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할 수 있는 휴가

휴가(A leave, 2020)

by 우린

2021년 10월 23일 토요일, 인디스페이스에서 열린 '휴가' 인디토크를 관람했다. 이란희 감독과 이봉하 배우의 이야기를 이동진 평론가의 진행을 통해 만나볼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다.


※영화를 보지 않은 분들에게는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주의 부탁드립니다.

※이 글은 인디토크에서 언급된 내용이 인용되어 있습니다.


출처: 네이버 영화 '휴가(A leave)'

줄거리

'재복'은 오래 시간 일해온 가구회사에서 해고를 당해, 1882일째 회사의 사과와 복직을 요구하는 농성 중이다. 하지만 회사의 해고가 부당하지 않다는 판결이 대법원에서 내려지자, 재복을 비롯한 조합원들이 갈 길을 잃는다. 농성을 끝낼 수도, 다시 한번 의기투합할 수도 없는 이 상황에서, 노조는 잠시 멈추기로 한다. "우리 휴가 하자."




부재
Absence



영화는 재복의 이동을 따라가며 진행된다. 그를 따라가다 보면 그의 존재만큼 부재에 대해 주목하게 된다. 이 영화에는 크게 세 가지의 부재가 다뤄진다.


먼저 재복에게는 '직장'이 부재하다. 1882일째라고 정확하게 실직 기간이 명시되는데, 5년이 넘는 시간이다. 직장의 부재는 곧 근로소득, 그리고 생계와 직결된다. 금전적인 부분 이외에도 부재가 발생한다. 그들은 노동의 기회를 박탈당했다. 그들에겐 정식 출근이 없어졌고, 그럼으로 인해서 퇴근 또한 사라졌다. 결국 이들은 직장과 더불어 퇴근 후의 일상생활 또한 이어나가지 못한다. 흥미로운 부분은 해고는 근로자들에게 선택권이 없었지만, 시위를 하며 일상생활 또한 희생한 것은 그들의 선택이지만 그것 외에는 어쩔 도리가 없어 보인다는 점이다. 사면초가의 상황에 더 물러날 곳 없는 그들에게 최종 판결이 내려졌다. 이들의 해고에는 부당함이 없다는 것이다. 이제 그들은 잠시 일상생활로 돌아가려고 한다. 일터에서 어느 기간 동안 자리를 비우는 것을 휴가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란희 감독은 이 상황을 뒤집어 연출했다. 재복은 휴가 기간 동안 새로운 일터로 나아가게 된다.


재복이 먼저 찾은 곳은 두 딸이 있는 가정이다. 가정에서는 가장의 부재가 눈에 띈다. 성별과 가정 내의 역할에 관계없이, 가정에서 생계를 위한 벌이를 하는 인물의 부재를 의미한다. 청소년인 자녀들의 보호자인 재복이 장시간 자리를 비운 집의 모습은 엉망이었다. 두 딸은 즉석식품으로 끼니를 때우는 것이 익숙한 듯 보이고, 부엌 개수대는 장시간 막혀있던 것으로 추측된다. 재복은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가사노동에 몰두한다. 가족이 먹을 수 있도록 음식을 만들고, 집안 이곳저곳을 손본다. 하지만 두 명의 딸은 재복을 애타게 기다렸던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그가 없는 가정에 체념을 한 상태에 가까웠다. 그가 오랜만에 귀가했지만, 그가 없던 삶을 그대로 이어나간다. 이때 수험생인 큰 딸에게는 당장 필요한 현금이 필요했고, 재복은 그 돈을 구하기 위해 단기간 일터로 나선다. 하지만 딸들은 더 이상 가장을 기다리고 있지 않는다. 이 아이들은 아버지 재복과 마찬가지로 직접 노동의 현장으로 나선다.


