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난이에게]
스포가 있습니다.
강아지 안녕. 봄이야.
벚꽃이 폈다가 다 떨어지고 이제 파릇파릇한 싹이 트고 있어. 벚꽃과 잘 어울리던 강아지.
봄인데 날씨가 더워. 이른 여름이 온 것 같아. 여름이라니, 올해도 또 금방이겠구나 싶어. 그렇더라고 금방 덥고, 금방 또 추워지면 한 해도 금방. 네가 죽은 지도 벌써 석 달이 지났잖아.
얼마 전에 <폭싹 속았수다>라는 드라마가 끝났어. 매회 울었던 것 같은데 마지막 회가 특히 슬펐어. 엄마도 잃고 자식도 잃고 남편도 잃고, 결국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야. 너는 남겨진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아니.
어릴 적부터 죽는다는 게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항상 가깝게 느끼면서 살았어. 가족이 죽는 상상, 내가 죽는 상상. 구체적인 상상을 너무 자주해서 그런지 나중에는 별 감흥도 없었어. 천국이나 지옥 따위는 애초에 상상도 하지 않았어. 죽으면 죽는 거지 뭐. 수많은 사람들이 사고로 죽었다는 뉴스를 보던 날에도 안타까움 보다는 놀라움이 앞섰어. 그리고 슬픔을 느끼기도 전에 나는 또 내 삶으로 돌아왔어. 네가 죽고 알았지. 남겨진 상상은 해본 적이 없으니까.
너를 보내고 너무 슬퍼서 나중에 내가 죽으면 또 누군가는 이렇게 슬프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 죽으면 그만이지만 그만이 아닌 거야. 그동안 습관처럼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순간들이 미안해졌어. 이제는 누구보다 오래 살고 싶어. 그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런 의미에서 네가 나보다 먼저 죽어서 정말 다행이야.
드라마 마지막 회에서는 떠나는 사람과 남겨진 사람이 서로 마주보고 웃고 있었어. 그 장면이 유난히 기억에 남아. 어쩔 수 없이 헤어진다면 웃으면서 보내 주고 싶은 마음일거야. 나는 너를 그렇게 보내주진 못했지만 이제라도 편하게 떠날 수 있도록 해볼게. 몬난아, 이제 편지는 오늘이 마지막이야. 그동안 내 이야기 들어줘서 고마웠다. 사는 게 버겁고 숨이 차는 순간에도 네가 있어서 웃으면서 살아갈 수 있었어.
‘폭싹 속았수다’가 무슨 뜻인지 아니? 고생했다는 제주도 방언이라고 하는데, 어디서는 크게 속았을 때 쓰는 표현이래. 인생에 크게 속아서 고생했다는 뜻인가 봐. 태어났을 때부터 인간에게 속아온 너에게 딱이야. 속아서 산 견생, 그동안 정말 아주 폭싹 속았수다.
안녕하세요, 독자 여러분.
그동안 <서른의 시선> 에세이를 함께 읽어주시고, 공감해주시고, 응원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매주 글을 통해 여러분과 마음을 나눌 수 있어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요즘 각자의 일상에 집중해야 할 시간이 찾아와, 잠시 연재를 쉬어가려고 합니다.
잠깐의 휴식이 지나고, 더 좋은 이야기로 다시 인사드릴 그날까지.
그동안 건강히, 평안히 지내시길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또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