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불행을 자기 위안의 소재로 삼지 말 것.
언젠가부터 이를 당연하다고 여기고, 그렇게 살고자 했다. 타인의 불행을 보고 위안을 얻다니 얼마나 한심하기 짝이 없는가. 나 자신의 비교 대상은 오직 나 뿐이길 바라 왔다. 그러면 나는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을 거라고 믿었고, 이런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뛰어나고 인격적으로 성숙한 상태라고 생각했다. 타인과 비교하면 안 된다고 하면서 동시에 그러면 타인보다 나은 사람이 될 거라고 믿다니 전제부터 글러 먹은 생각이었다.
최근에 근무 중 만난 누군가가 나를 모독하고 위협하였는데, 그 일로 나는 제법 충격을 받았다. 그날 이후로 불안감에 쉬이 잠들 수가 없었고, 입맛이 뚝 떨어져 밥을 제대로 먹을 수 없었다. ‘저 사람은 그냥 저런 사람이다. 저 사람 따위에 흔들리면 안 된다.’ 수없이 되뇌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 상황에서 내가 다르게 대응했더라면, 내가 조금 더 단단하고 똑 부러지게 말을 했다면 달라졌을까? 혹은 다음에 그 사람을 만난다면 어떻게 해야 하지?’ 이런 생각들로 머릿속이 너무나 시끄러워 일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뇌는 부정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하더니, 그 말이 사실이었다. 그 일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려고 할수록 ‘그 일’만 떠올랐다. 분노에 잠식되어 내 자아가 비틀려 버린 느낌이었다. 그러다 나는 우연히 다른 사람의 불행을 맞닥뜨리게 됐다. 그 사람은 폭력적이고 종잡을 수 없는 직장 상사의 밑에서 꽤 오랜 시간 버티고 있었다. 나는 나를 위협한 그 사람과 종종 마주치는 환경에 있지만 충분히 피할 수 있었고, 다시는 엮이고 싶지 않다면 어떻게든 도망칠 수 있다. 잠깐의 인격 모독으로도 나는 몇 날 며칠을 괴로워했는데, 그런 불행한 환경에서 벗어날 방법이 막막하고 그 사람이 생계마저 위협한다니 얼마나 끔찍한 일일까.
나는 무심코 ‘나는 그래도 다행이구나, 나보다 힘든 사람도 있구나.’ 안심했다. 그리고 바로 스스로가 끔찍하게 느껴졌다. 아마도 그 사람은 매일 하는 출근길이 지옥으로 가는 것처럼 느껴질 텐데 거기다 대고 안심했으니 인간 말종이 할 생각 아닌가. 머리 위로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수치심이 몰려왔다. 한 사람의 행동으로 인해 내가 이리도 많은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고 있다니 억울하고 서글퍼졌다. 그러나 언제나 인생은 반전의 연속인 법이다.
온갖 감정에 휩쓸려 정신을 다 놓아갈 즈음 그 사람이 나를 찾아와 대뜸 사과를 전해 왔다. 그때는 자기가 심했다며 다른 일로 기분이 나빴는데 애꿎은 내게 함부로 대했다고 한다. 진심으로 미안하다고 울먹이기까지 했다. 내게 언성을 높이고 위협하여 날 자괴감의 끝으로 몰아간 장본인이라고는 볼 수 없게 본인의 잘못을 깔끔하게 인정하는 모습이었다. 순간 그동안 한 마음고생은 뭐였을까 하는 허탈함이 몰려왔다. 동시에 이 사람은 본인의 이런 성격 때문에 얼마나 많은 일들을 망쳐 왔으며 수없는 실수와 실패를 겪어 왔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건 양날의 칼을 쥐고 사람을 찌르는 일과 같다는 말이 떠올랐다. 당장은 손에 쥔 칼로 타인을 찌르고 승리감에 도취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시간이 지나면 스스로 그 칼로 제 배를 갈랐다는 걸 알게 되는 게 양날의 칼이 가진 무서운 점이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하니까 본인의 영혼을 갉아먹고 사는 그가 하찮고 가엾게 느껴졌다. 그리고 내 기분은 아주 상쾌해졌다. 거짓말처럼 말이다.
나와 관련 없는 사람의 불행으로 위로받았을 때는 찜찜하고 불편했지만, 나를 불행하게 한 장본인의 불행을 마주하는 건 그다지 나쁜 일이 아니었다. 그러니 내 생각을 고쳐먹어야겠다. 나는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 아니고 가끔 마음이 불안정한 나약한 사람이다. 이런 내게 너무 냉정하게 굴지 말자. 이 정도는 괜찮겠지.
타인의 불행을 자기 위안의 소재로 삼지 말 것. 그러나 당신을 불행하게 만든 사람의 불행은 자기 위안을 위한 장작으로 활활 태워도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