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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사슴 Nov 20. 2024

고통과 행복의 한끗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이 문장은 옛날 옛적부터 전해 내려오는 격언처럼 우리에게 익숙하다. 주인공이 역경을 헤치고 무사히 모험을 마치면, 행복하게 살았다는 한 문장으로 이야기는 쉽게 마침표를 찍는다. 생사를 넘나들던 모든 고난이 행복 한 줄로 퉁쳐진다.     


누구나 행복을 꿈꾼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사람은 쉽게 불행하다. 출근하는 길에 조그만 접촉 사고라도 나고서야, 아무 일 없이 무사히 회사에 다다르는 일상이 ‘다행’인 것을 그제야 체감한다. 불행은 참 쉽다. 고통은 항상 불시에 온다. 아주 손쉽게. 예견된 고통이라고 해서 아픔이 덜한 것은 아니다. 조그마한 고통의 날은 예리하게 살을 파고든다. 우리는 고통 앞에서 완벽하게 연약하다.      


그에 반해 행복은 어떤가. 행복은 어디선가 피어오르는 김 같다. 눈에 보이지만 만질 수 없고 섣불리 쥐려 하면 흩어지고 만다. 김은 근거가 필요한 기생적 존재다. 아무것도 없는 공중에 수증기만 모락모락 필수는 없다. 증기를 자세히 들여다본다면 작은 물방울이 모여 있을 것이다. 기체이기도 액체이기도 한 상태. 행복은 꽤 어렵고 변덕스럽다.     



새해를 맞이하면서 전세 사기를 당했다. 암이 강아지의 작은 몸 안에서 기세를 마음껏 펼치고 있고, 생전 아프지 않았던 동거인이 난생처음 입원을 했다. 경찰서, 법원, 병원을 오가는 동안 안 좋은 소식이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여기에 내 몸에도 문제가 생겼다. 나이가 들면서 몸이 늙어가는 걸 절실히 느껴왔다. 신체가 한 군데씩 버벅대는 것이다. 그저 의례였던 건강검진에서 점점 주목할만한 검사 결과가 달리기 시작했다.     


한 가지 일도 제대로 수습되지 못한 채, 그 위로 비극이 쌓여 갔다. 시간이 갈수록 고통이 자주 찾아왔다. 고달픈 올해가 끝나긴 할까. 나는 무엇과 싸우고 있나. 무엇을 해야 할까. 스트레스가 만병의 근원이라는데. 전세 사기로 구치소에 갇힌 파산한 집주인과 중개사, 암이 점령 중인 작은 강아지, 나와 함께 늙어가는 동거인. 시간과 세월, 그리고 노화. 내가 해결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건강이라도 챙겨볼 요량으로 술을 줄이기로 했다. 힘든 근무를 마치고 돌아온 저녁이면 월요일부터 술 생각이 절로 났다. 주말에 맑은 해가 쨍쨍 내리비치면 여행을 온 사람처럼 정오부터 술을 마시고 싶었다. 햇빛 한 점 없이 어둑한 하늘에서 비가 추적추적 내리면 막걸리에 노곤하게 젖어 있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상이었다. 1주일에 5일은 너끈하게 취해 살았는데. 맛있는 음식을 먹든, 재밌는 영화를 보든, 고민을 이야기하든 항상 내 곁에는 술로 가득 찬 달큼한 잔이 놓여있었다.      


갑자기 강제한 절주는 생활을 무미건조하게 만들었다. 저녁을 알차게 먹어도 뱃속 어딘가는 채워지지 않은 채 비어있었다. 혈중알코올농도 0%의 하루는 자극과 취기 역시 0%라서 그저 밋밋하고 심심하게 끝났다. 행복이 텅 빈 괄호처럼 자리만 남긴 채 부재했다. 인생이란 행복한 일은 점점 줄어들고 괴로움은 늘어가는 과정인 것 같았다.          



음주를 두 달 정도 잠시 멈췄다.(그리 길진 않지만, 일주일에 절반 이상을 술과 함께 살아온 내겐 큰 의미다) 다시 술 마시기 시작할 날을 정해놓고 몇 주 전부터 기다렸다. 일주일 전, 하루 전, 반나절 전. 술과 재회하는 순간을 기대하는 동안 어느 때보다 설렘을 매시간 또렷하게 느꼈다.      


드디어 첫 잔을 삼켰다. 진정한 친구는 오랜만에 만나도 어색하지 않은 법. 반갑다. 맛있다! 오래간만에 만난 알코올이 두 볼에 낯선 온도로 다가왔다. 은근하면서도 선명하게. 터지는 웃음. 보통 때라면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의 얕은 취기에도 눈뿌리가 얼큰해졌다. 생경한 온기. 차가운 술의 뜨거운 기운을 한 모금씩 깊게 맛봤다. 술잔을 세어 가며 아껴 마셨건만, 취기는 오히려 술을 들이켰던 이전보다 오감을 낱낱이 자극했다.  


    

매일 겪는 일상에 설레는 사람이 있을까. 매일 맛보지 않았기 때문에, 가끔씩 다가온 순간이 정확한 감흥을 던진다. 결핍으로 완성되는 특별한 순간들. 음주가 생활이 된 이제껏, 나는 술이 지닌 기쁨의 절반 정도만 느껴온 건 아닐까. 행복을 담뿍 당겨 쓰기보다 간간하고 확실하게 누리는 편을 택했다. 통금 있을 때 마시는 술이 왠지 더 달지 않은가. 이제 내게 술 마시는 기쁨은 음주의 날을 고대하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씁쓸한 술 한 모금이 낯설어진 만큼 취기를 어느 때보다 더 생생하게 느낄 것이다. 고통 속에서 부족한 만큼 더 행복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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