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귀 후, 오랜만에 참석하는 조사단의 첫 브리핑 시간이다. 단장, 부장 및 중급 이상의 간부들까지 참석하는 것이어서 트위스트는 대회의실로 이동 중 페론 단장으로부터 긴급 호출을 받았다. 손님이 오셨다고 한다. 단장실 문을 열고 들어가 단장에게 경례하고 있을 때 뒤돌아보는 손님의 얼굴을 보고 깜짝 놀랐다.
"53!" 순간, 본능적으로 벨트의 플라스마 건을 뽑기 위해 손을 허리춤으로 옮기는 그때, 또 다른 모르는 이가 스윽 비스듬히 그녀의 손을 가리면서 비스듬히 섰다. 아무런 눈치를 채지 못한 듯한 뉘앙스로 단장이 말했다. "어서 와 트위스트. 자네도 잘 알지? 53 님. 자네 언니 추모식 진행하셨던" 아. 그렇지, 지난번 M1 방어하다 소멸된 페론의 사단 병력을 위한 추모도 53 바로 이 자가 주도했다고 했다. 그 친분을 핑계로 여기까지… 정말 대담한 자다. 내가 단장에게 보고했을 수도 있는데 그걸 감안하고도 이렇게 기습적으로 들어오다니. "이쪽은 21, 53의 수행 비서야. 처음일 테니 서로 인사 나누게" 이자였어. 내 손을 가린 자 21, 기억해 두겠다. 그 의미심장한 웃음도. 악수하는 동안 21의 어깨너머로 53의 목소리가 들린다.
"이번에 'LPS 슈퍼볼 개발'로 저희 셀들을 M1으로부터 구해주신 것을 대신 감사드리러 왔습니다. 셀 이탈 방지 위원회에서 준비한 작은 선물입니다"
"아… 아. 네 저야말로 감사하죠. 언니를 잘… 보낼 수 있게 해 주셔서"
허리춤에서 손을 내리며 T3D1 전용 라인에 슬쩍 채널을 열어뒀다. 업데이트를 위해 T3D1을 두고 온 것이 후회된다. 53이 말했다. "곧 회의가 있다고 하니 저희는 선물만 전달하고 바로 가겠습니다. 페론 단장님, 바쁘실 테니 따로 전송 나오지 마십시오. 21, 어서 드리게" 21은 트위스트에게 선물 박스와 함께 파일이 든 작은 칩을 슬쩍 전했다. '조작 및 위험 물질 없음' D1의 분석 결과를 렌즈로 확인 후 트위스트가 말했다. "선물 감사합니다. 다음엔, 제가 인사드리러 갈게요. 저도 드리고 싶은 선물이 있어서" '당신의 추모는 누가 해줄지 모르지만' 란 말이 뒤이어 튀어 나갈 뻔했다.
복도를 따라 빠른 걸음으로 회의실로 향하면서 선물 박스를 휴지통에 버려버리고 트위스트는, "T3. 프카에게 레이블링 (labeling, 표식) 타깃 동선 추적 부탁한다고 하고 채널 열어줘" 21에게 칩을 받는 그때 몰래 그자의 몸에 표식용 양자물질을 뿌려두었다. 선물 배송 주소 정도는 알아야겠지?
- 조사단 대회의실 -
"저희 외인부대에서 그간 조사된 결과를 발표하겠습니다" 팀프의 대원이 그간 외인부대에서 M1 출몰 관련 수집된 자료를 공유하기 시작했다. 자리에 앉은 트위스트는 21로부터 받은 자료를 렌즈에 업로드시켰다. 자료는 영상이었다.
