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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철수 Jan 05. 2024

변명

영화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를 보고

오랜만에 좋아하는 감독의 영화가 개봉했다. 은퇴를 선언했던 늙은 감독이 대체 무엇을 말하고 싶어서였을까. 호불호가 갈린다는 평이 많았지만 불호라도 궁금해서 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전 작품과는 사뭇 다른 느낌의 제목,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이걸 보면 내가 어떻게 살아가야할지 가닥이 잡힐까. 오랜만에 극장 가는 길이 설레었다.


화려한 판타지 속으로 빨려 들어가서 지루함 없이 꽤 긴 시간을 보았지만 기대와는 다르게 도통 무슨 내용인지 알기가 어려웠다. 다양한 조류들, 특히 징그러운 왜가리만 뇌리에 박혔다. 해석을 찾아보니 감독의 자전적인 내용이란다. 나는 이렇게 살았는데 자네는 어떻게 살겠는가, 하는 투의 제목이었나 보다.     


영화 초반부에 마히토는 화재 속에서 엄마를 구하지 못하고 아버지, 새엄마와 원하지 않는 생활을 하게 된다. 원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능동적으로 환경을 바꾸려하지도 않는다. 그 괴리 때문에 마히토는 스스로 머리에 상처를 내기도 한다. 하지만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마히토는 자신의 정의를 위해 용감히 불길 속으로 뛰어 들었다. 홍시 맛이 나는 것은 홍시라고 명확하게 말해야 직성이 풀리는 캐릭터로 스스로를 변화시켰다. 그 똑부러지는 눈매가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소피, <원령공주>의 도깨비 공주를 떠오르게 했다.


마히토가 그렇게 변할 수 있었던 근본은 무엇일까.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일까. 사명감일까. 혹시 가난이라고는 모르고 자라온 덕은 아닐까. 그 멋진 꼬마 녀석이 나에게 물었다.     


너는 어떻게 살 것인가.     


또 결국 이렇게 돈 이야기를 꺼낸다. 하지만 나에게 어떻게 살 것이냐고 질문했으니 돈 이야기를 빼 먹을 수는 없지 않는가. 한때 나도 삶이라는 것에 대해 깊이 고민했던 적이 있었다. 돌이켜보면 술이나 퍼 마시던 한량 시절이었다. 그때 나는 책과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삶에 대한 수많은 명언들을 마음속에 수집하며 내 인생의 레이아웃을 그리고 있었다. 밤이면 친구라는 사람들과 삶이라는 주제로 오랜 시간 이야기했다. 뜬구름 같은 소리였다. 지금 당장 손에 잡히지 않지만 언젠가는 비가 되어서 내 피부에 와 닿을 것 같았다. 어떤 어른이 되어야할까. 나는 어떤 어른이 되고 싶은가. 어떻게 돈을 벌어야할까. 어떤 직업을 가져야할까. 늦은 밤 술에 취해도 우리들의 눈빛은 새벽 내내 반짝이던 시간이었다.     


돈은 나를 피폐하게 만든다. 삶 중 대부분의 시간은 돈을 벌어야하는 시간이다. 돈을 벌고 돈을 쓰고 돈을 모으고 돈을 빌리고 돈을 갚고 그러다 노인이 된다. 어쩌다 내가 그렸던 레이아웃의 뼈대가 돈으로 되었는지 모르겠다. 내가 깨달은 것인지 아니면 내가 만든 것인지. 어쨌든 그 시간동안 나는 온전히 나로 있을 수 없다. 마히토처럼 돌멩이로 머리를 쥐어박을지언정 내 모습을 다 드러내서는 안 된다. 돈을 번다는 것은 뭔가를 하는 시간이기 보다는 참는 시간에 가깝다. 그렇게 참고 참아야 돈이 생긴다. 이렇게 돈만 따라가는 삶이 내가 선택한 삶이다. 뭐 대단한 선택지도 없었지만.


마히토처럼 돈 걱정 없는 삶이었다면 어땠을까. 나 참. 누구보다 멋지게 살 수 있을 텐데. 외제차 끌고 다니면서 명품 옷만 걸치는 멋짐이 아니라 내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을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그런 멋짐 말이다. 어느 부자가 그랬다. 돈이 많아서 좋은 것은 원하지 않는 사람과 함께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라고.     


내가 좋아하는 아이유의 노래 중에 <아이와 나의 바다>라는 가사에는 ‘아이는 그렇게 오랜 시간 겨우 내가 되려고’라는 부분이 있다. 나는 이 부분을 좋아하는데 아주 큰 죄책감이 들기 때문이다. 입이 꾹 다물어지고 걸음이 느려지는 그 느낌은 마치 그 시절의 나를 마주한 것 같이 무겁게 다가온다.


내가 어떻게 살아야할지는 애당초 나에게 답이 있었을 테니 어리석은 기대였다. 그래도 마히토가 던져준 그 질문 덕에 잠시나마 예전의 나를 만나고 올 수 있어 이상하게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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