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숲(無聲, The Silent Forest, 2020)
2021년 10월 29일 금요일, CGV 용산아이파크몰에서 열린 '침묵의 숲' 시사회에 참석했다. 평소에도 배경지식 없이 영화를 관람해왔지만, 이번에는 특히 더 백지의 상태로 봤던 영화였다.
※영화를 보지 않은 분들에게는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주의 부탁드립니다.
※해당 시사회는 키노라이츠에 응모 및 당첨되어 참석할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농인들을 위한 특수학교 '붉은 숲'으로 전학 온 '창청'은 '베이베이'와 친구들을 만나며, 일반인과 비교 당할 필요 없는 학교생활을 시작한다. 하지만 그는 그녀를 비롯해 많은 학생들이 끔찍한 일을 당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하지만 베이베이는 침묵을 고집한다. 이에 창청은 '왕다쥔' 선생님께 이 사실을 털어놓고, 학교는 대대적인 전수조사를 착수된다. 하지만 사건을 풀어나갈수록, 그들이 보이던 침묵의 다양한 맨얼굴이 드러나게 된다.
불가피한 침묵
Inevitable silence
침묵이 음소거와 같은 의미라면, 창청을 비롯한 붉은 숲 학교의 학생들에게 침묵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이들은 선천적 혹은 후천적인 이유로, 청음이 어렵기 때문이다. 만약 그들이 가청인과 마찰이 생기게 되면, 그들은 침묵하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물론 가청인들이 이 학생들의 사정을 인지하고 있다면, 침묵은 그저 '소리의 부재'일 뿐 의사소통의 장벽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현실 속에서 학생들은 살아왔다.
창청은 아버지의 선택에 따라 가청인들과 학교를 다니다가 특수학교로 전학을 왔다. 여느 아이들처럼 외국어도 배우고, 축구를 하며 지낼 수 있는 학교생활에 창청은 즐거워 보인다. 이제껏 가청인들로부터 무시를 당하며 학교를 다녔기에, 현재의 평범한 생활에도 그는 행복해한다. 이전의 학교와 다르게 청각적인 능력에 대해 차별당하지 않는 학교생활이 그에겐 특별한 일상이다.
베이베이의 경우에도 불가피한 침묵 속에서 살아왔다. 그녀는 '붉은 숲' 학교에 오기 전에는 집에서 갇혀있다시피 살아왔다. 장애가 있는 그녀를 외부 사회로부터 보호하고 싶었던 조부모의 다소 억압적인 조치였다. 그런 그녀가 학교에 다니면서 가정에서는 가질 수 없던 친구들을 사귈 수 있었다. 이런 베이베이는 자신을 비참하게 만든 학교를 포기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럼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것은 범죄현장으로부터의 도피일 뿐이다. 그렇게 되면 베이베이는 또다시 사회와 격리될 것이기에, 그녀는 학교를 포기할 수 없다.
반면 가청인의 침묵은 농인의 것과 매우 다르다. 전자에게 침묵은 자의적 혹은 타의적이지만, 후자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다. 그래서 침묵을 선택하는 자는 '침묵을 지키는' 행동을 할 수 있고, 그렇지 못한 자는 침묵에게 선택 당한다. 하지만 우리는 침묵이 '정적'과 완전히 일치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소리 없는 아우성'이라는 유명한 시구가 있듯이, 농인들의 침묵을 곧 그들의 신체적 한계로 귀결시켜서는 안된다.
창청이 처음으로 등교한 날 밤에 파티가 열렸다. 가청인처럼 노래를 두 귀로 들을 수 있는 사람은 몇 없지만, 학생들은 신나는 음악을 강당에 가득 채웠다. 이전에 '코다(CODA,2020)'에서 '루비'의 아버지가 진동으로 음악을 감상하듯이, 귀를 통하지 않아도 그들은 음악을 즐긴다. 밝게 빛나는 조명이 그들의 노래가 되고, 그 속에 몸을 맡긴다. 이처럼 그들은 가청인과 마찬가지로, 소리에 반응하고 침묵을 깰 수 있다. 불가피하다는 것은 결국 닥쳐올 일이라는 것일 뿐이며 맞설 수 없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이런 침묵은 언제나 쉽게 깰 수 있다.
