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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든라이언 Feb 17. 2024

동화

밝은 빛이 살짝 비치는 듯했지만,

이내 사라졌다.

저녁?

잘 모르겠어.

고개를 계속 파묻고 잠들었으니.

"톡"

하고 들려오는 익숙한 소리에, 축축하고 무거운 눈꺼풀을

근근이 끌어올리며 답했다.

"네?"

"오. 지금은 깨어 있구나! 아침엔 왜 아무 말이 없었니?"

그림자 때문이었구나.

아주 잠깐 망설였지만, 따뜻하고 다정한 목소리에 이끌려 말했다.

"사실, 마음이 너무 힘들어서.. 요."

"응. 그랬구나."



그때 오른쪽 어깨가 닿아 있는 벽면이 살며시 따뜻해진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착각.. 일까?

"바깥으로 나오는 게 겁나니?"

"그게 아니... 네.."

대답하며 고개를 슬며시 벽 쪽으로 기대어봤다. 따뜻해.

"조금 전까지는 소란스러웠는데 지금은 조용하지? 친구들은 모두 넓은 정원에서 놀고 있어. 이제 편하게 얘기해 보렴."

목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고개를 살짝 들고 물었다.

"네? 정원요? 거기 위험하지 않아요?"

"응? 왜 그렇게 생각하니?"

"얼마 전에 친구들한테 들었는데, 정원에는 무서운 짐승들이 종종 나타난다고 하더라고요. 들고양이나, 가끔 순식간에 채어가는 매나 독수리 또, 종종 사나운 개들과 마주칠 수도 있고."

"하긴, 그런 짐승들을 갑작스럽게 마주치면 깜짝 놀라고 또 한편으로는 위험할까 봐 무섭기도 하지."

"와, 정말 맞네요. 그 얘기들이.. 그래서 저는 밖으로 못 나가겠어요. 겁이 나요."

"그래. 이해한단다. 예전에 몇몇 친구들도 너처럼 비슷한 걱정을 했었거든. 네가 들은 이야기들처럼 위험한 짐승들이 간혹 나타나는 것은 사실이야. 늘 위험이 도사리고 있어서, 나도 다른 친구들도 그런 위험에 빠지지 않았으면 하는 기도를 늘 한단다."

"게다가, 저는 사람들.. 때문에 더욱 나가고 싶지 않아요."

"그렇구나, 그런데 지금은.."

그때, 뭔가 벽 바깥 오른쪽에서 갑자기 후드득 소리가 났다. 무슨 일인가 하고 생각할 사이도 없이, 누군가가 다다닥 뛰어와서는 오른쪽 벽에다 "셋째 발가락!"하고 소리치더니 순식간에 멀어졌다.

깜짝이야! 뭐지?..

익숙한 목소리인데...




아! 맞다. 그 친구는 어제 밖으로 나갔지. 벽을 두고 대화할 때보다 너무 또렷이 들려서 잠시 헷갈렸지만, 그 친구 목소리가 분명해. 재밌던 그 친구 생각에 순간 웃음이 났다.

"아는 친구니?"

"네. 저 친구가 바로 옆에 있던 친구였는데 벽 바깥쪽 얘기들을 많이 들려줬어요. 자기가 있던 곳이 바깥쪽에서 제일 가까운 경계에 있었는데 어쩌다 제가 있는 곳 근처까지 왔다고 하더라고요."

"응, 그렇구나. 고 녀석 참 재빠르네."

"그런데, 셋째 발가락은 무슨 뜻일까요?"

"글쎄다. 무슨 뜻일까? 음.. 그런데, 너 춥니?"

몸이 축축해서 가끔 부르르 떨린다.

"뭐, 익숙해서 괜찮아요." 하며,

어깨를 모으고 고개를 더 숙여 온기를 더해보려 하는데,

왼쪽 어깨 쪽에 따스함이.. 이번엔 확실히 느껴졌다.

"사람들은.. 아.. 아니에요. 이제 가보세요. 다들 기다리는 거 아니에요? 전 혼자 있어도 돼요. "

"괜찮아. 나는 너랑 얘기 나누는 게 좋아. 하고 싶은 얘기 얼마든지 해도 돼. 궁금한 거 있음. 질문해도 좋고."

한 번만 더 확인해 볼까?

"그럼 궁금한 게 있어요. 대부분 사람은 보통 눈을 마주하고 쓰다듬고 안아주고 하면서 따뜻하게 대해준다는데, 사실인가요?"

