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유로부터

퍼스트 카우(First Cow, 2019)

by 우린

2021년 10월 6일 화요일,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린 '퍼스트 카우' 시사회에 참석했다. 그리고 한 달만인, 11월 6일 토요일에 씨네큐브 광화문에서 이동진 평론가가 진행하는 GV에 참석할 수 있었다. 영화를 두 번 본다는 것은 필자에게 기회비용이 큰 사치처럼 다가온다. 그러나 좋은 영화는 언제나 훌륭한 예외다.


※영화를 보지 않은 분들에게는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주의 부탁드립니다.

※해당 시사회는 키노라이츠에 응모 및 당첨되어 참석할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이 글은 씨네토크에서 언급된 내용이 인용되어 있습니다.


줄거리

'쿠키'는 미국의 동쪽에서 서쪽으로 이동하는 무리의 요리사다. 거친 자연 속에서 음식을 구하러 거닐던 어느 날 밤, 굶주리고 헐벗은 '킹 루'를 만나게 된다. 킹 루는 쿠키의 도움으로 생명을 지키지만, 쫓기는 몸이기에 작별 인사 없이 다시 떠난다. 한편 원정이 마무리되자 무리는 각자의 목적을 찾아 뿔뿔이 흩어지고, 쿠키는 캠프에 남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쿠키는 킹 루를 다시 조우하게 되는데, 이들은 '팩터' 대장이 갖고 있는 암소의 우유로 제빵사업을 구상하게 된다. 하지만 팩터 대장은 이 사실을 알지 못하는데, 쿠키와 킹 루는 '등잔 밑이 어둡다!' 작전을 잘 수행해낼 수 있을까?




도마뱀, 구멍 난 신발 그리고 우유
Lizard, Worn Boots and Milk


쿠키라는 인물을 묘사해 보라고 하면 어떤 단어들을 사용하겠는가? '착하다', '이타적이다', '부드럽다' 여러 단어들이 떠오를 것이다. 하지만 이 인물의 성격은 이런 단편적인 단어보다, 그가 동물이나 사물을 대하는 태도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는 미국의 개척기에 동부에서 서부로 향하는 원정단에서 식량을 담당한다. 재료의 채집부터 요리까지 모두 그 혼자 담당한다. 그는 버섯을 따기 위해 홀로 나섰을 때, 작은 인기척에도 주위를 돌아볼 정도로 겁이 있는 인물이다. 초록으로 우거진 숲에서 노란 도마뱀이 돋보인다. 보호색을 띠고 있어야 할 도마뱀이 이상하다는 것을 단박에 알아차린 것일까, 그는 그 뒤집어져서 배를 보이고 있던 도마뱀을 다시 원위치로 돌려놓아준다. 이런 그가 난데없이 나체의 킹 루와 마주친다. 도마뱀을 다루던 그의 행동으로 보아, 킹 루에게 쿠키는 어떤 태도로 다가갈지 분명해 보인다.


오리건 준(準) 주에 도착한 무리는 각자의 흩어진다. 다 떨어져가는 부츠와 덩그러니 남게 된 쿠키는, 다음 목적지가 생길 때까지 그 캠프에서 머물기로 한다. 그동안 모았던 돈으로 멋진 부츠를 새롭게 장만한다. 사람들이 부러움이 가득한 얼굴로 그의 부츠에 주목한다. 그러자 그는 새 부츠에 진흙을 묻히고, 바짓단을 끌어내려 새 신발을 가린다. 사람들이 위협을 가하거나 질투심을 직접적으로 내보이지 않지만 그는 그렇게 한다는 점에서, 그의 허영심 없는 마음이 잘 나타난다. 더구나 그는 자랑을 하거나 돋보이려고 노력하기보다, 분수를 아는 인물로 그려진다.