'내가 갔던 4,916셀 그 비밀기지 입구? 몰래 촬영한 듯한데 저런 영상을 찍을 정도면 내부 첩자인가?' 그때, 스네일과 그의 대원 몇 명이 셔틀을 타고 이동하는 모습이 보인다. 도착 장소는 셀 위원회 소속 카인(kine) 저장창고. 그들은 'TGFB1 활성용'이라는 박스를 몰래 옮긴 후 두 개의 셔틀에 나눠 싣는다. '저걸 왜?' 하는 사이 하나의 로켓 셔틀이 출발하고 뒤이어 다른 로켓 셔틀이 출발할 때 셔틀 옆에 선명하게 '1,123셀'이 찍혀 있는 것이 보였다. 다음 장면을 보다 깜짝 놀랐는데, 첫 번째 셔틀에서 물질이 발사되자 우주에 있던 TGFB1 카인들이 순식간에 셀 표면 수신기에 달라붙고 이어 수 십대의 활성화된 SMAD 2 / 3 셔틀이 지나가는 그 사이로… 빨려 들어갈 뻔한 트위스트 본인의 모습이 찍혀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럼 그날 나를 소멸시키려고 했던 것은 53이 아니라 스네일? 게다가, 두 번째 셔틀은 분명 그다음 날 바로 언니가 있던 그 소멸된 1,123셀로 날아갔을 것이다. 스네일, 당신이 도대체 뭘 한 거지? 그때, 대원이 발표하는 내용이 들려온다. "세 번째로 저희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나빠지고 있는 환경적 요인에 의해 비특이적으로 발생했다고 추정했던 TGFB1의 셀 수신기 충돌은 누군가에 의해 인위적으로 촉발된 것으로 볼 수 있는 정황들이 확인되었습니다" 페론 단장이 물었다. "누가 그런 짓을 한 건지 특정했나?" "아직 모릅니다. 조사 중입니다" 트위스트는 조용히 회의실을 빠져나왔다. "T3D1, 셔틀 준비해. 목적지는 4916셀. 스네일 전용 채널 오픈 시켜둬" 53의 과감한 침투는, 성공했다. 적어도 이 순간만큼은.
----------
"고마워, 트위스트. 센터에서 방금 체포한 내부 첩자가 모든 혐의를 시인했다고 연락해 왔어.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지위를 이용해 지난번 기습 직전에 업그레이드한다고 해서 내 로봇들을 묶어둔 것도 그야. 그러지 않아도 센터 보안팀이, 비정기적인 업그레이드 타이밍이 하필 기습 직전이어서 수상히 여기고 있다가 그의 출입 기록을 전수조사하고 있었다고 하더라고" "응 다행이야. 스네일. T3D1은 4,916셀에 잘 도착했대? 일부러 채널을 닫았더니" 잘 도착해서 그의 로봇들과 잘 놀고 있다는 얘기와 함께 스네일이 물었다. "트위스트. 53이 우리 사이를 갈라놓으려고 놓은 덫인걸 어떻게 알았지?" "나 분석 전문가인 거 알지? 데이터 너머 진실을 보는 훈련 정도는 되어 있다고. 물론 지난번엔 크게 틀렸지만" "그렇구나! 아무튼 이번에도 내가 빚졌어" 그가 고마움의 표시로 악수를 청한다. "그런데 정말 뭘 한 거야 스네일? TGFB1은 왜?" "테스트, 셀 분리가 유도되는지 테스트한 거야. 이주하려면 우선 다른 셀로부터 분리되어야 하니까. 다음날 E-캐드헤린 상황을 모니터링 하려고 조절국에 갔던거고" "그 때문에 내가 소멸될 뻔했잖아!!" "미안, 미안…" 머리를 긁적이며 미안해하는 스네일.
