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스포드 살인사건(The Oxford Murders, 2008)
2021년 7월 15일 목요일, 롯데시네마 건대입구에서 열린 '옥스퍼드 살인사건' 시사회에 다녀왔다. 역시나 아무 사전 정보 없이 관람했다.
※영화를 보지 않은 분들에게는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주의 부탁드립니다.
※해당 시사회는 키노라이츠에 응모 및 당첨되어 참석할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마틴은 아서 셀덤 교수에게 지도 받기 위해 옥스퍼드 대학교로 간다. 반면, 셀덤은 본인의 연구에만 몰두해서, 교수에게 논문을 지도 받고 싶던 마틴의 기대는 꺾이게 된다. 마틴이 살던 하숙집의 노부인이 의문 속에서 사망하게 되고, 그 뒤로 연쇄살인 사건이 일어난다. 수학 이외에는 절대적인 건 없다는 셀덤은 경찰의 수사를 믿지 않는다. 이에 반해 자연도 수학을 따라간다고 생각하는 마틴은 이 연쇄살인사건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과연 이들의 상반되는 견해는 연쇄살인사건의 전말을 파헤칠 수 있을까?
철학은 죽었다
Philosophy is dead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은 제1차 세계대전 중 그의 저서인 『논리철학논고』를 적었다. 셀덤 교수는 학생들에게, 그는 왜 전쟁중에도 이 책을 썼는지 질문하고, 더 미루기엔 너무나 중요한 내용이었기 때문이라고 자답한다. 이 책은 우리는 진실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는가에 대한 내용이었고, 결국 절대적인 진실은 수학 외엔 없다는 결론을 내린다. 진리를 찾아내야할 철학의 역할이 끝났다는 의미이다.
여기에 마틴은, 자연 또한 수학을 따르기에 그 안에서 일어나는 것들도 진실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눈송이의 수학적으로 안정된 패턴을 갖는다는 것을 예로 든다. 교수는 나비효과의 시발점인 나비 또한 자연의 일부라면, 그로 인해 발생하는 허리케인도 수학을 따르는 것이라고 생각하는지 마틴에게 반문한다. 그리고 덧붙인다. 그 누구도 허리케인을 정확하게 예측해낼 수 없다고.
설전을 펼친 셀덤과 마틴은 이후 노부인이 죽어있는 것을 동시에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한다. 그리고 그 용의선상에 노부인의 딸 베스, 하숙생 마틴 그리고 셀덤 교수가 오른다. 셀덤은 확실한 증거가 있더라도 결코 살인자를 가려낼 수 없다고 말한다. 반면, 마틴은 99%의 신뢰도로 범인을 지목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자 셀덤은 100%와 99%는 큰 차이라고 답하며 인정하지 않는다.
셀덤과 마틴의 논쟁에 답은 없다. 설령 답이 존재한다고 할지라도, 그 외의 것이 오답인 것은 아니다. 생명과 그것의 삶이 수학적으로 증명되지 않는다고, 무의미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두 의견은 우리로 하여금 생각하게 만든다. 처음엔 어느쪽이 옳은지 가려보는 것도 좋다. 그리고 둘 다 부정해보는 것은 더 좋다. 이런 의미에서 절대적인 진리가 수학뿐이어도, 철학은 죽지 않는다.
두 여자
Two women
정확한 음계를 연주해내야 하는 첼로 연주자인 베스는 시한부 판정을 받은 어머니를 간병하며 살아왔다. 베스는 사생활에 있어서 어머니와 관련된 제약에 답답해했다. 자신을 즉흥적으로 여기기보단, 화음을 만들어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에, 어머니를 벗어나진 못한다. 그 예로 마틴에게 여지를 느낀 베스는, '좋은 때'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마틴에게 화를 내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녀에게 사랑은 항상 자신을 향해 있어야 한다. 사랑에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 절대적인 관계라고 여긴다. 그녀에게 사랑은 마치 항등식과 같다.
반면, 로라는 베스에 비해 우유부단한 성격을 보인다.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스쿼시를 치던 마틴은, 공이 벽과 만나는 각도와 속도를 계산해서 궤도를 예측한다. 이런 그에게 로라는 둘이서 스쿼시를 쳐도 궤도를 알아낼 수 있는지 질문하고, 마틴은 변수가 많아질 테지만 가능하다고 답한다. 하지만 결국 로라와 함께한 스쿼시의 공은 예측 불가능했다. 로라는 이처럼 흘러가는 대로 살아가며, 어떤 원인이 특정한 결과를 만들어내지는 않는다는 것을 마틴에게 일깨워준다. 그리고 그런 면에서 인생이 가치 있다는 견해가 마틴과 통한다. 그녀에게 사랑은 방정식 같다.
