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 미제라블(Les misérables, 2019)
2021년 5월 13일 목요일, CGV 압구정에서 '레 미제라블'을 관람했다. 이 영화가 빅토르 위고의 소설 '레 미제라블'과 같은 이름을 사용했는데, 반복되는 작품의 이름처럼 역사 또한 되풀이된다는 게 잘 와닿았다.
※영화를 보지 않은 분들에게는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주의 부탁드립니다.
떨어져 살고 있는 어린 아들과 가까이 지내기 위해서 경찰 스테판은 파리의 몽페르메유로 전근을 오게 된다. 그곳의 경찰들은 팀워크를 스테판에게 강조하고 스테판은 크리스, 그와다와 함께 삼인조로 순찰을 나가게 된다. 그러던 중 집시들이 데리고 있던 새끼 사자가 사라지게 되고, 집시들은 시장을 찾아가 그것을 찾아내라며 협박을 한다. 스테판의 삼인조가 나서서 중재하고 새끼 사자를 찾아줄 것을 약속한다. 새끼 사자를 훔쳐 간 사람은 분명 SNS에 자랑을 할 것이라고 생각이 맞아떨어지고, 동네 아이 이사가 용의자임을 발견한다. 이사를 잡으려고 하는 과정에서, 이사는 그와다가 발사한 고무총에 맞게 된다. 이 장면이 어느 드론에 영상으로 찍히게 되고, 경찰은 이 드론의 주인을 찾아 영상을 삭제하려고 한다. 경찰과 시민 사이의 분위기가 일촉즉발인 상황에서, 스테판은 이들의 갈등을 해결할 수 있을까?
팀과 개인
Team and individual
영화는 프랑스 국민들이 월드컵 결승전을 응원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이사와 친구들도 파리의 개선문으로 가서 축구팀을 응원한다. 이사와 친구들은 그 팀의 선수 개개인에도 주목하며, 어느 선수가 득점을 할지에 대해서 내기를 한다. 결국 프랑스 팀은 우승을 거머쥔다. 하지만 축구의 장면이 아닌, 우승에 기뻐하는 국민들만 화면에 나온다. 프랑스 국민들은 당연히 하나의 팀처럼 보인다. 하지만 과연 그들은 팀인가 아니면 팀 속의 개인들인가?
여기 또 다른 프랑스 팀이 있다. 스테판이 전근 오며 합류한 몽페르메유의 경찰 팀이다.
출근 첫날 스테판은 협동심에 대한 경고 같은 충고를 듣는다. 그리고 즉시 크리스와 그와다가 있는 팀에 합류한다. 경찰에게는 정해진 규율과 법칙이 존재하며, 그것은 법처럼 효력을 갖기도 하고 오랜 마찰로 굳혀진 것도 있다. 또한 이들은 정복을 입지 않더라도, 시민들은 한눈에 그들을 알아본다. 스테판이 경찰 완장을 차려고 하자, 그것 없이도 이미 누가 경찰인지 알아본다고 크리스는 말한다. 순찰차 또한 특별한 표시가 없지만, 번호판의 글자만 보더라도 누구나 그것이 경찰의 차라는 것을 알고 있다. 몽페르메유의 경찰은 이처럼 안으로도 겉으로도 건재해 보이는 팀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경찰은 그들의 팀을 마치 권력처럼 여긴다.
반면 이사와 아이들의 팀은 다른 모습을 보인다. 이사가 속해있는 또래집단에는 규율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팀으로 불리지 않고, 한 개인이 그 또래 집단을 대표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끈끈한 유대관계를 갖고 있다. 처음 이사가 훔쳐 온 사자를 그의 친구에게 보여주며 비밀을 나누고, 경찰에게 쫓기는 이사를 그의 친구들이 필사적으로 구해내려 한다. 아이들은 마치 본능처럼 구성원을 알아보며 유대한다. 이후 경찰과 시장을 상대로 테러를 일으킬 때 또한 조직적으로 모여서 체계적인 작전을 펼치기도 한다. 누가 계획한 일인지 묻는 시장의 물음에도 이사와 아이들은 묵묵부답이다. 그 침묵에는 많은 것들이 담겨 있는데, 주동자를 숨기려는 의도뿐만 아니라 실제로 그들이 특정한 주동자에 따라 움직이지 않음을 뜻할 수도 있다.
중재는 답이 아니다
Mediation can not be an answer.
영화의 초반부에는 개인들의 마찰들이 중재에 의해서 잘 풀어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시장에서 가판대의 크기에 시비가 붙자 경찰은 말로 원만하게 해결하며, 동네 아이들의 짓궂은 장난도 종교적 설교로 바람직한 방향으로 지도되고 있는 것 같았다. 새끼 사자가 사라졌을 때에도 경찰이 적극적으로 나서 해결하겠다고 약속을 하자, 극에 치닫던 사태가 잠시 누그러진다. 곧 사자 도둑을 찾아낼 수 있었고, 사건이 잘 수습되는 듯 보인다.