"응 맞아, 친절하고 마음씨 좋은 사람들은 그렇게 마음을 표현하기도 해. 다들 방식은 다르지만."

"그럼 무서운 사람.. 들은요?"

"무서운 사람들?"

약간 놀란 듯했지만 이내 차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아까 그 친구가 얘기해준 거니?"

"아니오, 아까 친구랑은 완전 반대편 구석에 있던 친구가 곁에 왔을 때 벽 너머로 들려준 이야기예요."

"그래? 그렇구나. 그럼 좀 더 얘기해줄래?"




고개를 다시 가슴에 파묻고는 심호흡한 뒤 고개를 살짝 들어, 조심스레 입을 뗐다.

"어떤 나쁜 사람들은, 눈도 마주치지 않으면서 가까이 가면 돌을 던지거나 쫓아다니며 괴롭히기도 하고 심지어 거꾸로 매달아서 어디론가 사라지기도 하는데 그러고는 다시 돌아오는 경우를 본 적이 없다고 하더라고요. 정말 듣기만 해도 너무 소름 끼치는 것 같아요. 그 얘기 듣고는 마주치기라도 할까 봐 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더욱 없어졌어요."

"응. 그래. 그래서 밖으로 나오지 않으려고 했구나. 친구 얘기처럼 대부분 사람은 그렇지 않아. 하지만, 몇몇 위험한 사람들이 있다는 건 맞아."

"마.. 맞죠? 그런 거죠? 그래서 저는 밖으로 나간 친구들이 괜찮은지 걱정도 되고. 아무튼 밖은 너무 위험한 것 같아요."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는 얘기보다 조금이라도 바깥이 매우 위험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순간, 몸이 더 서늘해지는 것 같아 다리가 저절로 조금 더 움츠러들었다.

"그렇게나 위험한 것들이 있는데, 왜 다들 밖으로 나갈까요? 나처럼 그런 위험이 있다는 얘기를 제대로 듣지 못해서일까요? 그런 일쯤은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아님, 자신들에게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믿음 때문에? 저는 도무지 이해가 안 돼요."

내가 이렇게 빨리 말할 수 있었나?

"그런데, 그 보다 더.. 더.. 나가기가 두려운 것은.."

더 깊은 속마음도 덩달아 뱉어버렸다.

"두려운 것은?"

"아, 아니에요."

"뭔가 두렵게 느껴지는 게 있니?"

"아니오. 아니.. 잘 모르겠어요."

"그래? 그럼 천천히 생각해 보렴. 난 잠깐 정원에 다녀와야 하니까 조금 있다가 다시 얘기 나눠보자."

멀어지는 발걸음 소리를 들으며 내가 '두려움'이란 걸 느꼈던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까지 깊이 생각해 보진 않았는데.. 하긴, 다른 친구들도 그때 분명 나와 같이 이런 얘기들을 들었는데도 용감하게들 나갔어. 내가 그 친구들과 다른 건.. 내가 몰랐던 그 두려움이란 것 때문인 건가?

이런 생각들을 하는 사이 눈꺼풀이 무거워져 나도 모르게 잠깐 잠이 들었다.




"톡"

"네, 깨어 있어요."

"응, 잘 잤니? 조금 전에 네 벽 쪽에서 소리가 안 나갈래? 나도 잠시 쉬고 있었단다."

"아. 제가 생각보다 오래 잤나 보네요. 한결 몸이 따뜻해진 것 같아요. 그리고 좀 전에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제가 '두려워'한 게 맞는 거 같아요."

"응. 아까 나눴던 이야기구나.. 그래, 어떤 게 두려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니?"

스스로 생각이 정리될 때와 달리 막상 얘기하려니, 살짝 부끄러움이 밀려온다.

"일단... 일단은, 저는 다른 친구들보다 많이 약한 것 같아요. 직접 볼 순 없었지만, 친구들이 얘기하는 걸 들어보면 제가 상대적으로 왜소하고 힘이 별로 없다는 걸 알았어요. 그래서, 밖으로 나갔을 때 위험이 닥쳐오면 어차피 제일 약한 내가 제일 먼저 사라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어요. 그러니까 '스스로 지킬 수도 없는데, 밖으로 나가면 뭐 해'하는 마음도 같이 생기고."

"흐음. 그렇구나, 그래…. 그래. 맞아. 너처럼 얘기하는 친구들을 만난 적이 있단다. 그런데 재밌는 건 뭔지 아니?"