드디어 우유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된다. 우유를 대하는 태도는 곧 암소를 대하는 태도와 같다고 볼 수 있다. 이 암소는 수컷 소와 송아지를 여행길에 여의고 홀로 오리건 주에 도착했다. 이 상황을 알고 있던 쿠키는 소에게 인사를 건네며 위로의 말을 전한다. 이는 우유를 노리고 왔다는 비열함을 숨기는 행동이라기보단, 소가 허락해 준 우유에 감사하는 마음이 담긴 따뜻함이다. 이후 쿠키와 킹 루의 제빵 사업이 번창하지만, 쿠키는 무리해서 우유를 짜는 행동을 보이진 않는다.


이처럼 때로는 인물이 사람을 대할 때보다 사물이나 동물을 중하는 태도에서 진심을 발견할 수가 있다. 이 영화에서 다루는 우정은 비단 쿠키와 킹 루 사이의 것만은 아니기에, 인간이 아닌 것들과 사람 사이의 우정에도 눈길이 간다. 사람 간의 우정은 의사소통을 기반으로 한, 반응 혹은 보답으로 이루어져 있다. 반면 쿠키와 소의 관계처럼, 인간과 자연(혹은 사물)의 관계는 인간의 일방적인 가치관을 알아볼 수 있는 암시가 된다.


출처: 네이버 영화 '퍼스트 카우(First Cow)'




차와 빵
Tea and Bread


쿠키에게 우유를 제공하는 암소는 좋은 혈통을 갖고 있고, 멀리서부터 데려온 귀중한 생명이었다. 더군다나 풀을 뜯어 먹을 수 있는 초원도 없는 오리건 주에 이 소를 데려온 이유는, 팩터 장군이 홍차에 우유를 넣어 먹고 싶었다는 것이다. 팩터 대장은 이 소를 자랑스럽게 여긴다. 그 소 덕에 홍차 맛이 깊어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 소를 데리고 온 과정이 무리였고, 그것은 곧 팩터 대장의 권력과 부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팩터 대장은 이 소를 탐탁지 못해하는 모습도 보여준다. 그는 이 소를 가리키며 '생산성'이 떨어진다고 말한다. 가축이 인간에게 주는 생산성이라고 하면, 보통 교배나 그 가축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부산물을 말한다. 팩터 대장의 말도 이 둘을 의미하는데, 한 마리 밖에 없는 가축은 교배를 할 수 없음은 그도 알고 있다. 그래서 새로 짝을 마련하겠다고 말한다. 또한 이 소가 만들어내는 우유의 양도 적음을 암시하는데, 이는 쿠키와 킹 루의 은밀한 사업 때문이니 관객으로서 웃지 않을 수 없는 순간이다.


여기서 소의 주인인 팩터 대장은 불만족스럽고, 쿠리와 킹 루는 만족스러워하는 이유는 단지 '우유의 생산량' 때문만은 아니다. 그들이 이 우유를 가지고 무엇을 하는지 살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그들이 만족하거나 그렇지 못한 이유는 '부가가치'에서 온다.


앞서 이야기한 대로 이 소를 팩터 대장의 앞마당으로 데려오기까지는 많은 돈과 시간 그리고 노력이 들었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소 두 마리를 잃었으니, 손해를 보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큰 비용을 치르면서도, 그는 이 우유를 홍차에만 넣어서 사용할 뿐이다. 벌써 암소가 주는 가치는 찻잔에서 끝나버린다. 팩터 대장이 홍차로 얻는 기쁨을 화폐로 환산해낼 수는 없지만, 우유는 오리건 주에서 얻을 수 없는 재화이기 때문에 그가 얻는 부가가치는 아쉬운 만족에 그친다.


반면 쿠키와 킹 루는 이 우유를 이용해서 빵을 만들어낸다. 우유를 음용하는 데에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재료와 결합해서 새로운 상품을 만들어낸 것이다. 물론 이 작업에는 쿠키의 노동력이 들어갔으며, 따지고 보면 킹 루의 발상에서 시작한 것이니 둘은 공동 창업자이자 동업자라고 볼 수 있다. 이들은 이 빵을 시장에 가져간 첫날부터 부가가치를 화폐로 체감한다. 특히나 마지막 빵은 '부르는 게 값'이라는 말처럼 비싸게 팔린다. 물론 쿠키와 킹 루가 제빵 사업에 큰 만족을 느끼는 이유에는, 그들이 재료(특히 우유)를 얻기 위해 지불한 대가가 없다는 것이 가장 크게 관여할 수도 있다.