하지만 중재를 하던 경찰의 역할이 한순간에 깨져버린다. 그들이 직접 개입을 했기 때문이다. 이사를 잡는 과정에서 그와다가 쏜 고무총에 이사가 맞게 되고, 크리스는 이 상황을 무마하려고 하면서 일은 걷잡을 수없이 커지게 된다. 드론으로 이 장면을 찍은 아이가 살라를 찾아가게 된다. 살라는 이전엔 극악무도의 범죄를 일삼던 전과자였지만, 이제는 종교의 힘으로 회개하고 조용하게 케밥을 팔고 있었다. 이 소식을 듣게 된 크리스와 그와다는 살라와 맞설 수 있는 다른 세력을 끌어들인다. 그리고 이사가 고무총에 맞는 장면을 목격한 아이들도 시장에게 찾아가 도움을 요청한다. 그렇게 살라의 케밥집에서 경찰, 살라 그리고 시장의 세력들이 만난다. 경찰과 시장이 살라를 설득하며 문제의 영상을 넘겨달라고 하지만, 살라는 그럴 수 없다고 거부한다. 그러자 크리스는 자신이 곧 법인데, 살라가 따르지 않는다고 화를 낸다.
이때 스테판은 살라와 단둘이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한다. 스테판은 이사는 안전한 상황이고, 이 영상이 공개되면 이전에 일어났던 것처럼 또다시 유혈사태가 일어나게 둘 수는 없다고 말한다. 살라는 이 영상을 없앤다고 이 분노가 사라지진 않는다고 말하며 영상을 스테판에게 넘기게 된다. 여기까지는 중재가 제 역할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사건의 당사자들은 어디 있는가? 고무총을 발사한 그와다와 그 총에 맞은 이사는 서로 대화도 해보지 못한다. 그와다는 이사에게 해명과 사과를 해보지도 않는다. 살라를 견제하려는 크리스, 경찰들의 약점을 손에 쥐고 싶은 시장 그리고 영상을 손에 넣은 살라의 세력 싸움만 일어났을 뿐이다. 결국 어른들의 갈등만 잠시 풀어졌을 뿐, 당사자인 이사는 철저하게 배제당한다. 결국 아이들은 아파트에서 테러를 자행하며 그들이 봐왔던 어른들처럼 폭력적인 방법으로 분노를 터뜨린다.
스테판은 누구인가
Who is Stéphane
순찰차 속에서 크리스, 그와다와 함께 있는 스테판은 집단으로서의 경찰이다. 순찰을 하며 크리스와 그와다는 시민들과 서로 농담을 주고받고 웃기도 한다. 하지만 대화가 끝나면 그들의 태도는 돌변한다. 방금까지 대화를 나눈 사람은 사실 전과자이며, 어차피 또다시 범죄를 일으킬 것이라고 말하며 비웃는다. 또한 수많은 이민자들이 살고 있는 파리 외곽의 몽파르메유의 모습을 보며, 못마땅해한다. 창밖으로 보이는 사람들을 보며, 빅토르 위고의 '레 미제라블' 속 인물들의 이름만 조금 바뀌었을 뿐 여전히 존재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한 스테판은 순찰차 뒷좌석에 앉아 이 장면들을 조용히 지켜만 본다.
반면 스테판이 순찰차에서 내리면, 개인으로서의 경찰이 된다. 마약에 손을 댄 청소년들이 보이자 크리스가 검문을 하기도 하는데, 크리스가 다소 폭력적으로 나서자, 스테판이 그를 저지하며 청소년들을 타이르고 보낸다. 집시의 새끼 사자를 훔쳐 간 이사가 그와다의 고무총에 맞자, 스테판은 아이를 병원으로 옮기는 것이 먼저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크리스와 그와다는 기절한 이사를 비밀 장소에 숨기고, 드론으로 촬영된 영상부터 없애려고 한다. 이에 스테판은 아이의 안위를 가장 걱정하며, 그의 동료 몰래 약국으로 가서 아이를 치료해 준다.
몽페르메유로 전근을 온 스테판 역시 그곳의 이민자와 마찬가지로 전입자이다. 자신들이 들어오기 전의 그곳의 분위기 읽고 규칙을 따르며 적응하려고 한다. 스테판이 경찰서와 순찰차 안에서 열심히 분위기를 파악하려는 모습은, 고향을 잃은 혹은 특별한 사연으로 떠나온 이민자들과 닮아 있다. 반면 스테판이 크리스, 그와다와 떨어지면 적극적으로 상황을 바꿔보려고 노력한다. 한 아이의 아버지처럼 행동하기도 하며, 그와다에게는 옳은 방향을 일러주기도 한다.
사실 스테판만 이처럼 고민하는 것은 아니다. 업무를 마치고 퇴근한 크리스와 그와다도 스테판과 비슷한 생각을 한다. 한 가정에서 두 딸의 아버지인 크리스도, 한 어머니의 자랑스러운 아들인 그와다도, 스테판처럼 하루를 돌아본다. 이처럼 한 명의 경찰로서의 역할과 단체 속 경찰의 역할이 충돌하면서, 그 사이에서 그들은 스스로 갈등하게 된다.
2021년 05월 13일 CGV 압구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