"아니오. 모르겠어요. 별로 재밌진 않을 것 같은데요."

"하하하, 그래.. 그런데 막상 밖에 나와 보면 다른 친구들과 별로 차이가 나진 않다는 것을 바로 알게 될걸. 내가 가장 많이 들은 이야기가 괜한 걱정을 했다는 거야. 아무래도, 벽 속에 갇혀 볼 수 없으니까 스스로 그렇게 상상하는 친구들이 많거든."


부드러운 음성이 계속 이어졌다.

"그리고 아무리 힘이 세더라도 그런 위험을 스스로 피할 수 있는 경우는 거의 없어. 그래서 우리는 '교육'을 통해, 무서운 동물들이 나타나는 위험 한 곳을 미리 기억하게 한다든지, 실제로 마주쳤을 때 주위에 도움을 요청하는 방법 등등을 배워서 위험을 대비한단다."

"그럼, 위험을 피할 수 있나요?"

"안타깝게도, 완벽하게 피할 순 없어, 세상에는 여러 가지 예상하지 못한 일들이 엄청 많거든. 사람들의 행동도 마찬가지이고. 그렇지만, '나'보다 '우리'일 때 더 쉽게 피할 방법이 많다는 것은 분명했으니까, 옛날부터 계속 그 위험들을 피하는 방법들이 계속 전해져 왔어. 그리고, 정말 몸이 불편하게 태어나는 친구들도 간혹 있는데, 일단 용기 내 밖에 나오기만 하면 우리가 힘을 모아 그 불편한 것을 채워주는 일들을 자연스럽게 해. 그러니까, 육체적으로 약하거나 왜소하다거나 불편해서 오는 어쩔 수 없는 불리한 조건이 바로 '위험'을 뜻하는 건 아니란다."




이야기들 듣다 보니, 차마 친구들에게도 묻지 못했던 궁금한 질문이 문득 떠올랐다.

"네.. 혹시…. 결국 밖에 나가지 않는 친구들도 있나요. 저처럼?"

"응, 있단다. 가끔."

의외의 담담한 대답에, 오히려 좀 더 일찍 물어볼걸 그랬나 싶은 마음마저 들었다.

"그럼, 그럴 땐 어떻게 하나요? 밖으로 나갈 때까지 설득을 하나요? 아님, 벽을 일부러 깨뜨리고 꺼내주거나…. 그것도 아니면 그대로 두나요?"

"모든 상황이 그때마다 달라서, 똑같이 하진 않아. 그런 상황을 만나면 기본적으로는 지금의 우리들처럼 대화를 나눠보지만, 그것마저 어려우면 그저 벽 속의 행동을 잘 관찰해서 그가 그런 결정을 하기까지 어떤 마음이었는지 이해해 보려고 하지.. 물론 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서로 비슷하다고 해서 같은 것은 아니니까."

"그렇게 하더라도, 결국 나가지 않았던 친구들이…. 있는 거죠?"

"물론 있지. 드물긴 하지만."

"그때는 어떻게 하나요?"

"완전히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라고 판단되면, 기본적으로는 존중해 줘. 그건 옳고 그름 이전의 문제이니까. 밖에 나와서도 살아가며 수많은 선택을 하게 되는데, 일정한 '교육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게 자신의 결정으로 이루어져. 하지만, 벽을 깨고 나오고 싶은 마음이 분명 저 깊숙한 곳에 흐르고 있는데 스스로 알아차리지 못하거나, 그저 육체적인 한계 때문에 포기하는 경우라는 게 확실하다면 어떻게든 나올 수 있도록 도와준단다."


"저는 어떤 것 같아요?"

고개를 살짝 들며 무심한 척 빠르게 던져본 질문이지만, 귀가 벽에 닿을 듯 커졌다..

"너는 어떤 마음인 것 같니?"

이런.

되려 질문을 받다니.

사실 나가고 싶은 마음이 살짝 들었지만, 차마 부끄러워 그 얘기를 할 수가 없다.

"글쎄요.."

그래서, 도저히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없을 것 같아 미뤄 뒀던 얘기를 꺼냈다.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해주셔서 이제 궁금한 것들이 많이 풀렸지만, 한 가지 더 깊은 고민이 있어요.."

"응, 넌 생각이 깊은 아이구나. 내가 해결해 줄 수 있는 건지 모르겠지만 어떤 고민인지 궁금하네."

