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의 해방일지
술을 끊었다.
만으로도 3개월이 넘었다. 성인이 된 이후로 이렇게 오랫동안 내 몸에 알코올이 없었던 적은 없었다. 3개월이면 이제 내 몸에 남아 있던 잔여 알코올까지도 모두 사라졌겠지. 술을 끊으니 가슴이 두근거리고 손이 떨리고 우울감이 찾아오고, 물론 그렇진 않다. 다만 내 속에 있던 꽤 넓은 한 자리가 텅 빈 것 같은 불편함이 있을 뿐이다. 술은 그렇게 서서히 내 안에 자리를 잡았나보다.
어릴 땐 술이 정말 싫었다. 술병이 보이면 싱크대에 남은 술을 몰래 버리기도 했다. 술에 관한 좋은 기억이 없었다. 어른들은 취하면 싸우고, 싸우면 상처가 남았다. 엄마는 얼굴이 망가지고, 아빠는 종아리가 찢어지고, 내 인중에는 유리가 박혔다. 함부로 말하지 말라는 신의 뜻이라고 스스로 생각하면서 살아왔지만, 무슨 헛소리. 그냥 내 얼굴에는 만취한 아빠가 발로 찬 유리창이 깨지면서 파편이 박혔을 뿐이다. 그 뿐이다. 그리고 그건 아빠의 잘못이지 술의 잘못이 아니다. 여기까지 생각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대학에 들어가고 술 마실 기회가 잦았다. 술을 마시면 사람들과도 쉽게 친해질 수 있었다. 느슨해진 마음 틈으로 쉽게 들어갈 수 있었고 그렇게 만들어진 뿌연 기억이 서로의 기억이 되면 그것을 추억이라 불렀다. 추억이 켜켜이 쌓이는 만큼 우리의 관계는 깊어졌다. 그건 사람과 소통하는 아주 쉬운 방법이었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렇게 술과도 사람과도 친해졌을 것이다. 그 이후로 친구를 만나든 연애를 하든 사람과 함께하는 자리에는 줄곧 술이 있었다. 어쩌다보니? 술을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살게 되어서 술과는 더욱 각별해졌고 이제는 사람 때문이 아니라 나 때문에 혹은 술 때문에 술을 마신다. 아무리 밥을 먹어도 채워지지 않는 허기는 한 잔 술로 가볍게 채워졌고 이도저도 할 것이 없는 날에는 역시 술이 최고였다.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술을 찾는다고 생각하겠지만 술이 빠져버린 공간을 메울 방도가 없었다. 사실 지금도 그렇다.
평생의 동반자였던 술을 멀리한 것은 건강 때문이었다. 어느 순간 일상생활이 어려울 만큼 피곤해졌고 그래도 큰 문제라고 생각하지 못하고 버텼다. 그러다 열이 떨어지지 않아 찾았던 병원에서 간 문제를 발견하게 되었다. 급히 입원을 하게 되었고 그때부터 금주가 시작되었다. 몸이 회복되어도 당분간은 술을 마시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정말 아팠으니까. 술을 끊고 좋은 점은 별로 없다. 술값 절약, 장 트러블 해소. 간혹 피부가 맑아졌다는 소리를 듣는 정도. 안 좋은 점은 꽤 있다. 술 마시며 친해진 몇 안 되는 사람들과 멀어지는 것, 힘든 하루의 보상이 없어지는 것, 좋아하는 음식을 먹지 못하는 것(양곱창을 술 없이 먹을 수는 없다!), 술자리에서 취한 사람들을 보고 있어야 하는 것, 그러고도 비용을 N분의1하는 것. 사실 사람들 만나는 일은 흔치 않으니 가장 아쉬운 것은 하루의 보상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이 문제가 바로 술의 굴레를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이면서 해방일지에 금주일기가 포함된 이유이기도 하다.
술을 먹지 못하면 그 시간에 무엇을 하나.
술로 채워져 있는 빈 시간을 메우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강제로 술을 빼버렸으니 그 시간은 텅 비어있게 된다. 지금은 무알콜 맥주를 박스로 구입해서 그 빈자리에 부어 놓고 있지만 무알콜 맥주란 마치 충전이 안 되는 보조배터리에 핸드폰을 꽂아둔 것이라고나 할까. 생각해보니 이건 해방이아니라 내가 추방당한 그런 느낌이다.
이것도 잠시겠지. 술의 빈자리를 그리워하는 것도, 다시 알코올이 내 몸으로 들어오는 것도.
술과 영원히 이별할 생각은 없다. 내 오래 꿈은 선선한 날 그늘진 평상에 앉아 대낮부터 막걸리를 마시는 일이니까. 그것도 매일. 그때 내 옆에 강아지도 있어야하고 지금 앞에서 책을 읽고 있는 동거인도 있어야하니 그동안 모두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잠시 술과 멀어지는 것일 뿐이다. 술과 더 오래 함께 하기위해 술과 멀어진다니, 이건 우리 인생과 꼭 닮았다. <6시 내고향> 자막 같은 마무리를 하며 맛있는 무알콜 맥주를 검색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