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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철수 Nov 07. 2024

호구괴담

서른의 해방일지

호구는 어수룩해서 이용하기 딱 좋은 사람을 말한다. 보통 전문 마케팅 용어로 “호구 당했다” 등으로 사용된다. 하지만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제일 먼저 범의 아가리라는 뜻이 나온다. 위태로운 처지나 상황에서 쓰인다고 하는데 뭐, 둘의 뜻이 전혀 무관해 보이지는 않는다.     


내 호구 역사의 출발은 핸드폰이었다.

2000년대 우후죽순으로 핸드폰 매장이 생겨났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매장을 통해 핸드폰을 샀다. 멀끔한 직원이 도로까지 나와서 호객을 했고 마침 폰을 바꿔야 해서 혹은 원하지 않았지만 어쩌다보니 또는 그냥 직원이 마음에 들어서 등 이런 저런 이유로 핸드폰 매장은 붐볐다. 붐비는 사람들 중 하나였던 나는 내심 새로운 폰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품고 유리 테이블에 앉아 설명을 들었다.

먼저 내가 사용하고 있는 폰과 요금제를 말해주면 백이면 백 직원은 한탄하며 말을 시작한다. 왜 그렇게 구입하셨어요? 이제 거기는 가지 마세요. 그 요금이면 이 폰 쓸 수 있어요! 그리고 꺼내지는 진열된 새 폰이 반짝반짝. 그래 갖고 싶다. 저건 64화음이니까. 전면 카메라도 있다고.

직원이 계산기를 두드리며 월 요금을 알려주는 동안 이미 마음은 새 폰에 가 있다. 요금도 지금이랑 별 차이가 나지 않는다. 같은 요금내고 왜 오래된 폰을 써? 그래요. 이걸로 할게요! 그렇게 호구 계약서에 사인을 하고 또 시간이 지나 새로운 매장을 가게 되면, 왜 이렇게 구입하셨어요? 거기는 정말 가지 마세요. 라는 호구 돌림노래가 시작되었다.     


새 폰을 손에 쥐고 호구를 당하지 않았다며 스스로를 속여 왔지만 내 계약 조건을 들은 주변 사람들은 항상 나를 안타까워하며 나에게 다시 한번 호구 낙인을 찍어주었다. 이런 일은 중학생부터 최근까지 거의 2년 마다 반복되었다.

호구 당하지 않기 위해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몇 가지 질문을 준비해서 매장을 찾아보았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그들은 내가 물어보는 질문에 정해진 FAQ 답변을 막힘없이 쏟아냈고 결국을 그들이 만들어 놓은 궤도로 다시 나를 끌어들였다. 나는 그들을 이길 수 없었다. 그들은 제품과 계약부터 심리까지 여러 방면에서 전문가였다. 그들의 말을 듣지 않으면 나는 바보가 되었고 그들의 말을 들으면 호구가 되었다. 어떤 매장에 가면 정말 싸게 폰을 살 수 있다고 하고, 또 누구는 그 매장은 사기꾼들이니 가지 말라고 한다. 어느 순간부터는 내가 호구라는 것을 인정했다. 썩 기분이 좋지는 않았지만. 죽기 전까지 핸드폰을 써야한다면, 나는 죽는 순간까지 호구로 죽게 되는 것인가. 이 반복되는 굴레를 벗어나고 싶었다.

그리고 그 방법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우연히 동거인을 통해 알뜰폰이라는 요금제를 알게 되었다. 통신사 요금제는 기기값을 제외하고도 6만 원 가까이 비용을 내고 있었다. 기기값까지 해서 10만 원 가량의 비용이 나왔고 오랫동안 납부했던 비용이라 큰 비용이라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런데 알뜰폰은 0원이었다. 0원이라니 믿을 수 없지만 진짜다. 물론 기기값 제외. 나는 기기 할부가 끝났기 때문에 청구되는 비용 없이 정말 0원으로 핸드폰을 사용했다.

알뜰폰은 기존 KT, LG, SK 통신망을 사용하는 하위 요금제라 다양한 브랜드의 회사가 있고 또 다양한 요금제가 있다. 알뜰폰허브라는 사이트에서 알뜰폰 요금제 중에 내가 원하는 요금제를 필터링해서 쉽게 볼 수 있다. 지금은 알뜰폰이 성장하고 있는 단계라 프로모션이 많다. 물론 0원도 프로모션 적용된 금액이다. 꼭 프로모션이 아니라도 만 원 이하의 요금제 중에 기존 통신사 6만 원 이상의 데이터나 전화, 문자를 사용할 수 있는 것들이 많다. 프로모션 기간은 보통 3~6개월 정도로 그 기간이 지나면 정상 요금이 청구된다. 때문에 그 기간이 되면 또 프로모션을 하고 있는 다른 알뜰폰 요금제를 찾아 가입한다.

이렇게 메뚜기처럼 이리저리 몇 개월 단위로 옮겨 다니면 내 지갑을 지킬 수 있다. 생각보다 그 몇 개월이라는 시간이 길기 때문에 나는 메뚜기를 자처하고 옮겨 다니고 있다. 옮겨야하는 날짜를 미리 캘린더에 기입해두고, 그때쯤이면 날씨가 많이 선선해졌겠다며 그 날을 기다려보기도 한다. 혹시 때를 놓쳐서 정상 요금이 납부되거나 혹은 매번 옮기는 게 귀찮아서 그냥 사용을 한다 하더라도 기존 통신사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다.

알뜰폰을 쓰려면 통신사를 거치지 않은 자급제 폰이 필요한데 그건 그냥 사면된다. 직원의 말에 휘둘릴 필요도 없고, 요금제니 약정이니 따지지 않고 딱 기기값만 보고 비교하면 되니까 오히려 간단한다. 알뜰폰 가입이 번거롭고 알뜰폰에 대한 신뢰가 없다보니 시작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알뜰폰 가입자가 점차 늘고 있고 예전처럼 핸드폰을 매장에서 구입하는 경우가 많이 줄고 있으니 자급제에 알뜰폰 요금제면, 그래도 호구 당할 일은 없겠다.     


+ 신나게 호구괴담을 쓰면서 사실 이것은 돈과 시간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기값이나 요금제가 걱정인 나는 시간을 내어서 비용을 절약하는 것을 선택했지만 또 누군가는 그 시간이 비용보다 더 가치 있을지도. 평생 내 시간을 팔아서 돈을 벌었는데, 내 시간이 돈보다 가치 있어질 수 있을까. 그때 나는 호구가 아니라 시간과 서비스를 산 사람이 될까. 다음 달이면 또 새로운 알뜰폰을 찾아야한다. 호구 해방을 위해 알뜰폰을 선택했는데, 이제는 알뜰폰 메뚜기가 되었다.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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