자발적인 침묵
Willing silence
앞서 말한 불가피한 침묵은 '(말) 소리 없음'에 가까운 의미였다면, 이번에 다룰 침묵은 소리와 관련 없다. 청각적인 방식을 포함해서 어떤 형식으로든 '표현'해내지 않음을 뜻한다. 하지만 그 동기가 내면에 있다고 여겨지는 침묵이 바로 '자발적인 침묵'이다.
베이베이는 여러 학생들로부터 끔찍한 일을 오랫동안 당해왔다. 이를 창청이 두 눈으로 목격하게 되고, 이 사실을 학교에 고발하자고 말한다. 하지만 그렇게 하는 것은 그녀가 친구들을 '배신'하는 행위라고 말한다. 그들이 그녀를 무섭게 대할 때도 있지만, 평소에는 잘 대해준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그녀만의 의견이 아니었다. 학생들을 조사했을 때, 그들은 서로를 착하고 좋은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가혹 행위는 재미를 위한 그들의 놀이였다고 말한다. 축구를 할 때 겨룰 상대와 함께 힘을 합칠 친구들이 있듯이, 베이베이는 그 무자비한 놀이의 '어떤 역할'을 맡았을 뿐이다.
학교 관계자는 사건에 책임이 있는 자와 가해자를 징계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번 사항에 대해서, 교장선생님은 침묵이라는 단어 대신 '신중'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하지만 '신중'이라는 단어가 내포하고 있는 조심스러운 의미와 달리, 이번 사건이 자신과 학교의 평판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걱정한다.
왕다쥔 선생님이 질문을 바꾼 순간 학생들의 침묵이 깨졌다. 계기를 묻는 질문을, 그 일의 시작이 타인에 의해서 강요되었는지 묻는 질문으로 바꾸자, 학생들이 입을 열기 시작한다. 학생들은 주체인 동시에 객체였다. 그리고 그동안 피해 사실을 알렸지만 그때마다 침묵을 강요하는 세력에 의해 좌절되었다는 것도 알게 된다. 조사가 진행될수록 늘어만 가는 가해학생과 피해 학생 수,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그들이 정확히 구분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강요된 침묵
Forced silence
용기 있는 학생들과 선생님에 의해서, 피해 학생들이 '의리'라고 여긴 침묵이 강제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밝혀진다. 특이한 점은, 단지 수직적인 위계 때문에 발생한 사건이 아니라는 것이다. 단선(單線) 적인 관계라기보단,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가해자로, 아주 복잡하게 얽혀있었다.
학생들은 이 범죄를 '놀이'라고 일컫는다. 이 진술을 들은 사람들은 곧바로 충격에 빠진다. 재미만을 위해서 범죄에 가담한 아이들의 어리석음도 그렇지만, 잘 계획된 조직처럼 서로를 옭아매는 집단의 섬뜩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 범죄와 재미를 위한 놀이가 실제로 유사해 보이는 점이 있다. 돌아가면서 술래가 되듯, 서로를 희생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이 이것을 놀이라고 여기기 시작한 이유가 외부에도 있다는 것 또한 주목해야 한다. 베이베이가 처음으로 피해자가 되었을 때, 당시 상황을 자세하게 적어놓은 기록이 그대로 남아있다. 범죄현장은 인솔교사가 있는 통학버스 안, 그리고 사감이 있는 기숙사였다. 책임자와 보호자의 명분으로 자리하고 있던 이들은 무책임하게 피해자를 외면했다. 이들은 더 나아가서 피해자가 말하는 상황을 '놀이'와 착각한 것은 아닌지 묻는다.
주동자로 지목된 학생은 역설적이게도 범죄에 직접적으로 가담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많은 학생들을 끌어들이고, 피해자를 가해자로 변모시켰다. 하지만 그가 이렇게 된 것도 역시나 책임자들이 무시한 침묵에서 시작되었고, 그는 이에 대해 아직도 함구하고 있었다. 학교에서 말한 사건 해결은 가해자와 방관자를 교정에서 내쫓는 것을 의미했다. 학교는 이렇게 무마에 가까운 해결에만 집중할 뿐, 당사자와의 진지한 대화는 시도하지 않았다. 그들은 계속해서 악습의 씨앗을 심연에 심어왔고, 어느샌가 불쑥 고개를 든 것들만 자르기에 급급했다. 뿌리 뽑히지 않은 것들은 여전히 땅 밑에서 싹을 틔려고 기다리고 있다. 침묵은 더 깊은 침묵을 낳고, 이를 깨는 목소리는 더 높은 목소리를 부를 것이다.
2021년 10월 29일 CGV 용산아이파크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