터 해결하는 게 어때? 언니의 구슬 색은 뭐지?" "당신 형 거랑 색이 비슷해. 밝은 보랏빛" 하며 구슬을 꺼냈다.
그때 양쪽의 구슬들이 강하게 진동을 일으키며 요동쳤다. 이어 엄청난 힘으로 각자의 손아귀를 튕겨 나가듯이 벗어나 서로 자석처럼 붙어서 공중에서 빠르게 회전했다. 트위스트와 스네일이 깜짝 놀라 일어났지만, 구슬 주변에 살짝 빛이 나면서 다시 서서히 회전하는 것이 마치 꿈결에 보는 느낌이 들면서 이내 차분하게 지켜보게 되었다. 그렇게 몇 분을 돌다가 서서히 테이블 위에 내려앉았다. 서로 보고 싶었던 걸까. 마치 두 사람의 애틋한 마음이 서로를 어루만지는 것처럼 보여서 보는 내내 먹먹한 마음마저 들었다. 문득 지난날 '마음과 구슬 개론 II' 수업 때 들었던 내용이 떠올랐다.
[살아생전 사랑이 깊었던 연인들의 구슬들은 보랏빛을 띠며 지닌 이에게는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힘이 다른 구슬의 몇 배가 되며, 다음 생으로 넘어가면서 별이 될 땐 엄청난 빛에너지를 발산한다. 만약, 어떤 이가 두 개를 동시에 지니고 있는 동안 별이 되면 그 순간은 수십 킬로미터 이상의 강력한 빛에너지로 변하는데 이때는 강한 플라스마 에너지도 생성되어 닿는 곳까지 특별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특히, 각각의 구슬을 서로 다른 이가 지니고 있다면, 가까이 있을수록 공명이 생기며 잔잔한 진동으로 지닌 이들을 서로 끌어당기는 현상이 생긴다. - 마음과 구슬 개론 II - ]
"이 떨림들이 바로 책으로만 배웠던 '공명'이구나" 스네일이 고급스러운 작은 투명한 그릇을 가져와 눈짓으로 트위스트의 동의를 받아 두 구슬을 잠시 나란히 두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그나마 따스해졌다. 이제 트위스트는, 그의 앞으로 의자를 바싹 당겨 앉아서 그동안 궁금했던 많은 질문들을 하나씩 꺼내 보기로 했다. "자 그럼, 이제 EX 스페이스셔틀 프로젝트부터 시작해 볼까요? 꽃미남 씨?" 스네일은 미소를 띠며 그동안 정리 수집했던 자료들 수백 개를 띄우고 그중 'Zeta 등급 보안영상 001'을 선택한 후 렌즈와 벨트 인식을 통해 암호를 해제하며 말했다. "오케이. 마음 단단히 붙들어 매고 하나씩 열어봅시다. 판도라 상자를"
트위스트와 T3D1 모두 눈이 휘둥그레 해졌다. 영상에는 처음 본 외계 생명체가 스스로 남긴 듯한 영상 메시지가 담겨 있었다.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 같은데 우리 언어로 번역한 자막이 자동 생성되고 있다. 그리고 화면 하단에 그 생명체를 지칭하는 이름이 이렇게 쓰여 있었다.
'김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