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과 만남, 그리고 재회의 우로보로스

돌고 도는 인간관계에 대한 고찰

by 서니

거대한 우주에서 인간은 티끌만한 존재다. 무수히 많은 티끌 사이에서 '나'를 만들어간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나의 경우는 사람이었다. 대화를 하며 감정을 나누고, 의견을 나누다 대립하기도 하며 나의 가치관과 성격이 만들어졌다. 애정을 나누고 미움을 사기도 하면서 사회를 배웠다. 양보하고 도우며 인간성을 알게 되고, 서로를 해하는 사람들을 보며 나를 지키는 방법을 터득했다. 가족, 친구, 연인, 동료, 그 외 스쳐지나가던 모든 인연들. 그 사이에서 빚어지는 '나'의 무수한 요소들은 앞으로를 살아가는 나를 만들었다.




인간이 경험하는 여러 상황 중에서도 이별은 특히 어렵다. 사춘기 예민한 감성에 멀어진 친구들, 대학에 입학해 자취를 시작하며 떨어진 가족, 각자의 사정으로 퇴사를 하는 동료, 마지막으로 없는 것을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사람과의 정리까지. 상대방과 쌓아왔던 시간과 추억이 뒤섞여 후회와 미련을 남기고, 더 나아가서는 오랜 상처를 남기기도 하는게 이별이다. 그렇기에 이별로 인해 느끼는 슬픔과 회한은 여러 번 겪어도 익숙해지지 않는 난제에 가깝다...고 생각했었다.




약 3년 반의 연애를 끝냈다. 쌓였던 감정과 무뎌짐이 일련의 사건으로 종지부를 찍게 하였고, 생각보다 나는 멀쩡했다. 그 동안 여러 종류의 이별을 해왔을 때마다 고통을 느껴왔기에 제법 놀라기도 했다. 나 왜 멀쩡하지? 슬픔과 후회보다는 후련함에 가까웠다. 이별을 하고 한 달 동안 어느 순간 변해버린 나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고 나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며 하나씩 문제를 풀어갔다.


이전의 이별과 다른 점이 무엇인가? 처음으로 긴 시간 만나온 사람이었다.

사랑하지 않았는가? 살면서 가장 사랑한 사람이었다.

미래를 꿈 꾼 적이 없는가? 아니, 오히려 너무 꿈 꿔왔기에 여러 준비를 했었다.

상처를 받았는가? 모든 인간관계에는 상처 받는 순간이 존재한다.

이미 정리를 하고 있었는가? 나 조차도 예상하지 못한 갑작스러운 결정이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의 끝에 마지막 질문이 나왔다.


어째서 無의 상태가 되었는가?

후회 없이 모든 것을 쏟아부었기에 슬픔도 미련도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모든 인간관계가 동일하겠지만, 서로가 가진 감정의 크기는 다르다. A의 마음이 80이라면, B의 마음은 20일 수 있다. 각자의 질량이 다르기에 우리는 수 없이 많은 저울질을 해가며 맞춰나간다. 무수한 시도 끝에 수평이 되면 관계가 이어지고, 어느 한 쪽이 기울어 땅에 닿는 순간 그 관계는 끝이 난다.


누군가는 이 과정이 덧없다 말할지 모르나 최선을 다한 사람에게는 그마저도 경험이자 성장이다. 이별로 마무리되었지만 누군가를 조건 없이 사랑하고 응원하는 경험은 그 무엇보다 값진 것이었고,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드는 과정이었다. '나'를 구성하던 것 중 비어있던 [최선을 다하는 마음가짐]을 채운 것이다.




이별이 있으면 만남과 재회도 있다. 헤어진 후 사람을 만났다.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본 지 오래 된 동기들과 술자리를 했다. 친구와는 오랜만에 진솔한 대화를 나눴다. 이직으로 떠났던 사수와 재회해 그간 못 나눴던 회포를 풀었다. 비 온 뒤에 땅이 굳어진다 했던가, 허전한 마음은 금새 다른 것으로 채울 수 있었다.


물론 살아가다보면 이 모든 인연들도 만남과 이별, 그리고 재회를 반복할 것이다. 천체가 계속해서 공전하는 것 처럼 이 모든 과정을 되풀이하고, 부모에서 자녀로 이어지는 인간의 삶과 역사처럼 나에게서 타인에게로, 타인에게서 내게로 이어지겠지. 그렇지만 이번 일을 계기로 이 모든 과정에 가치가 있음을 깨달았기에 이별이 두럽지 않고, 만남에 설레고, 재회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 이전처럼 슬픔에 잠겨 헤어나오지 못하는 '나'는 없을 것이다.


그러니까 그 사실을 잊지 말고 최선을 다해서 두려움 없이 사랑하자. 사랑은 모든 관계에서 얻을 수 있고, 여러가지 형태로 존재하며 다양한 결말이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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