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의 탄생, 2023년 1월의 기록
아는 여자가 있다. 올해 서른두 번째 생일을 맞은 그녀는 아주 어릴 때부터 품어 온 의문이 하나 있었다.
"생일, 축하할 일이 맞을까?"
불교의 가르침에 의하면 삶은 고통이라고 한다. 태어남은 고통의 바다로 뛰어드는 일이니 안타까움을 자아내는 일이 맞을 것이다. 그녀는 살면서 제법 많은 기쁘고 따뜻한 기억들을 만들어 왔다. 하지만 악당이 영웅보다 더 부지런한 법이니, 행복한 기억보다 불행한 기억을 떠올리는 쪽이 훨씬 쉬웠다. 나쁜 기억들 덕분에 그녀는 '삶은 고통'이라는 명제에 깊게 공감하였다.
사람들에게 축하를 받으면 고맙고 기뻤지만, 자신의 생일을 손꼽아 기다린 적은 없었다. 어떤 때는 본인의 생일을 잊고 지나가기도 했다. 주변 사람들의 생일이 되면 열심히 축하했지만, 마음 한 편으로는 '생일이 진짜 좋은 날일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그러다 문득 궁금해졌다. 아무리 삶이 고통이라고 해도 사람들이 다 기뻐하고 축하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을 테다. 그렇다면 자신이 평생토록 생일에 대해 부정적으로 느끼는 데에도 이유가 있을 것이었다.
어린 날, 그녀는 자기가 신의 미움을 받는다고 생각했다. 불안한 마음이 들 때면 작은 두 손을 가지런히 모아 신께 간절히 빌었다. 나쁜 일이 생기지 않게 해 주세요. 아무리 빌어도 언제나 그녀의 눈앞에 들이닥치는 건 불행한 현실이었다. 그래서 한때는 소원을 거꾸로 빌기도 했다. 그 생각의 끝에는 '내가 태어난 것부터가 잘못이다'라는 결론이 따라왔다. 다소 극단적이지만, 폭력과 가난으로 얼룩진 유년기를 보낸 그녀에게는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녀의 아비는 그녀가 태어나자 속상해서 술을 마셨다. 그의 아내는 그가 미워서 자신의 아이에게 젖을 물리지 않았다. 그 사실을 알게 된 그들의 아이는 깨달았다. 자신이 기쁨이 아닌, 슬픔과 함께 세상에 나왔다는 사실을. 생명의 탄생이란 축복받을 일일 텐데 자신만은 예외였다. 어쩌면 아주 잠깐의 해프닝이었을지도 모른다. 이후에는 부부가 넘치는 사랑으로 아이를 키웠을 수도 있다. 혹은 자신이 들은 이야기에 대해 더 나쁘게 조작해서 기억하는 것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더 이상 진실을 파헤치고 싶지 않았다. 그 이야기를 떠올릴 때마다 사무치게 외로운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흔하디 흔한 돌사진 한 장 없는 그녀에게는 생일이 일종의 콤플렉스였다. 신에게 미움을 받고 부모마저 반기지 않은 생, 그것이 그녀의 가장 큰 약점이었다. 그 태어남을 기념하는 날이 매년 돌아오니 기쁠 이유가 없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서른이 넘도록 잘 살아 있고, 더 나아가고자 노력하고 있다.
그녀는 내가 아는 사람 중 가장 행복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누구보다도 행복해지고 싶어 하고, 그러기 위해 노력한다. 그 짓을 삼십 년이 넘게 해 오고 있으니 장하다고, 기특하다고 칭찬해 줘야 마땅하지 않을까? 생일은 태어남을 기념하는 게 아니라 살아옴을 기념하는 날이라는 것을 그녀를 보며 깨닫는다.
당신은 선택권 없이 이 세상에 처음 왔다. 당신의 탄생에 별도 달도 기뻐했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러나 당신이 살아온 역사에 대해 나는 경이로움을 표한다. 당신은 이 지독한 세상에서 또 일 년을 버텼다. 아주 잘했다. 기특하다. 당신의 살아냄이 기쁘다.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다. 당신이 자랑스럽다. 나는 반복해서 당신의 생을 축복하고 축하할 것이다. 살아줘서 고맙다.
-2023년 1월, 당신의 생일에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