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인연,
똘랑이를 묻어 준 아내의 마음을 짐작하기 힘들다. 자기도 이석증으로 며칠 전에 그렇게 힘들어했는데도 그제 하루 종일 눈물이 났다고 했다.
나비의 생이 그리고 그의 생이 이렇게 짧은 줄 몰랐다.
4주.
인생으로 치면 기나긴 애벌레와 번데기 시절을 지나 겨우 며칠간을 자유롭게 비행하는 황혼기를 맞는 것이다.
아니면, 무지개다리를 건너는 입구를 찾기 위해 잠시 천사에게 날개를 빌린 것일까?
크리스마스를 앞둔 일주일 사이 지인 두 분의 소중한 가족이 가각 소천하셨다는 소식에 금강경 소책자 품에 안고 장례식장에 찾았다. 물론, 누구도 모르게.
당시 함께 방문한 한 교수님 말씀.
"원래 바로 실감이 안 납니다.
한 육 개월 지나면 그때부터 진짜 슬프지요."
그때, 아내도 어느 날 이래저래 날개며 다리며 많이 망가졌던 똘랑이 생각에 어느 날 다시 우울해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럼 그동안 잠시 다른 생각들로 채울 수 있도록 해 드려야겠다는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다음 주면 무릎 수술받으신 아버지 퇴원시켜드려야 한다. 이제 금이 간 곳도 잘 아물지 않으신다. 그간 받은 수차례의 수술 봉합자국들로 채워진 유난히 가늘어진 아버지의 다리 위로 절뚝거리던 똘랑이가 겹쳐졌다. 이 생에 받는 마지막 고통이시길 빌어보지만 대상포진과 신경통도 함께 퇴원하기에 그저 기도 말고 할 수 있는 게 없다. 입원 당일 어지럼증과 설사병으로 병원조차 올 수 없는 어머니의 아버지에 대한 측은지심과 애증을 끓여 넣은 전복죽을 담은 보온병을 두고 나올 때엔 홍시라도 실컷 먹으라고 물티슈에 둔 똘낭이의 모습과 아내의 눈물이 겹치 듯 어른거렸다.
잊고 있었나 보다.
누구든,
태어나면 반드시 늙고 병들고 마지막엔 육신을 벗는다.
불과 며칠 사이 정면으로 마주해 버린 현실들.
사실, 세밀하게 들여다보면 우리는 이미 한 호흡지간에 들숨과 날숨 속에서 생과 사를 부단히도 드나들고 있다. 양자역학처럼 생사 얽힘과 생사 중첩이 일어나는 가운데 대부분은 삶의 비밀을 그리고 신의 뜻을 풀지도 알지도 못한 채 어김없이 소멸의 단계로 넘어간다.
신들의 눈엔,
하염없이 가냘프고 상처가 가득한 날개가 다치고 절뚝거리는 다리를 이끌면서도
한입 홍시를 머금은 채
뒤 엉킨 날개를 떨치며
날아오르려고 애쓰는
저 똘낭이와 다를 게 없을 것이다.
백 년도 못 사는 인간의 삶이라는 게.
땅에 묻기 전날
똘랑이의 마지막 생을 직감한 아내는,
그를 위해 종이를 정성스레 접어 관을 만들어 안에 잘 넣어 주었다.
그리고 평소에 늘 잘 있던 자리에 두고,
작은 조명등을 켜 두고 나섰다.
난,
지혜의 빛으로 가득한 그래서 따뜻하고 외롭지 않은 여행길이 되길 기도하면서 그의 곁에
금강경 소책자를 두었다.
너의 힘찬 날갯짓을 기억할게.
또 보자.
지금은,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