이곳은, 지난번 그를 처음 만났던 장소. 트위스트가 좋아하는 빛이 몇 줄기 내려오는 그곳이다. '53이 준 영상을 본 내가 흥분해서 4,916셀이 아닌 스네일이 있는 그의 다른 셀 기지로 갔다면, 뒤를 몰래 밟혀 그의 또 다른 기지 그리고 그와 나 모두 위험에 빠질 수 있었어' 지난번 스네일이 개설해 준 그와의 비밀 채널을 통해 이곳에서 만나기로 하고 셔틀에는 T3D1만 태워 지난번 방문했던 곳으로 보낸 것이다. "스네일. 내가 진짜로 보자고 한 건 이것 때문이야" 영상 속 점 하나가 빠르게 이동 중이다. "이게 뭐지?" "53의 수행비서, 21의 현재 위치" "라벨링에 성공했구나!" "응, 이 정보와 당신이 방금 체포한 첩자를 역이용해 53에게 선물을 줬으면 해서" "좋아, 천천히 전략을 생각해 보자. 그리고 나도 보답으로 지난번 당신이 충격이 큰 것 같아 미뤘던 정보 하나 더 줄게. 1,123셀 상황에 대한 오해도 완전히 풀 겸" 스네일은 트위스트에게, '독립 셀 네트워크' 소속 해커들에 의해 입수한 자료를 하나 보여주었다. 셀 이탈 방지 위원회가 작성한 가장 최근의 기밀 리포트였다. 1,123셀?! 트위스트는 놀란 눈으로 스네일을 쳐다본 후 다시 들여다봤다.
[특수보안 기밀 2023호_1123셀 소멸 분석 리포트] … 중략 … 1123셀 소멸 후 에너지 변화를 조사한 결과: 브래그 피크(Bragg peak) 현상이 확인됨. (브래그 피크: 막대한 방사선량이 특정 부위에 집중되다가 급격히 떨어지는 현상) 추정 결과: 탄소를 빛의 속도로 가속화시켜 1,123셀을 파괴하는 것으로 추정됨. 상호 조약 '1,905'는 유효하며, 지속 가능함을 증명함. - 셀 이탈 방지 위원회 위원장 TP F.T.-
"이 상호조약 이란 게 뭐지? 누구와 누구의 상호조약 이란 거고 또 1905는 뭐야?" 셀 이탈 방지 위원회 소속 키스는 비밀회의 때 한 번도 이에 대해 언급한 적이 없었다. "위원장이 누군지 알겠어?" 스네일이 물었다. "아니… TP 면 tanscription (전사)아… 아니네 뭐지?" "Tumor Protein [종양 (암) 단백질]의 약자고" 느낌이 싸하다. "그럼 F.T.는 Fifty-Three?? 53?!"
"그래 TP53, 그가 바로 셀 이탈 방지 위원회 위원장이야" Why not? 이젠 더 이상 놀랍지 않다. 워낙 신출귀몰 한 그이기 때문에, 오히려 이제 그래야 할 것 같은 생각마저 든다. "뭐라고?" 그래도 입은 놀란 모양이다.
"그럼 상호조약 상대는?"
"인류"
"그… 그럼.?" "인류에게 우리 셀들의 일부를 소멸시키게 하는 대신 53과 그의 조직들의 지휘권을 보장받는 것. 그게 상호조약 1,905야. 숫자 그 자체가 의미하는 게 뭔지는 아직 몰라" 결국, 진심으로 놀랐다. 그것도 기절할 만큼. 키스는 전혀 모를 텐데. "아무튼, 그 인류가 사용했을 거로 생각되는 '중입자 탄소 빔'에 1,123셀은 소멸 된 거야. 우리 로켓 셔틀은 그 덕에 셀 근처도 못 가 공중분해 돼 버렸지" 또, 일기를 써야 하나. "우리… 잠깐, 걸을까?"
"나는 그동안 어떤 치열한 역사가 있었는지 몰랐어. 아니, 모르고 싶었던 건가. 사실 외면하고 살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네. 그저 머시너리사 VIP고객 관리를 하며 하루하루 쳇바퀴 돌 듯 살아왔는데. 돌이켜보면 언니는 마음의 짐을 혼자 짊어지려고 한 것 같아. 같은 회사에 있었는데도 전혀 몰랐어. 이 엄청난 진실들의 파도에 짓눌릴까 봐… 동생만은 자신과 같은 갈등의 바다에 빠지게 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겠지?"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어. 네 언니가 종종 들려주는 너의 얘기는 마냥 어리고 보호해야 하는 친구는 아니었어. 오히려 자신보다 더 뛰어난 미래를 보여줄 거라고 확신했었거든. 물론 지금처럼 예상보다 빠르게 전개되리라 예상 못 했겠지만. 그리고 지금도 이렇게 널 지켜주고 있잖아" 무심결에 진심이 묻어나는 그의 따뜻한 한마디. 스네일과 나란히 걷는 동안 느껴지는 언니의 구슬이 전해주는 가벼운 진동이 마음을 더 설레게 한다. '지금 옆을 걷고 있는 그는 어떤 마음일까?'
