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네트(ANNETTE, 2021)
2021년 10월 31일 일요일, CGV 판교에서 '아네트' 언택트톡(이동진 평론가 진행, 레오스 카락스 감독 참석)을 관람했다. 그리고 지난 2021년 11월 23일 화요일, 롯데시네마 월드타워에서 '아네트' 앵콜 GV에도 참석했다. 고작 한 달도 되지 않은 짧은 기간에도 시간은 흐르고 있었던 것일까 첫 번째 관람과 두 번째의 감흥이 새롭게 느껴지도록 하는 영화였다.
※영화를 보지 않은 분들에게는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주의 부탁드립니다.
※이 글은 언택트톡과 GV에서 언급된 내용이 인용되어 있습니다.
스탠딩 코미디언 '헨리 맥헨리(Henry McHenry)'와 오페라 가수 '안 데프라스누(Ann Defrasnoux)'는 서로 강력한 이끌림으로 연인이 되지만, 그만큼 서로를 밀어낸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그들 사이에서 '아네트(Annette)'가 태어난다.
준비됐을까?
So may we start?
그저 공연의 시작을 알리는 평범한 문장이었다. 이제는 배려를 넘어서 규칙처럼 자리 잡은 주의사항들이 이어서 들린다. 두 번째로 이 영화를 다시 관람하게 되었을 때, 이 말은 사뭇 다르게 들렸다. 정말로 준비가 되었는지에 대한 망설임이 느껴졌다. 곧 오페라와 코미디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안과 헨리의 공연 전 모습을 보여주며, 그들이 어떤 불안감을 느끼는지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관객이 어리둥절해 하는 순간, 영화는 시작한다. 이는 안과 헨리 그리고 더 나아가 레오스 카락스 감독의 입장도 마찬가지다. 긴장을 풀 수 없고 아쉬움만 가득한 채, 그렇게 아무도 제대로 된 준비를 마치지 못한 채 무대가 열린다.
안은 오페라의 무대에서 끊임없이 자신의 배역을 명명한다. 그녀는 '사랑'이었다. 그녀는 오페라만큼이나 정형적인 사랑이었다. 이는 선로를 따라 달리는 기차처럼, 역에는 반드시 멈췄다 출발해야 했으며, 이미 정해진 종착역으로 전진해야 한다. 이런 그녀는 늘 정해진 노래를 부르고 결말로 나아가야 했다. 그리고 그녀의 마지막 목적지는 언제나 죽음이었다. 그리고 관객들은 그녀의 죽음에 박수를 보내고 막이 내린다. 커튼콜에 응답하며 객석에 진심 어린 인사를 보내며, 그녀는 관객들을 '구했다'라고 말한다.
안은 어느 순간부터 애인의 어두운 모습이 무서웠고, 그런 그의 면모가 그녀의 사랑을 흔들었다. 처음에는 그저 숨겨두었던 담배를 다시 꺼내서 필 정도의 불안감으로 시작한다. 이렇게 내재된 불안감은 그녀의 오페라 무대에서도 잘 드러난다. 그녀는 검은 숲으로 표현된 헨리의 어두운 면으로 걸어들어간다. 그녀는 그 속에 무엇이 숨겨져 있는지 알지 못하는데, 설사 그것이 순한 사슴의 모양이라고 해도 달빛, 별빛 하나 찾을 수 없는 그곳에서 두려움에 몸을 떤다.
헨리는 그녀와 반대로 자유로운 공연을 한다. 그에게 정해진 순서는 무대 입장과 퇴장밖에 없을 정도로, 나머지 공연은 그가 마음대로 풀어간다. 그의 공연은 안의 오페라와 비교해 보았을 때 훨씬 적극적이기도 하다. 그는 관객들의 다양한 반응을 이끌어내고, 헨리 또한 그것에 다시 반응한다. 이는 관객과의 소통처럼 보이기도 하고, 헨리가 내면의 자아와 대화하는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그의 공연에는 다소 자학적인 언행이 담겨 있는데, 헨리의 관객들은 이런 광경에 역시나 웃는다. 이런 웃음은 어느 정도 조소처럼 보인다. 그 예로 마이크 줄로 자신의 목을 조르는 등 굉장히 가학적으로 행동하는데, 이 마이크가 공연 내내 그가 들고 다니는 물건인 만큼, 그의 행동은 스스로 목을 매는 행위를 연상시킨다. 또한 헨리는 무대를 극단적으로 마치는데, 이에 비명을 지르는 관중 사이에서 폭소하는 관객이 화면에 집중된다. 결국 그는 웃음을 위해서라면, 자신을 향한 공격을 서슴지 않는다. 그리고 그는 이런 그의 공연의 관객들을 '죽였다'라고 말한다.
스펙트럼
The spectrum
간단하게 말하자면 안은 붉은색이고, 헨리는 초록색이다. 그러나 붉은색과 초록색이라는 것은 개별적으로 접근해야만 읽히는 단색이다. 하지만 영화 속의 인물들은 단독으로 존재하는가? 영화뿐 아니라 현실에서도 그런 존재는 없다. 영화처럼 서사를 갖는 예술은 색을 이용해서 인물을 묘사하길 즐긴다. 하지만 그것은 독립된 색이 아닌, 주변의 빛들과 함께 상대적으로 바라봐야 한다. 인물의 색은 스펙트럼처럼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는 환경 속에서 읽혀야 한다.
