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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난이에게]

by 킴철수

안녕, 몬난아.

이번 주말에는 비가 오고 있어. 하늘이 우중충하고 비가 왔다 말았다 해서 땅이 마르질 않아. 땅이 젖어 있으니 어디선가 숲 냄새가 나는 것 같기도 해. 젖은 땅에서는 더 진한 냄새가 나서 강아지와 함께 산책하기 좋은 날씨야. 네가 없어도 나는 산책을 하고 있어. 이리저리 다리가 아플 때까지 걸어. 네가 있어서 가기 힘들었던 여행도 다녀왔어. 네가 없으니 이제 미안할 필요가 없는데 그래도 왜 미안한지 모르겠어.


날씨 탓인지 모르겠지만 난 요즘 힘이 없어. 풀이 꺾인 사람처럼 기운이 없어. 무엇을 해도 크게 즐겁지가 않고 색을 잃은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내 물건 곳곳에서는 네 사진이 붙어있어. 다양한 표정의 사진이 있지만 그 중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네 모습은 아무래도 으르렁하는 모습이야. 나를 물 것처럼 으르렁하는 모습, 심지어 물려도 기분이 좋았어. 빼앗기지 않으려고 애쓰는 네 모습에서 에너지가 느껴졌거든. 이런 에너지라면 오래오래 살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 그 모습을 보려고 나는 또 깔깔거리며 빼앗는 시늉을 하고 너는 또 스트레스 받고. 미안해. 다음 생에는 꼭 내가 너의 반려동물이 될게. 하지만 나는 결코 네 사료를 먹은 적은 없어. 단 한번도. 그건 네 오해야.


그렇게 에너지 넘치던 네 모습은 한 순간에 달라졌어. 어느 순간부터 내가 간식을 빼앗는 시늉을 해도 너는 입맛을 잃은 강아지처럼 회피하기 시작했어. 꼬리는 축 늘어져 더 이상 올라가지 않았고 눈빛도 반짝임을 잃었어. 더 이상 행복할 일도 기대할 일도 없었어. 그런 모습을 지켜보면서 얼마나 속상했는지 너는 아니. 뭐, 몰라도 돼.


내가 기운이 없을수록 기운이 넘치는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 기운이 더 빠져. 그러면서도 그 젊은 에너지가 부러워.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에너지. 반짝거리는 눈. 녹은 치즈처럼 늘어지는 내 모습과는 사뭇 달라. 나도 그런 에너지를 갖고 싶어서 몸을 움직여 봐도 역시 쉬운 일이 아니야.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 조금 씩 나아질 거라고 생각해. 적어도 내가 원래 가지고 있던 만큼은 다시 힘을 낼 수 있을 거야. 내가 지금 글을 쓰고, 걷고, 보고 듣는 모든 것이 그 노력이니까.


사랑하는 강아지. 잘 태어난 것처럼 잘 죽는 것도 분명히 있다고 생각해. 그리고 너는 누구보다 잘 죽었다고 믿어. 잘 죽은 강아지. 나도 잘 살고 잘 죽을 수 있도록 노력할게.

다음에 또 만나자.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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