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학의 가치
2023년 11월의 기록 - 영화 <안 할 이유 없는 임신>을 보고
2023년 11월 17일, 한 기사를 보고 놀라서 눈알이 튀어나올 뻔했다.
“국내 첫 자궁이식 수술 성공...”
놀란 가슴을 부여잡고 침착하게 읽어보니 선천성 질환을 앓던 여성에게 뇌사자의 자궁이식 수술을 진행하여 첫 월경까지 성공했다는 소식이었다. 사실 별별 일이 다 일어나는 요즘 세상에 뭐 그렇게 놀랄 일인가 싶다. 그러나 내가 깜짝 놀란 이유는 너무 대충 읽은 나머지 남성에게 자궁을 이식했다는 줄 알았기 때문이었다. 내 사고가 이렇게 진행된 건 전부 영화 <안 할 이유 없는 임신> 탓이다. 아무래도 그 영화, 나에게 제법 감명 깊었나 보다.
지난달, 친구들과 함께 [제10회 부산여성영화제; 기억과 연결] 단편영화 경쟁작을 보았다. ‘즐겁고 힘겹게, 차곡차곡 쌓아온 지난 역사를 기념하고 싶다’는 영화제의 취지처럼 경쟁작들 모두 뜻깊고 볼 가치가 충분했다. 우리가 감상한 경쟁작은 총 네 편으로, <그리고 집>, <정아의 사생활>, <문 앞에 두고 벨 X> 그리고 <안 할 이유 없는 임신(이하 안임신)>이었다. 네 작품 모두 생각거리가 많고 인상적이었는데, 네 편 중에 유일한 애니메이션이었던 <안임신>이 가장 강렬하게 다가왔다.
<안임신>은 노경무 감독의 30분짜리 단편 애니메이션으로, 알고 보니 웹툰으로 먼저 나온 작품이었다.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이걸 어떻게 대기업 자본 없이 만들었을지 신기할 정도로 퀄리티가 대단하다는 것이었다.(물론, 나는 이 영화를 제작할 때 얼마나 많은 돈이 들었는지 모르지만.) 뭔가 소자본으로 제작하여 허접하지 않을까 했던 내 선입견 탓이다. 알록달록한 색채의 향연이 눈을 사로잡고, 탄탄한 연기를 선보인 성우진이 마음을 이끌고, 음악 감독 장영규가 극적인 음악으로 귀를 압도했다.
그래서 도대체 이 영화의 내용이 뭐냐고? 바로 ‘남성 임신’에 대한 이야기이다. 작품의 배경은 2030년, 출산율이 사상 최저치를 찍은 대한민국이다. 주인공 정환, 유진 부부는 열 번이나 인공수정에 도전했지만 실패했고, 이런 그들 앞에 ‘남성 임신 기술’이 등장한다. 김삼신 박사는 출산율 문제의 해답을 임신이 가능한 인구를 늘리는 것에서 찾았는데, 남성 임신 상용화의 위대한 첫걸음에 정환이 도전하게 된다.
"너무 상심하지 마, 시험관 아기, 스무 번째 성공한 사람도 있대.
우리 쫌만 더 노력해 보자. 응?"
"우리? 우리가 아니라 나겠지, 나."
"아니, 내가 임신 할 수 있으면 벌써 했지~"
"그럼 이제... 네가 하면 되겠네. 임신."
남성 임신의 역사는 그리스 신화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아테나와 디오니소스를 제 몸으로 낳은 제우스가 첫 번째 남성 임신의 대상으로 손꼽힌다. 또한 남성 임신을 소재로 한 영화로 <래빗 테스트>(1978년), <쥬니어>(1994년)가 있다고 한다. 종족 번식은 인류 역사상 단 한 번도 끊기지 않은 일인데, 그 보편성에 비해 생각보다 남성 임신에 대한 논의는 별로 이뤄지지 않은 것 같다. 물론 알려지지 않은 많은 논의가 있었겠지만 말이다.
성별 반전은 자칫하면 비약적이거나 급진적 사회 운동으로 여겨질 수 있는 소재라고 생각한다. 아마도 이 감독 역시 그런 고민을 안고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하지 않았을까. 싸우지 않으면서 온건하게 문제를 풀어나가는 방식으로 <안임신>은 ‘유머’를 선택했다. 감독이 작품 의도를 딱 잘라서 “출산 장려”라고 말한 것만 봐도 각이 나온다. 이 영화는 끝내주는 코미디 영화다.
“최 씨가 최 씨를 낳으면 마, 적통 중에 적통 아이가!”
딱 봐도 가부장적으로 보이는 정환의 할아버지는 아주 뜻밖의 이유로 손자의 남성 임신을 찬성하는데, 그 이유가 아주 웃겼다. 최씨 가문 남자가 최 씨 자식을 낳으면 적통 중에 적통이라는 것이었다. 정말이지 이마를 탁, 치게 만드는 이유였다. 말이 안 되는데 말이 됐다. 임신할 수 있다면 남자든 여자든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이 황당한 논리에 어쩐지 설득당하고만 싶어지는 것이다. 왜냐면, 웃기니까.
생각을 전달하는 방식 중에 가장 세련되고 어려운 게 유머 아닐까? 적어도 내게는 그렇다. 한때는 솔직함이 최우선이라고 생각하였고, 나이가 들수록 진지하고 고상한 방식이 끌린다. 그런데 사실 그런 건 매력이 없다. 알면서도 쉽지 않은 게 은은한 해학을 담는 일이다. 남을 깎아내리지 않으면서 유쾌하게 나의 뜻을 전하는 것, 얼마나 고급 기술인 건지. 진지한 사람은 잘못하면 우스운 사람이 되지만 재밌는 사람은 멋있는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안임신> 속의 메시지도 참 좋았지만, 아무래도 나는 그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에 더 큰 매력을 느낀 것 같다. 좋은 작품을 많이 접하는 게 내게 얼마나 큰 가치를 가지는지 알았다. 좋은 글을 쓰려면 많이 읽는 것이 중요하다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것 같은데, 이제야 그걸 몸소 깨닫고 있다. 이것만으로도 나는 한 단계 성장하지 않았을까. 날 웃게 하고, 또 고민하게 만든 이 영화가 참 오래 마음에 남아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