자유로워 보이는 마틴을 부러워하는 베스, 그리고 마틴에게 예외를 가져다주는 로라. 마틴은 이 두 사람에게 모두 마음이 끌린다. 수학만이 절대적이라는 셀덤 교수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 것처럼, 맹목적인 사랑을 원하는 베스와의 관계는 깊어지지 않는다. 반면, 로라와의 사랑은 마찰이 있었지만 잘 풀려나가는 듯한다. 하지만 로라와 이야기를 나눌수록, 마틴은 자꾸만 셀덤 교수가 눈에 밟힌다. 결국 그는 로라와의 관계를 위해서 셀덤 교수 없는 곳으로 가려고 한다. 그러나 살인사건의 전모를 깨닫게 된 마틴은 셀덤 교수에게 달려가게 되고, 로라는 이런 마틴을 두고 떠난다.
1: 완전한 시작
The first as a perfect beginning
수열이란 연속적으로 숫자들을 나열하고, 그 숫자 사이의 규칙을 찾는 것이다. 단 두 개의 숫자만 있다면, 우리는 충분히 둘 사이의 관계를 파악할 수 있다. 수열뿐 아니라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도 일정한 연관성을 띤다. 작은 변화가 예측할 수 없는 방대한 변화를 이끌어낸다는 나비효과가 이를 뒷받침한다. 그렇다면 나비의 날갯짓 한 번이 어떻게 토네이도를 발생시켰는지, 그 연쇄적인 반응들을 수학적으로 확인할 수 있을까?
이 영화에 따르면 일정 부분은 확인이 가능하다. 단 여기에 전제되어야 할 것은 바로, '과거'라는 시제다. 나비의 날갯짓과 토네이도의 발생이 이미 완료된 상태라면, 우리는 그 상관관계를 분석할 수 있다. 완벽한 분석이 이루어질 때까지의 시간, 그리고 그 관계의 신뢰성은 일단 무시해보도록 하자. 예를 들어, 2 4 6 8 다음에 올 숫자는 10이라고 쉽게 예측할 수 있다. 연관 없어 보이는 숫자들이 나열된다면 규칙이 더 복잡해지겠지만, 역시나 분석은 가능하다.
그렇다면 '과거'의 시제가 아니라, '현재'나 '미래'의 시제라면 어떨까? 2 4 다음에 위의 예시처럼 6 '2씩 숫자가 커진다는 규칙'이 올 수도, 혹은 8 '2와 4의 곱이라는 규칙'이 올 수도 있다. 영화에서 셀덤과 마틴은 3번째 살인사건에서 갈피를 잃는다. 두 명 모두 어디서, 누가 살해될지 몰랐던 것이다. 셀덤은 알고 있는 것처럼 보였으나, 후에 그도 몰랐던 것이 밝혀진다. 결국 두 사람은 3번째 살인이 일어날 때까지 기다린다. 조금 다른 말로 해보면, 세 번째 순서에는 조그마한 연관성이 있다면 어떤 것이 와도 상관없다는 것이다.
영화의 후반부에, 이 연쇄살인 사건들은 미리 계획된 것이 아닌 것으로 밝혀진다. 첫 번째 살인이 일어나자, 그것을 덮기 위해 두 번째 살인을 유도한다. 세 번째 또한 살인이 일어나길 기다리다가, 연관성을 이후에 부여한다. 결국 이 영화에 등장하는 연쇄살인은, 규칙을 갖고 의도한 사건들이 아닌, 그저 이미 일어난 살인사건들을 나열해둔 것일 뿐이다.
영화에서 등장하는 피타고라스 학파는 숫자 1을 만물의 기원이며, 본질이라고 여겼다. 그들은 숫자 1을 동그라미로 기호화했으며, 원처럼 완전하다는 의미를 부여했다. 살인 아닌 살인을 열거하면서 연쇄 사건으로 보이도록 한 범인은, 첫 번째 살인사건에서 우연들을 규칙처럼 보이게 위장한다. 결국 어느 수열 다음에 오는 숫자는 어느 것이어도 상관없다. 이미 일어난 살인들을 한 사람이 일으킨 것처럼 꾸며낼 수 있듯이, 수열 뒤에 어떤 수자가 오든 규칙을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피타고라스 학파처럼 숫자 1은 이런 의미에서 완전을 의미한 것일지도 모른다. 두 번째에 오는 숫자가 무엇이든, 첫 번째의 숫자는 완전한 시작이다.
2021년 07월 15일 롯데시네마 건대입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