이처럼 원재료를 그 자체로만 이용하는 인물들이 있는 반면, 원재료에 부가가치를 더해 새로운 재화로 만들어내는 인물은 미국 초기의 모습을 잘 반영한다. 특히 '골드러시'에 해당하는 시기를 보면, 금이라는 원료를 얻기 위해 서쪽의 금광을 찾아가는 광업이 있고 그 금을 제련하는 사업이 있다. 영화에서는 팩터 대장, 쿠키와 킹 루 외에도 배경으로 등장하는 시장 사람들을 살펴보면, 이런 인물들을 더 찾아볼 수 있다. 물고기를 잡아서 판매하는 사람도 있고, 무언가를 제작하는 인물들도 등장한다.


출처: 네이버 영화 '퍼스트 카우(First Cow)'




새로 쓰는 역사
The history being rewritten


쿠키와 킹 루는 서로에게 베푸는 따뜻한 우정을 갖고있다. 그러나 필자는 이 영화에서 다루는 우정을 설명하고 싶지 않다. 애초에 우정이라는 것은 설명되는 것이 아닌, 느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정의 다른 의미에 주목했다. 그들이 '역사'에 대해 서로 다른 의견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의견의 차이는 우정에게 걸림돌이 아닌, 더 큰 도약을 도와주는 디딤돌이 된다.


먼저 쿠키는 원정이 끝나면서 짧지만은 않은 시간을 오리건 주에서 보내게 된다. 그러면서 그는 점점 그곳을 새로울 것 없는 장소로 여기게 된다. 하지만 킹 루는 오리건 주를 새로운 곳으로 여긴다. 킹 루는 어릴 적부터 세계 이곳저곳을 다니다가 미국에 도착했는데도, 그에게는 오리건주가 가장 새롭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 말은, 모든 것이 처음이라서 새롭다는 의미가 아니다. 모든 것을 새롭게 보려고 하기 때문에 그렇게 느낀다는 것이다. 만약 쿠키가 이곳에 대한 권태를 느낀다면, 그것은 선입견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런 선입견이 없다면 역사도 새롭게 쓸 수 있다고 한다.


역사에 대해 이들과 또 다른 의견을 가진 인물이 있다. 바로 팩터 대장이다. 그는 오리건 주에 정착해서 마을을 형성할 수 있게 만든 장본인이지만, 유럽을 끊임없이 그리워한다. 이는 킹 루의 태도와 대비되는데, 그는 고향인 관둥을 비롯해 과거에 살던 곳에 대한 향수를 느끼지 않는다. 팩터 대장은 쿠키가 만든 빵을 먹더니 곧장 런던의 한 빵집을 떠올릴 정도로 고향을 동경한다. 그에게 미국은 새로 쓰고 싶은 역사가 있는 신대륙이라기보다는, 다시 쓰고 싶은 유럽(혹은 영국)의 역사가 있는 확장된 영토인 것이다.


'퍼스트 카우'의 감독인 '켈리 라이카트'에게 영화가 곧 새로 쓰는 역사일 것이다. 단, 사료로 고증되어 있는 굳건한 역사보다는 그가 상상하고 만들어낼 수 있는 역사에 가깝다. 여기서 만들어진 역사라는 것을 거짓의 역사로 받아들이는 오류를 조심해야 한다. 영화의 시작에서 큰 화물선이 콜롬비아 강을 지나가고, 그 강가에서 개와 어떤 인물이 등장한다. 그들이 쿠키와 킹 루의 역사를 발견하고 그것에 살을 붙인다. 그는 이것을 미국의 건국 초기로 가지고 간다. 이 이야기는 새로 쓰는, 그리고 다시 쓰는 켈리 라이카트 역사다.


출처: 네이버 영화 '퍼스트 카우(First Cow)'





출처: 다음 영화 '퍼스트 카우(First Cow)'













2021년 10월 06일 서울아트시네마

2021년 11월 06일 씨네큐브 광화문


https://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1356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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