마지막 부재는 '근로자'의 부재다. 첫 번째로 살펴봤던 '직장'의 부재와 대척점에 있는 개념이기도 하다. 재복이 휴가 동안 찾아 나선 건 일할 기회였다. 단기간이지만 그는 지인의 가구공장에서 일하게 된다. 그가 그 자리에서 일할 수 있었던 이유는 사실 또 다른 근로자의 부재 때문이었다. 그는 외국인 노동자였는데, 한국에서 강제추방을 당했다. 그리고 그의 빈자리를 맡은 것이 재복이었다. 재복은 선인 가구에서 오랜 기간 일해왔지만, 도면을 읽거나 직접 손으로 가구를 만드는 것에는 서툰 모습을 보인다. 이는 이란희 감독이 경험한 악기 공장에서 일하다 해고된 사람들이, 부당함을 토로하는 시위 현장에서 악단을 꾸린 일화와 연결되는 느낌이었다. 그들은 실직 전에는 악기를 연주해 본 적이 없지만, 결국 실직한 후에야 악기를 다룰 줄 알게 되었다는데, 어딘가 역설적이게 느껴지는 일화였다. 이후 같은 곳에서 일하던 '준영'도 어떤 사연으로 일은 잠시 쉬게 되는데, 준영의 자리도 곧바로 누군가가 채운다.


이 세 가지 부재는 서로 상이해 보이지만, 부재는 곧 무언가로 '대체'된다. 직장에서도 해고자의 자리는 다른 근로자 혹은 기계로 메꿔지며, 가정에서도 가장의 자리를 다른 일원이 채운다. 재복은 일자리를 잃고 지금까지 자리를 비웠던 곳으로 향한다. 가정에서 아버지의 역할을 하고, 새로운 직장에서 일하며 돈을 번다. 그러면서 그는 다시 한번 노동이 주는 일상생활의 기쁨을 느낀다. 이제 그가 만들어내는 부재는 없어 보이지만, 그가 몸담고 있던 농성 텐트에는 여전히 그의 자리가 비어있다.


출처: 네이버 영화 '휴가(A leave)'




따뜻한 밥
Warm-hearted meal


재복이 휴가를 보내는 장소는 바뀌지만, 그가 머무른 곳에는 따뜻한 밥이 모락모락 김을 낸다. 요리를 하기엔 부족한 여력에서도 그는 음식을 만들어내기도 하며, 요리에 시간을 들이는 것을 불필요하다고 여기는 인물에게 정성스러운 밥상을 차려준다.


시위 텐트에서 요리하는 장면은 딱 한 번 등장한다. 그럼에도 그가 부엌의 역할을 해왔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심지어 탐탁지 않은 판결을 받게 된 날에도 그는 자신의 일을 묵묵히 수행한다. 셀 수 없는 시간 동안 밥은 인간의 원동력이었으며, 공동체의 인원들을 하나로 묶어줬다. 영화 '모가디슈(2021)'에서 남한 대사관 가족과 북한 대사관 가족이 모여 식사하는 장면에서도 밥의 역할을 잘 확인할 수 있다. 재복은 노동조합의 대표자가 되거나 첨탑에 올라앉아 목소리를 높이지는 않지만, 조합원이 그 일을 할 수 있도록 지지해 주는 인물로 그려진다.


하지만 그가 맛있게 만든 식사가 늘 상대방을 따뜻하게 데워주는 것은 아니었다. 장시간 자리를 비웠던 아버지의 자리로 돌아갔지만, 그의 자녀들은 재복이 만든 음식을 그리워했던 마음을 덥석 내보이지 않는다. 그가 집을 나설 때, 둘째는 겨우 초등학생이었고, 어머니와 아버지의 자리를 첫째가 도맡았다. 그러나 여전히 부엌을 따뜻하게 데우는 사람은 없었다. 딸들에게 식사는 단지 배를 채우면 되는 것이었다. 그들은 집에서 만든 음식보다 컵라면이 더 익숙하다.


재복은 임시 직장에서 그보다 앞서 일을 하고 있는 준영을 만난다. 준영은 점심시간을 정확히 지키지만, 그가 그 시간에 가는 곳은 편의점이다. 준영이 점포 외부에서 식사하는 것을 본 재복은, 그의 몫을 더 챙겨서 출근하기 시작한다. 재복은 같이 식사를 하자고 준영에게 제안하고, 그들은 머리를 맞대고 함께 밥을 먹는다. 늘 이어폰을 끼고 작업하던 준영은 재복과 식사하며 자연스럽게 귀를 열고 재복과 대화하기 시작한다.


