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가디슈(Escape from Mogadishu, 2021)
2021년 8월 3일 화요일, CGV 용산아이파크몰에서 '모가디슈'를 관람했다. 이번에도 역시 영화를 먼저 관람한 후에 예고편을 제대로 봤는데, 예고편이 굉장히 훌륭하게 절제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고편에서 볼 수 있었던 것은 무엇이고, 그러하지 못한 것은 무엇일지 생각해 보며 관람해보길 권한다.
※영화를 보지 않은 분들에게는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주의 부탁드립니다.
소말리아에 파견되어 있는 한신성 대사와 강대진 참사관은 UN에 가입하려는 한국을 대표해서 그곳의 고위층을 상대로 로비에 나선다. 단 3주만 더 버티면 조국으로 돌아갈 수 있는 상황에서, 소말리아의 반군 USC의 아이디드는 소말리아의 독재 정권을 타도하려 내전을 일으킨다. 수도, 전기 그리고 통신이 끊긴 한국 대사관은 완전히 고립된다. 구조될 거란 기대도 할 수 없는 전란 속에서 한국 대사관 직원들의 임무가 생존으로 바뀐다.
총을 곁에 둔 기도
Salāt next guns
영화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평화'를 갈구한다. 하지만 이것은 모두 같은 의미의 평화가 아니다.
먼저, 한국은 '평화'를 인정받고자 한다. 88년 서울 올림픽으로 평화의 씨앗을 확인했기에, UN에 가입해서 싹을 틔우고 싶었을 것이다. 사실 이런 진부한 이유보다는, 건재한 나라임을 인정받아 선진국의 대열에 합류하고 싶었을 이유가 더 현실성 있을 것이다. UN 가입을 위해서 아프리카 대륙의 투표권이 필요했다. 그래서 한신성 대사는 소말리아의 대통령을 비롯한 고위층을 만나고 다니며 로비 활동을 펼친다.
반면, 소말리아 반군은 '평화'를 쟁취하려고 한다. 쿠데타를 일으켜서 정권을 잡은 바레 장군이 민중을 억압하자, 반군이 독재 타진을 요구한 것이다. 학교 관계자들이 잡혀가자, 반군은 이들의 석방을 외치며 시위를 한다. 시위는 점차 무력으로 번져가고, 어린아이들도 총을 들고 거리로 나설 정도로 참혹해진다. 지금까지 외국에서 소말리아로 보낸 지원금이, 결국에는 독재 정권이 민중들을 핍박하는 데에 쓰였다고 반군은 생각했다. 그래서 그들은 대사관들에게 의견 표명을 강요하고, 공격도 감행한다.
마지막으로 소말리아의 바레 정권은 '평화'를 독식하려 한다. 바레 장군은 이전 정권을 쿠데타로 내쫓았지만, 평화를 소유하려는 욕심은 그대로 이어간 것이다. 또한 통치자의 측근들도 부당한 방법으로 뇌물을 착복한다. 부패는 보통 권력의 위에서부터 확산되기 때문이다. 내전이 시작되자 정부군은, 반군과 민간인을 무차별하게 학살한다.
한국 대사관 안으로도 총알이 창문을 깨고 날아들어온다. 아무런 무기가 없던 대사와 직원들은 가구들을 동원해서 창문을 막으며 겨우 공격을 피한다. 하지만 반군들이 점점 가까워지자, 한국 대사관은 소말리아 언어로 번역된 평화의 메세지를 스피커를 통해 재생시킨다.
이 잔학무도한 내전에서 잠시나마 모두에게 같은 평화가 찾아온다. 이들은 종교의 교리에 따라서 기도 시간(Salāt)에는 공격을 멈춘다. 하루에 5번 메카를 향해 절을 하는 이 시간에는 몸을 깨끗이 정돈해야 한다. 즉, 무기를 내려놓고 엄숙하게 임한다. 이 종교의 5가지 의무 중 하나인 만큼, 그들은 이 시간만은 신을 찬미하는 데에 집중한다. 짧은 기도 시간이 지나가고, 경건했던 그들의 손은 다시 무기를 쥔다. 그리고 이들 사이에 고립된 대사관 사람들이 바라던 평화의 의미가 바뀐다. 이제는 그저 생존만을 뜻한다.
보이는 것과 보지 말아야 하는 것
What they could see and couldn't
영화 속 인물들은 어떠할 도리 없이 계속해서 무언가는 보게 된다. '보다'라는 단어는 주도적인 단어다. 반면 '보인다'라는 말은 '보다'라는 말과 달리 '어쩔 수 없이 보게 되다'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그렇다면 '보지 않다'라는 말은 어떤 의미일까?