스네일의 설명에 따르면, 현재의 TP53 혹은 p53으로 불리는 그는 스스로 일종의 호메오스타시스 (Homeostasis, 생명의 항상성 유지) 주의자로 부른다고 했다. 사회적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셀의 질서를 조절하는 마스터로서의 자기 역할에 부여하는 정당성이며, 그를 동조하고 따르는 조직원들에 대한 가스라이팅을 통해 충성심의 결집을 꾀하는 것이다. 역사적인 관점에서 보면 어이가 없을 만큼 꽤나 웃기는 주장인데, 그 김 박사라는 인류가 '암'이라고 부르는 변화가 생기는 시작이 바로 53 그 자신들의 호메오스타시스 역할을 상실하면서부터였다는 점이다.
지금으로부터 셀력으로 계산 했을때 약 2,500일 이전에는 우리가 사는 곳이 그저 평범한 셀 들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어떤 이유에선지 53의 집안에 변이(Mutation)가 생겼고 그 가운데 기능 상실 변이(loss of function)가 주류를 이루는 시점에 도달하면서, 일정한 속도의 세포 분열 주기가 점차 빨라졌고 오늘에 이르렀다고 역사서에는 기록되어 있다. 그런 과오를 가진 그들이 겸허하게 반성하기는커녕 언제 그랬냐는 듯이 살생부를 작성하듯 소멸할 셀들을 지목하다니. 권력욕에 사로잡혀 눈이 먼 건가? 그리고, 스네일에게도 일기를 쓰며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그럼, 너와 너의 조직들이 이주를 통해서 하려는 것은 뭐지? " 어느새 서로 '당신'이라는 호칭은 던져버리고… "대화" "누구와?"
"인류" "응? 인류와 대화?"
"그래,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혹은 소멸해야 할 것인가를 스스로 고민하기 전에 우선 인류와 대화를 통해 그 해답을 얻으려고 해. 지금은 그저 그들에겐 우리가 살고 있는 셀이 없애야 할 존재이고 53에겐 저들에게 던져줄 희생양일 뿐이야. 가장 힘든 것은, 우리 자신의 선택권과 자유가 박탈당하는 상황에서 무기력하게 소멸되기만을 기다리는 마음이 조금씩 퍼져가고 있다는 거야. 그래서, 위원회에서도 이주를 위한 비밀 프로젝트를 준비했던 거지"
"그건, 나도 찬성이야. 소멸이 되더라도 내가 결정하고 싶어. 가치 있는 일이 분명하고 다음 길을 기쁘게 갈 수 있는 준비만 되어있다면"
그때, 스네일이 멈춰 서서 트위스트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도 난 네가 소멸되는 모습을 보고 싶지는 않아, 트위스트"
머리 위로 비치는 몇 줄기의 빛이, 어느새 손을 맞잡고 걷는 그들의 길을 비춰주고 있다.
"인류와 대화가 가능할까?"
"그들이 원한다면 가능할 거라고 생각해"
"방법이 있어?"
"우선 53이 어떻게 인류와 그런 조약을 맺었는지 알아내고, 이주를 통해 안정되면 인류와 채널을 열고 대화해 보려고 해. 그게 가능할지는 여전히 미지수지만"
"언니가, 너희 형제랑 근무할 땐 어땠는지가 궁금해. 너의 형과의 사이도. 얘기해 줘" "난 네 얘기부터 듣고 싶은데?"
"제가 해드리겠습니다. 꽃미남 씨" 둘이 동시에 놀라 뒤돌아봤다. T3가 어느새 셔틀을 세워두고 졸졸 따라다니고 있었다. "D1" "우리 조용한 데 가서 좀 더 얘기 나눌까? 스네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