그럼 이제 길게 말해보자. 안은 수많은 붉은 계열의 사물과 함께 등장한다. 사물뿐 아니라, 그녀의 붉은 머릿결 또한 인물을 붉게 물들인다. 그녀의 내면도 붉은색으로 그려지는데, 그녀가 심적으로 힘들어할 때 무의식적인 꿈에서 위험하게 타오르는 산불을 마주하기도 한다. 또한 그녀가 죽음을 연기할 때 짙게 퍼져나가는 피 또한 선홍색이다. 적색은 그 자체만으로 정열과 사랑을 상징하지만, 안은 특히 죽음을 마주하는 비극적인 사랑,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고결한 사랑을 의미한다.
한편, 스탠딩 코미디쇼를 하는 헨리의 녹색 가운을 쉽게 떠올릴 수 있을 정도로, 그는 초록색의 잔상을 남긴다. 그의 공연장에서 사용하는 조명 또한 맑은 초록빛이며, 그가 자학적인 개그를 하며 불태운 지폐 또한 초록 계열이다. 그의 공연은 '신의 유인원'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는데, 이는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신이 만들어낸 유인원이 될 수도 있고, 신이 소유하고 다루는 유인원일 수도 있다. 헨리는 자신의 매력이나 공연에 푹 빠져있는 인물로 묘사되는데, 한편으로는 자기혐오에 빠져버린 사람이기도 하다. 결국 헨리는 신의 능력을 부여받았다고 여기지만, 그 능력이 얼마나 보잘것없고, 얼마나 쉽게 관객들로부터 야유를 듣게 되는지 알게 된다.
단, '아네트'가 단순히 두 가지의 색이 섞이지 못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반대로, 두 색이 어떤 스펙트럼을 형성하는지가 중요하다. 필자에게는 더 나아가, 안과 헨리가 한 인물로 보이기도 한다. 안은 대중에게 보이고 싶은 고결한 자아인 반면, 헨리는 저급하지만 솔직함으로 관객을 사로잡고 싶은 자아다. 헨리는 안과 사랑스러운 키스를 나누지만, 취재진에게 웃어주는 안과 달리, 헨리는 헬멧을 쓰는 등 그의 모습을 흔쾌히 내보이지 않는다. 이처럼 이 두 자아가 서로에게 흠뻑 매료되기도, 분열되기도 하는데, 그 사이에서 질투심이 생기기도 한다. 이 인물들을 상징하던 색들이 서로에게 나타나는 장면도 등장한다.
웃음
Laugh
헨리는 애인인 안을 포함해서 많은 등장인물들에게 웃음을 준다. 직업적으로 그에게 웃음은 중요한 목적이지만, 안이 출산하는 순간까지도 그녀를 웃게 할 정도로 웃음에 집착한다. 그리고 그것을 얻기 위한 그의 과정에는 변화가 있다.
영화의 가장 초반에 등장하는 공연에서, 그는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음으로써 관객의 웃음을 자아낸다. 이들은 헨리의 일거수일투족에 반응하며, 그에게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그들은 그가 코미디언이 된 이유를 묻는다. 이에 대해 그는 적개심을 없애기 위해서 무대에 섰다고 말한다. 웃음을 통해서 진실을 전달하면, 그것은 적개심을 불러일으키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 안에 있는 마음의 진실에 대해 말한다. 그가 들려주는 자신과 안의 사랑 이야기에, 사람들은 감동적인 소리를 내며 호응한다. 그의 공연이 끝나가고, 관객들은 그의 퇴장에 너무나 아쉬워한다.
그는 안과의 관계에서도 웃음을 중요하게 여긴다. 둘이 사랑을 나눈 직후에도, 안이 웃어주길 바란다. 헨리는 무대에서와 다르게, 조금 원초적인 행동으로 웃음을 야기한다. 그는 안의 맨발을 붙잡고 간지럽히고, 그녀는 이런 그의 행동에 무방비 상태로 웃게 된다. 사람의 신체 부위 중에서 발이란, 서있을 때의 위치로 보면 바닥을 상징한다. 특히 발바닥은 신발이나 양말에 가려져 있기에 약점을 의미하기도 한다. 무대 위의 헨리는 자학적이긴 하지만 본인의 모습과 행동을 통해 사람들의 웃음을 얻었다. 하지만 안의 웃음은 상대의 약점을 이용해서 직접적으로 끌어낸다.
그가 다시 무대로 복귀하자, 공연의 반응이 미적지근을 넘어서 힐난을 받기 시작한다. 이는 그가 안을 웃기던 방법처럼, 타인의 치부를 직접 드러내면서 웃기려고 했기 때문이다. 특히 그는 아내의 발을 간지럽혀서 살해했고, 자신도 따라서 같은 방법으로 자살을 시도했지만 실패했다는 상황극을 만들어낸다. 이전의 그의 공연은 본인의 일화들을 이용해서 관객을 웃게 만들었지만, 이번엔 다른 사람의 상처나 그림자를 들춰냈다. 그리고 아내는 웃겨 죽였지만, 본인은 죽지 못했다는 것은 헨리가 웃음을 어디서 찾는가를 말해준다. 그는 본인을 깎아내리기보다, 관객에게 간동을 주는 아내를 무너뜨리는 것이 유희라고 여긴다.
이 무대를 마친 그는 더 이상 웃음에 집착하지 않게 된다. 웃음에 관심이 없었던 것처럼 행동한다. 그는 웃음은 자신처럼 혐오스러운 것이며, 반대로 안의 감동적인 노래가 적개심 없이 진실을 전달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노래를 빌어서 뒤늦은 진실을 안에게 전달하려고 한다. 그리고 자신이 신의 원숭이였던 과거와 다르게, 신의 자리에서 원숭이를 찾아내려고 한다.
2021년 10월 31일 토요일 CGV 판교
2021년 11월 23일 롯데시네마 월드타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