UN에 가입하기 위해서 한국 대사관은 고군분투하지만, 그때마다 북한 대사관이 나타나 해방을 놓는다. 북한이 소말리아와 수교를 맺은 시기가 한국보다 20년 정도 앞서기에, 텃세를 부리듯 한 대사를 곤경에 빠지게 한다. 어느 날 이들은 서울 올림픽 비디오를 한 대사에게서 빼앗아왔다. 그들은 비디오 속 한국을 보게 되지만, 불안정한 소말리아의 전기 때문에 깜빡이는 전등처럼, 이내 보는 행위를 관둔다.
특히 어린아이들의 시점에서 이런 모습이 특별하게 나타난다. 내전이 격화되고, 거처를 반군들에게 빼앗긴 림 대사 일행은 최후의 방법으로 한국 대사관을 찾아간다. 아이들은 한국 대사관에 있는 호돌이로 상징되는 한국의 물건들을 바라보지만, 이내 어른들은 서둘러서 아이들의 시야를 가린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도 마찬가지로, 시선에 대한 장면이 나온다. 케냐의 공항에 도착한 적십자 비행기에서 내린 그들은 의도적으로 어느 시선도 주고받지 않는다. 남한과 북한이 서로를 바라보는 것은, '보였기 때문이다'라는 이유가 감싸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역시 아이들의 눈은 어른들에 의해 가려진다. 본 것을 잊는 것보다, 본 적이 없는 쪽이 훨씬 안전하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보지 않는' 행위는 주도적이면서도 강요되는 것이다.
결자해지의 이면
The other side of solution
결과적으로 인물들이 무사히 모가디슈를 빠져나갈 수 있게 된 것은 이탈리아 덕이었다. 한국, 그리고 북한의 정부가 손놓고 있을 때, 그들은 이들이 안전하게 내전을 피할 수 있게 돕는다. 사실 그들의 도움은 이상할 정도로 너무나도 강력했다.
한 대사가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서 방문했던 이탈리아 대사관의 통신선은 여전히 연결되어 있었다. 또한 적십자의 구조기가 그들을 태워갈 수 있도록 힘을 써준다. 책과 가구들로 무장한 자동차들을 타고 겨우 교전지역을 빠져나온 일행들은, 자국 대사관을 지키는 이탈리아 군대도 마주하고 안도한다. 심지어 그들이 공항으로 이동할 수 있도록, 일정 시간 동안 정부군과 반군에게 하여금 내전을 멈추도록 한다. 기도 시간에만 멈추었던 그들의 내전을 중지시킨 것이다. 그 방식이 설득이었다면 엄청난 능력이고, 명령이었다면 대단한 권력이다.
영화에서도 나오는 대로, 이탈리아는 이전에 소말리아를 통치했다. 역사적으로는 이탈리아뿐 아니라 영국도 소말리아를 점령했었다. 그리고 유엔에 의해서 이탈리아가 10년 동안 신탁통치를 한 후 1960년에 독립한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여전히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이는 영화 '호텔 르완다(Hotel Rwanda)'의 벨기에와 비슷한 영향력이다.
이 영화에서 끈을 묶은 자는 사실 어느 한 사람 혹은 나라라고 지목하긴 어렵다. 제국주의에 빠져버린 이탈리아일 수도 있고, 독재 정권의 수장 바레 장군일 수도 있다. 하지만 구조기를 타고 케냐로 도피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은 틀림없이 이탈리아였다. 영화에서만 국한적으로 바라본다면, 우리의 주인공들이 내전에서 탈출해냈으니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접근해본다면, 결자해지의 시발점과 해결점은 더더욱 엉킨 실타래 모양이 된다.
매듭을 묶은 자가 그것을 풀어야 한다는 '결자해지'의 뜻은 완전한 해결을 의미한다. 제국주의가 시작한 땅따먹기에 희생된 민간인들이 다시 그 제국주의의 도움으로 빠져나온다. 영화상에서는 그럴싸한 결자해지의 상황처럼 보인다. 하지만 영화에서 살짝만 나와서 생각해 본다면 알 수 있다. 그 매듭은 시작과 끝을 집어삼킨 채 여전히 마구 엉켜있다.
한국과 북한의 관계도 같은 관점에서 볼 수 있다. 소말리아에서 고립된 두 대사관의 관계는 과거에 묶인 매듭을 잠시 풀었다가 다시 묶어놓은 형태처럼 생겼다. 내전을 빠져나왔지만, 그들 역시 종전을 경험하지 못한 휴전 중인 국가일 뿐이었다. 그들은 끼고 싶지 않은 타국의 전쟁에서 겨우 도망쳐 나왔지만, 정작 자신들이 포함된 전쟁의 상대는 제대로 바라볼 수조차 없다.
2021년 08월 03일 CGV 용산아이파크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