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둘러 싸는 세상이 바뀐 다는 것은
부서 이동을 한 지 대략 두 달이 되어 간다.
3년 간 몸 담아, 모든 것을 쏟아부어 일에만 몰두했던 팀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일개 팀원인 나는 이동 일주일 전 이동 예정임을 통보받았으며
이동 하루 전에야 이동할 팀이 어느 곳인지를 들을 수 있었다.
이 조용하고 대대적인 조직개편은 회사 구성원 전체를 불안의 소용돌이 속에 떨게 했다.
누군가는 사라지고, 누군가는 자리를 보전했으며 누군가는 자발적으로 떠났다.
남은 사람들은 자신의 처우가 어떻게 이어질지 모르는 상태로 일상을 지속해야 했고
떠날 사람들은 각자 남은 시간을 보내며 조용히 사라졌다.
모두 살 부비며 고된 일을 헤쳐 나가던, 가족보다 더 자주 보던 동료였다.
너는 왜 그렇게까지 열심히 해?
고등학교 시절 연극부 부장을 맡았을 때도, 자진해서 과 대표를 맡았을 때도, 무언가를 바꿔보겠다고 아등바등했던 학생회장 시절에도 항상 듣던 소리였다. 별 이유는 없었다. 무언가를 맡았을 때 하나하나 이뤄가는 것이 재밌었고, 결과가 만들어졌을 때의 성취감이 좋았다. 고생했다, 대단하다며 격려해주는 주변인의 한 마디에 괜히 기뻤다. 그 뿐이다.
코로나로 어영부영 첫 직장을 가지고 나선 이런 성격이 장점이 되었다. 대학 시절까지만 해도 과하게 열심히 해서 주변을 피곤하게 한다는 평을 종종 들었지만, 직장생활에서 열심히 한다는 것이 마이너스가 되기는 어려웠다.
시키지 않아도 하고 열심히 하고자 하는 신입을 나쁘게 보는 사람은 없었다.
몸 담고 있는 업계가 '업에 대한 열정'을 높게 사는 분야였기에 더더욱 그랬다.
처음부터 하고 싶은 일이 아니었지만, 잘 할 수 있는 일이었기에 재미를 붙였다.
그렇게 만으로 3년을 개처럼 일했다. 친구도, 가족도, 애인도 늘 일보다 뒷전이었다.
열심히 하니 잘 풀렸다. 정직원 전환 3개월만에 준메이저 급의 회사로 이직할 수 있었고
함께 일하던 사람들과 그대로 옮겨와 적응하는 데도 어려움이 없었다.
불만도 많았고 우여곡절도 있었지만 나름대로 팀에 애정을 가지고 업무에 임했다.
그래서 그럴까, 예고 없이 망망대해에 떨어진 기분이 들었던 것이.
거센 폭풍이 있었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워크샵에서 담소를 나누며 언젠가 한 잔 하자 인사를 나누던 동료들의 희비가 갈렸다. 남게 된 자들도 좋아하지 못했고, 나가는 자들도 슬퍼하지 못했다. 다 같은 처지에 잔류의 여부는 중요하지 않았기에.
나는 새로운 팀으로의 이동을 권유받았다. 요즘 화두가 되는 신분야의 단기 TF팀이었다.
결론적으로 나는 다른 팀으로 가는 것을 선택했다. 애정을 담아 한 팀에 3년 간 있었지만, 모종의 징크스가 있었는지 개인의 성과적으로는 일이 잘 풀리지 못했다.
매 달 들어가던 경쟁 업무에선 번번히 탈락했고, 진행되던 업무는 계속 중단되거나 취소되어 3년 간 쌓은 포트폴리오가 전무하다시피 했다. 나보다 더 늦게 직장생활을 시작한 동기, 후배들의 포트폴리오가 더 탄탄할 지경이었다.
