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난이에게]
안녕 몬난아.
여긴 겨울의 가운데에 있어도 예전처럼 춥지가 않아. 내가 밖을 나가지 않아서 모르는 건지. 기후 변화 때문에 겨울도 더 이상 예전의 겨울이 아닌 건지. 날씨가 좋으니까 더 네 생각이 나. 지긋한 눈으로 겨울바람 맞으면서 킁킁 거리는 모습. 그런 상쾌한 바람을 좋아했지. 네가 있는 그곳은 어떠니.
너에게 편지를 쓰기로 했어.
넌 내 제일 친한 친구잖아. 네 이야기를 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어떤 이야기도 할 수가 없어. 그래서 차라리 너에게 나의 오늘을 말하기로 했어. 예전처럼 들어줄 거지?
난 올해를 독감으로 시작했어. 무지 아팠지만, 작년의 시작을 전세사기로 한 것과 비교하면 올해가 좀 낫지. 12월이 어떻게 갔는지도 모르게 지나가고 벌써 1월도 끝자락이야. 시간이 너무 빨라서 새삼스럽게 놀라. 매일 보던 너를 못 본지도 한 달이 넘었다니. 이렇게 시간이 잘 가는 것을 보면 아마 우리는 잘 지내고 있는 것 같아. 걱정 안 하겠지만 걱정 안 해도 돼.
어제는 전세사기 재판 종결이 있었던 날이야. 연차까지 쓰고 법원으로 가서 이야기를 들었어.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지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뭐 그런 이야기들이 오갔어. 내가전세사기를 당하고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내 탓이 아니니 자책하지 말라고 했어. 그리고 그 임대인을 욕해줬어. 그런데 확실히 알겠어. 내가 잘못한 것이 맞구나. 내가 내 돈을 지키지 못했구나. 그렇게 생각하니 이상하게 마음이 제법 괜찮았어. 그리고 네 생각이 났어. 그 빌라 옥상에서 자리를 펴고 상추를 심었던 휴일을 생각했어. 여름 낮의 햇볕이 뜨거워서 나는 우산을 펴고 그 아래서 선선한 바람을 맞았고 너는 뜨거운 볕이 좋아서 촉촉한 코를 벌름거리고 있었어. 가끔 비둘기가 날아오면 너는 날쌔게 달려서 비둘기를 쫓아냈어. 그리고 당당하게 우리에게 다시 돌아왔고 우리는 같이 웃었어. 그런 날이 종종 있었지. 돈으로도 살 수 없을 만큼 행복한 시간이었어. 이제는 다시 돌아갈 수도 없는 시간이잖아. 재판 내내 고개를 숙이고 있던 임대인이 우리 앞에 서서 사죄했어. 손을 벌벌 떨면서 눈물을 흘리며 죄송하다고 했어. 일 년 만에 처음으로 사과를 받았어. 기회가 많았을 텐데 그동안 연락을 두절했다가 재판 최후진술에서 그렇게 눈물의 사과를 받았다는 것이 아쉬웠지만 말이야. 그래도 괜찮았어. 사과를 받으니 용서할 마음이 생겼어. 그리고 우습게도 그 사람을 보고 있으니 나도 눈물이 났어.
어쩌겠어 몬난아. 살아야지.
그 빌라에서 살았던 사 년이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간이야. 그 돈이 행복의 대가라면 하나도 아깝지가 않아. 다른 피해자들이 많고 나보다 힘든 사람이 더 많으니 쉽게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아니지만 말이야. 이제 선고만 남았어. 어떤 벌을 받게 될지 궁금하긴 하지만 크게 중요하지는 않아졌어. 나도 몰랐는데 나는 사과가 받고 싶었던 건가봐.
보고 싶은 몬난아. 항상 보고 싶지만 유난히 더 보고 싶을 때가 있어. 그런 날에는 우는 수밖엔 없어.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겠지. 그래도 생각보다 우리는 잘 살고 있단다. 우리가 너무 잘 지내도 서운해하지 말아줘. 크게 관심 없겠지만 말이야.
다음에 또 찾아올게.
안녕, 강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