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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든라이언 Dec 31. 2023

호접의 난難

그냥 시 2

'그냥 얌전히 바람 따라 날아다닐걸 그랬다.'


찢어진, 그마저 빗물에 젖어 서로 붙어 버린 날개 비틀린 그 끝 털의 감각으로 전해지는 점점 쌓여가는 무게에 고통이 집중되다가 '툭'하고 떨어지는 물방울과 즉시 반대방향으로 튕겨 오르는 눈꺼풀이 문득 후회를 사정없이 끌어올렸다.


파르르 떨며 꺾인 더듬이 펼치며 흩어지는 비말 위에,

응애 하며 소리 지르는 대신 이마에 링거 꽂고 눈물만 뚝뚝 흘리며 태어난 그래서 세상이 찌그러진 것인지 찌부르뜨리고 싶은 세상에 난 건지 언벨런스 한 그 눈동자에 반사된 내 흐린 초점이 겹치며 스쳐 지나간다.


쉬운 삶이 기다릴 리가 없었다.


불바다 사주를 타고난 그래서 ADHD는 늘 가볍게 가지고 놀았고, 열병은 사계절 친구로 붙어있으면서 아프다는 게 뭔지 잊지 않게 배려해 주고 언제라도 증발할 것 같은 아득한 정신덕에 글 한자 쓰는 게 힘들어 오로지 머릿속으로 천 번 만 번 외는 것으로 버티며 부모니의 지극한 온실 속에 제 잘난 줄 알고 나풀거리며 날아다녔다.


어느 날, 창 밖의 바람이 불어 들어와 다른 세상 향기를 흩뿌리고 사라지는 게 아쉬워 따라나설 때 그게 천둥번개 달고 다니는 태풍의 선물인지 미처 몰랐다.


오쇼 라즈니쉬, 크리슈나무르티, 라마하 마하리쉬, 장자와 달라이라마의 손짓은 자꾸 바람을 거슬러 올라가라는 뜻으로 알았다. 하지만 늘 하늘에 이리저리 빙빙 돌며 방황하는 것 외에는 딱히 할 일도 뭔가 할 수도 없는 그 어느 날...


성철선사의 천둥번개에 맞았다.

숭산선사의 몽둥이에 깨지고,

성수선사의 창에 뚫리며,

진제선사의 폭우에 젖었다.


찢어진 날개에는 눈이 생겼고,

그날부터,

조금 다르게 보인다.


큰일이다.

세상은 변함없이,

물고 뜯고 찢고 소리 지르느라 바쁜데.


제 누울 꽃잎하나 못 찾아,

헤매는 내 날개가

무슨 바람을 일으킬세라..


일단,

이파리 뒤로

숨는다.


찾지 마,

물지도 몰라.


묻지 마,

울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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