솔직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열심히만 하면 '좋은' 성과는 아니더라도 결과물은 있어야 했다. 헌데 이 업계는 잘못 풀리면 일은 일대로 하는데 결과물이 없었다. 남들에게 '나, 이만큼 일을 했습니다. 이런 일을 했습니다.' 하고 보여줄 결과물 자체가 없으니 3년 간의 직장 생활에 회의감이 느껴졌다. 아니, 정확히는 '노력'에 대한 회의감이 느껴졌다.
그래서 나를 둘러싼 환경을 바꿨다. 모르는 사람, 모르는 분위기에 적응해야 했다. 무인도에 떨어진 조난자가 따로 없었다. 처음부터 다시 배우고 노력하는데, 문득 내가 왜 노력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들었다.
사서 고생을 하던 내가, 더 이상 노력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노력에 대한 보상이 주어진다는 것은, 굉장히 언밸런스한 것일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1의 노력을 해도 10의 보상을 받지만, 다른 누군가는 10의 노력을 해도 1의 보상을 받는 경우가 많다.
모두의 시작점이 다른 사회에서 이런 현실은 잔인하게 느껴지기도 하다. 아무리 노력해도 다른 사람들이 저 멀리 고점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것을 보는 순간, 지독한 허무가 찾아온다. 들인 노력이 클수록 허무는 제곱이 된다. 결승선만을 보고 달린 사람의 시야에 보여지는 것이, 결승선 코 앞에서 시작한 자들의 손에 들린 트로피라면 이런 기분일까.
가진 것이 없기에 노력했다. 아니, 노력 할 수 밖에 없었다. 남들보다 배는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실행했다. 회사를 떠난 동료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각자 부족하다고 느끼는 만큼 최선을 다해 노력했을 것이다. 그들이 느꼈을 허무는 얼마나 깊었을지, 나로써는 감히 가늠할 수 없다.
그럼에도 동질감을 느낀다. 수 많은 노력을 기울였을 그들에게. 지금도 고군분투 하며 올라가고자 하는 이 세상 누군가에게. 나도 그들과 하등 다를 바가 없기에.
노력의 과정 중에는 반드시 허무를 느끼게 된다. 내가 들인 노력이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적절한 성과를 낼 수 있는지에 대한 불신을 가지게 되는 순간이 반드시 찾아온다. 우리는 불완전한 존재이기에 끊임없이 노력을 의심하는 것이다. 노력해봤자, 결국 허무해지지 않겠어?
하지만 우리는 앞으로 살면서 얼마나 더 많은 허무를 마주쳐야 하는가? 노력은 일에만 들이는 것이 아니다.
행복한 삶을 위해, 주변 사람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내가 사는 사회가 더 나은 사회가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당장 죽을 것이 아니라면, 살아가면서 노력을 들여야 하는 순간은 늘 찾아오고, 노력을 해야만 하는 상황은 늘 존재한다.
우리가 한 가지 명심해야 할 것은, 허무라는 감정은 노력과 결과 사이에 있는 작은 돌부리 같은 것이라는 점이다. 노력의 과정에 허무가 있을지라도 결과가 허무가 될 수는 없다. 노력을 들이며 느낀 수 많은 허무가 있다고 해서 노력의 결말이 반드시 허무로 종결되지는 않는다는 소리다. 노력과 허무는 상관관계가 있을지언정, 그것이 인과관계가 될 수는 없다.
이번 일로 내가 허무를 느꼈더라도, 나는 앞으로도 노력을 계속 해야 할 것이다. 안온한 삶을 살기 위해 스스로를 컨트롤하고 마음가짐을 바로 하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고, 먹고 살 수 있을 정도의 자산을 생성하기 위해 부던히 일할 것이고, 최대한 건강에 유의하며 관리에 유념해야 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계속 부딫힐 수 밖에 없다.
허무를 딛고 계속 노력한다면, 언젠가는 노력의 과정에서 만나는 것이 허무가 아닌 다른 감정일 가능성이 우리에겐 존재한다. 우리의 삶은 기니까, 되돌아보면 지금의 허무도 별 일 아닐테니까. 그렇게 믿고 나는 오늘도 노력한다. 허무를 직면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