"엉뚱할 수도 있는데.. 사실, 그동안 해주신 얘기들을 들으면서, 밖으로 나가더라도 내가 행복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어요. 왜냐하면, 결국에 시간이 흐르면 모든 것들과 헤어져야 하잖아요. 선생님이든 친구든.. 그리고 그런 일이 아직 준비되지 않은 시간에 갑작스럽게 일어날 수도 있고.. 그리고.."

"그리고?"

"좀 전에 친구들과 별 차이가 없을 거라고 위로해 주셨지만, 저는 실제로 몸도 허약해서 몹시 아플 것 같아요. 그래서, 밖으로 나가서 많은 이들과 만나더라도 슬픈 일이 많을 것 같고 또 오히려 내가 남들에게 헤어짐의 아픔을 줄 수도 있을 것도 같아서..

사실은, 이게 제일 두려운 것 같아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래. 그랬었구나. 밖으로 나오지 않은 진짜 이유가…. 꺼내기 힘든 얘기 들려줘서 고마워."

이어진 짧은 침묵의 시간, 살짝 긴장감이 든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네가 들려준 두려움은 밖에 살고 있는 우리들도 늘 품고 있는 거 같아. 난 항상 건강할까? 가족들은, 친구들은 잘 지낼까? 그리고, 내게 소중한 모든 것들과 언젠가는 이별하는 거 아니야? 애써 슬픔을 생각하지 않으려 하지만, 모든 것들이 늘 그 자리에 있지 않다는 걸 알기 때문에 언제나 마음 깊은 곳에는 두려운 생각이 잠들어 있어."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그럼, 이 두려움은 벗어날 수 없는 건가요? 저는.. 이대로 두려움을 안고 밖으로 나갈 수는 없을 것 같아요."

"미안하지만, 벽 안에 있든 밖에서 살든 그 누구라도 소중한 것들이 항상 머물러 있기를 바라는 한 그 두려움은 함께 할 수밖에 없단다."

"그러면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마음을 없애야 하나요? 대화를 나눴던 친구들도 지금 고민을 들어주는 선생님도 이미 제게는 소중한데.."

"하하하, 그런 뜻이 아니란다."

그때 살짝 어두워지며 벽이 다시 따뜻해졌다.


이어 들리는 부드러운 음성,

"네가 만약 밖으로 나온다면 정원에 핀 예쁜 '꽃'이란 걸 볼 수 있어, 모양도 색깔도 다양하고. 아마, 너는 예쁘다는 게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을 거야. 어제 밖으로 나간 네 친구는 지금 그 꽃들을 보며 즐겁게 놀고 있거든. 그런데 그 '꽃'들은 안타깝게도 그렇게 오래 머무르지 못한단다. 시간이 지나면 시들해지고 이내 사라져 버려. 그 예쁜 꽃들을 볼 수 있도록 도와준 빛나는 '태양'이라는 것도 밤이 되면 사라지고, 그들이 예쁘게 흔들리도록 도와주는 살랑거리는 '바람'이라는 것도 한번 스치고 지나가면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는단다."

"그러니까 슬픈 일이 맞네요. 그럼, 지금 정원에 놀고 있는 친구들은 그것도 모르고 즐겁게 놀고 있다는 거잖아요."

"응. 맞아. 그런데 잘 들어보렴. 꽃을 스치고 지나간 바람 뒤에는 늘 '새로운 바람'이 분단다. 또 태양이 지면, 밤에 달과 별이 뜨고 다시 다음날 '새로운 태양'이 떠올라 꽃을 계속 비춰주고.. 그리고, 예쁜 꽃들은 모두 각자의 꽃씨를 날려서 그다음 해에 다시 다른 곳에서 '새로운 꽃'으로 예쁘게 피어나."

"그러니까, 그 모든 것들은 사라져서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다시 다른 모습으로 새롭게 나타난다는 거죠?"

"그렇지! 아주 영리하구나. 세상에 잠깐 머물다 가는 '하루살이'라는 친구도 온종일 서 있는 '히말라야'라는 큰 산도 똑같이  겪는 '자연(自然)' 같은 일이란다. 그러니까, 헤어지거나 사라지는 것을 경험할 때 드는 아픈 감정들도 충분히 느끼고서는 더 이상 머무르지 않게 그대로 잘 흘러가도록 두면 시간이 지나 다른 새로운 마음으로 바뀌어서 나타난단다. "

 "그럼, 저나 친구들도 사라지면 다시 다른 모습이 되는 건가요?"