그가 가장 자신 있어 하는 '소시지 볶음'처럼 그가 준비하는 식사는 일관적이다. 밥은 밥일 뿐 그 음식들이 전달하려는 화려한 메시지도 없다. 하지만 그 식사 자리에서 대화가 시작된다. 판결에 대한 실망감과 분노는 식사를 할 때 비로소 표출되며, 아이들과의 식사도 마찬가지다. 입으로 그의 음식이 들어가면, 미루던 대화들이 그 입을 통해 나온다. 그는 영화의 마지막에서도 식사를 준비한다. 과연 그의 음식은 누구와의 식사가 될까?


출처: 네이버 영화 '휴가(A leave)'




편측 제로섬게임
The one-sided zero-sum game


소송을 제기할 때, '법'이란 선택지처럼 보일 때가 있다. 외출할 때 상의, 하의 그리고 신발까지 고르는 것처럼, 자신을 지지해 줄 법 조항을 살펴본다. 재복은 이런 법이 자신의 편에 설 것이라고 믿고 있고, 그의 주변 사람들 곁에도 그들을 지켜줄 법이 있다는 것을 알리는 인물이다. 하지만 영화의 시작부터 실제 법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어쩌면 재복이 법을 선택하는 게 아니라, 법이 그를 가리켜야 하는 걸지도 모른다.


재복은 근무를 하다 다친 직원을 제도적으로 돕고 싶어 한다. 업무를 하던 중 상해를 입으면, 치료비를 지원받을 수 있고 회복할 동안 유급휴가도 쓸 수 있다고 그를 설득한다. 하지만 그 직원은 자신의 실수 때문에 일어난 사고였다고 생각하며, 재복의 제안을 부담스러워한다. 오히려 자신이 해고될까 봐 걱정하기도 한다. 이 직원이 용기를 내서 회사에 산재처리를 말해보지만, 회사의 입장에선 그를 괘씸하게 생각한다. 여기까지만 보면, 당연히 직원은 약자가 되고 회사는 악덕기업이 되어버린다. 하지만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이 상황만 보면, 회사에게 '법'과 '제도'는 피하고 싶은 선택지다. 회사의 입장에선, 산재처리는 단순히 근로자의 안전과 금전적인 도움이 되는 무해한 것이 아니다. 직장 내에서 사고가 일어나면, 이는 기업의 평가에 반영된다. 즉, 근로자와 기업의 제로섬게임(zero-sum game)이 된다.


그러나 우리가 알고 있는 제로섬게임과는 다소 차이가 보인다. 누군가는 이득을 봐야 하는데, 근로자와 기업 양측 다 손해에 대한 회복만 지원받을 뿐 그 이상으로 얻는 것은 없다는 것이다. 먼저, 근로자의 부상은 본인과 기업 모두에게 불이익을 가져다준다. 여기서 근로자가 산재처리를 한다면, 근로자의 손해는 0에 가까워지는 양상을 보이지만, 기업 평가는 더 음(-)의 방향으로 추락한다. 이들의 게임은 둘 중 한쪽만 0으로 향하는, 그리고 나머지는 더 손해를 보게 되는 편측의 제로섬게임이다. 물론 이는 영화상에서의 상황만 고려한 관점이다. 근로자의 안전은 당연히 보장되어야 하는 근로자의 권리이다. 근로자가 산재처리를 자연스럽게 신청할 수 있는 업무환경을 조성하는 것 그리고 기업의 평가요소가 조금 더 첨예해져야 하는 것은 우리가 앞으로도 논의해야 할 과제다. 하지만 그런 업무환경이 근무태만 혹은 안전불감증을 야기하지 않아야 하며, 첨예해진 평가항목이 곧 복잡한 처리 과정으로 이어져서는 안 되는 것을 고려해야 하기에 결코 단순한 과제가 아니다.


출처: 네이버 영화 '휴가(A leave)'





출처: 다음 영화 '휴가(A leave)'














2021년 10월 23일 인디스페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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