 "하하. 흠. 글쎄.. 너와 친구들이 미래에 어떤 모습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의 나에게는 너희들이 새로운 모습으로 나타난 소중한 존재들인 것은 분명해."

갑자기 태양과 바람과 별과 달 그리고 꽃이라는 걸 너무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밖으로 나가볼까?




그때,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그런데 오랫동안 궁금한 게 있었어요.  내가 기억하는 첫날엔 '톡' 하는 소리만 들리고는 한참 동안 아무 소리가 안 나서 아무도 없나 했는데, 조금 있다가 점점 멀어지는 소리가 들렸었어요. 그때 옆에 있었던 것 맞나요?"

"응. 맞아."

" 그다음에 올 때부턴 '톡'하고 난 뒤에 늘 내게 말을 걸어 주고 했잖아요."

"그랬지."

"그러면, 그날에 '톡'한 뒤에 한참 동안 말없이 있다가 그냥 간 이유가 뭐예요? 전 그게 한동안 너무 궁금했었거든요."

그때, 벽의 양쪽이 모두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

"그래.. 오늘 오전에 네가 너무 두려워서 말을 할 수가 없었다고 했지?"

"네"

"내가 처음 벽을 '톡'하고 건드렸을 때 네가 움직이는 것을 느낄 수 있어 너무 행복해서 한동안 말을 잃고 있었던 거야. 너무 아프면 말할 수 없듯이, 말할 수 없는 기쁨의 시간을 가진 거란다."

아..

"그렇구나!"

뭔가.. 큰 용기가 생기는 느낌..

무엇보다 이 따뜻한 음성의 주인공을 얼른 보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들었다.


"이제 어떻게 하면 되죠? 저도 밖으로 나가고 싶어졌어요."

"오! 그래 밖으로 나온다니 기쁘구나."

"네, 얼른 밖에 나가서 친구들도 꽃들도 보고 싶어요."

그런데, 뜻밖에도 예상외의 답변이 돌아왔다.

"하지만, 나오는 방법을 알려줄 수가 없어"

"왜요?"

"우리 누구나 스스로 자기의 의지로 미래를 결정해. 그곳에 머물던 밖으로 나오든 그건 너의 선택이고 존중받아야 하는 부분이란다. 정말 나오겠다고 마음먹고 움직이면 무슨 뜻인지 저절로 알게 될 거야."




그래 나갈 거야!

"알겠어요. 그런데 어느 방향이 하늘인지 모르겠어요. 그것만 알려주세요."

"어디에 어떤 위치에 있건, 진심이라면 고개를 들어 위를 보면 그곳이 하늘이야."

치.. 그냥.. 알려줄 수 없다고 하지..

아무튼, 마침내 고개를 들고 벽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리곤, 벽을 힘껏 쳤다.

"톡 "

생각보다 소리가 너무 작았다.

여러 번 더 시도했지만, 여전히 힘이 안 닿는 가보다.

"용기 내서 잘했어.. 조금 더 쉬었다 해봐. 아직은 네 몸 사용법을 잘 모르는 것 같아."

"헉.. 헉, 힘든데 대신 뚫어 주면 안 돼요?"

"안된단다. 그걸 스스로 해결하는 것이 밖에서 살아가기 위한 첫 번째이자 마지막 관문이거든. 잘 고민해 보렴"


한참을 끙끙 고민하다가 순간,

친구가 벽에 대고 외쳤던 그 말이 문득 생각났다.

"셋째 발가락!!"

그의 말대로 셋째 발가락에 힘을 주고 양쪽 어깨를 벽에 한껏 밀착시키면서, 온 힘을 다해 벽을 쳤다.

"툭!!" 드디어, 벽에 금이 갔다.

바깥에서 들리는 큰 기쁨의 외침.

"잘했어! 해냈구나. 잠깐만 눈 감고 기다리렴."

톡톡.. 톡.. 툭!!


 사이로,

빛이 쏟아져 들어온다.

'눈부셔..'

잠시 목이 움츠러들었지만,

이내 다리에 힘을 주고,

고개를 들어 빛나는 곳으로 다시 올려다보았다.

"자. 이제 천천히 눈을 뜨렴"

깊은 바다 같은 눈동자를 마주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저절로 불렀다.

"엄마"






끝.


[부족한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링하리' 북에 포함시킨 것을 수정해서 다시 그려봤습니다.

이 세상 모든 병아리에게 빛나는 미래를 상상하고 기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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