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살자들(Assassins, 2020)
2021년 8월 6일 금요일, CGV 용산아이파크몰에서 열린 '암살자들' 시사회에 다녀왔다. 포스터만 봐도 어떤 인물에 대한 이야기인지, 그리고 그 장르가 다큐멘터리라는 것도 알고 있는 상태에서 관람했다.
※영화를 보지 않은 분들에게는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주의 부탁드립니다.
※해당 시사회는 키노라이츠에 응모 및 당첨되어 참석할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2017년 2월 13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김정남이 살해당한다. 용의자로 인도네시아에서 온 시타와 베트남 출신인 도안이 잡히고, 그들의 증거는 확실하다. 하지만 이들은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며 누군가의 '지시'였다고 말한다. 배후자로 지목된 사람들은 이미 말레이시아를 빠져나갔거나 본국으로 무사히 돌아간다. 자신들이 누구를 죽였는지도 모르는 두 명의 암살자들. 시티와 도안은 자신들을 둘러싼 사건과 의혹들을 풀어낼 수 있을까?
카인과 아벨
Cain and Abel
시티와 도안의 변호측은 이 살인사건의 배후 세력으로 북한을 지목한다. 단순히 김정남이 김정은보다 먼저 태어난 유력한 후계자였기 때문도 아니다. 용의자들이 말레이시아에 있는 북한 대사관 사람들과 접촉하는 폐쇠회로(CCTV) 영상과 그들이 주고 받은 연락들이 이를 뒷받침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배후세력은 법정에 소환되지 않았을까?
증거로 제출된 CCTV 영상은 변호측아닌 타국 방송사가 먼저 입수했다. 이 방송사의 발 빠른 취재와 별도로, 변호측은 거듭된 요청에도 해당 영상을 받지 못했다고 말한다. 뒤늦게서야 어떤 영상을 받긴했지만, 사건 날짜와 관련없는 것이었다. 제대로 된 영상에는 진술과 정확하게 맞아떨어지는 장면이 찍혀있지만, 법정에서는 유효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이 뿐만 아니라, 피고측은 말레이시아 당국의 협조를 여러면에서 받지 못한 것으로 그려진다.
변호측에서는 이런 당국의 태도에 이유가 있다고 한다. 피고측이 정치적인 살인이라고 주장하지만, 법정이 이를 전면부인한다는 것이다. 범죄가 성립되려면 이에 맞는 동기가 있어야 하지만, 시티와 도안에게는 동기가 부재하다. 심지어 이 용의자들은 김정남이 어떤 인물인지 사건이 종료될 때까지 알지 못했다. 반면 용의자들의 배후자들에게는 정치적인 동기가 뚜렷하다.
이는 인류 최초의 살인이라고 알려진 '카인과 아벨'과 흡사하다고 말한다. 카인과 아벨이 형제 사이에서 일어난 살인극에서 더 나아간 이유가 존재한다. 권력을 위해 살인을 저질렀다는 것뿐 아니라, 살인을 자행하고도 살아남은 자가 더 강한 자라고 못박는 것이다. 결국엔 누가 제거되었고, 그를 제거한 까닭은 무엇일까? 그로써 증명될 강자는 시티와 도안인가 아니면 숨겨진 인물들인가?
웃긴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Funny or not, it doesn’t matter
사건 당일 피살된 남성은 '김철'의 이름으로 된 여권을 갖고 있었다. 이 다큐멘터리에 따르면 이것은 김정남이 사용하던 가짜 여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건의 피해자는 '김철'의 이름으로 재판이 열렸다.
변호측의 노력으로, 용의자들이 지목한 배후 세력도 재판에서 거론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들 역시 가명으로 언급되고, 출두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이 재판에서 모두가 가명이었던 것은 아니다. 용의자들은 실명 그대로 재판을 받는다. 신상이 거짓인 사람들은 법정에서 찾아볼 수 없으며, 그들의 혐의 또한 다루지 않는다. 반면 용의자로 지명된 시티와 도안은 공개된 그들의 이름과 얼굴처럼, 교수형이 선고될 것이 분명했다.
시티와 도안은 자신들에게 '어떤 행동'을 청부한 사람들의 정보 역시 제대로 알지 못했다. 미스터 장, 미스터 Y 등 실명보단 별칭으로 불렀다. 용의자들은 본인들은 단지 어떤 영상 속의 주인공이었다고 말한다. 상대를 당혹스럽게 만들고, 그 반응이 웃음을 자아내는 영상을 찍었다는 게 그들의 공통된 진술이다. 많은 시도를 통해서 미리 연습을 해두었고, 2017년 2월 13일 공항에서 했던 행동도 실전의 일부라고 생각했다고 진술한다. 그들은 이런 행동이 별로 웃기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배후자에게 질문을 던졌지만, 돌아오는 답은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이런 태도는 재판 내내 일관적이다. 용의자들이 배후세력이 있다고 증언했고, 결정적인 증거들도 제출된다. 결국 재판에 소환되긴 하지만, 참석하지도 실명을 공개할 필요도 없었다. 그리고 그 시신을 인도해달라고 요구한다. 그들이 시티와 도안에게 요구했던 영상은 웃음을 불러내든 말든 상관이 없다. 시티와 도안이 얼마나 정확한 증거를 들고 와도 신경쓰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재판에 회부되어도 어차피 익명인 존재가 될 것이기에 반응할 필요 없다. 영상이든 용의자든 어차피 다른 목적에 쓰인 도구일 뿐이기 때문이다. 이후 시티와 도안은 끝까지 수단으로써 '석방'된다.
암살자였던 사람들
Those who were called assassins
용의자들은 암살자였던 사람들이 되고, 이들이 지목한 배후 세력 또한 혐의를 받던 자들로 남게 된다. 시티와 도안이 교수형을 면하게 된 것이다. 이들은 어떻게 자신들의 무죄를 입증했을까?
이들은 처음부터 스스로 결백함을 주장했지만, 혐의를 벗는 데에는 여러 차례 실패한다. 유능한 변호인단이 나서서 증거를 확보하고, 정의가 이들을 보호할 수록 고군분투를 벌였다. 하지만 결국 이들이 감옥에서 풀려난 시점은, 그들의 나라가 움직일 때였다. 대통령끼리 서로 만나 재판에 대해 직접적으로 대화를 하기도 했으며, 관료들이 법정에 직접 나타났다. 자국민을 보호하는 것이 국가의 책무라고 생각한다면, 정의가 되살아난 재판이었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대가가 있었다면, 그것은 여전히 의무인가 거래인가?
시기마다 나라마다 그리고 언어와 문화마다 다르게 정의될 사건이었다. 어느 사람은 이를 용의자의 석방이 아닌 인질 교환으로 본다. 또 어떤 사람은 정치적 사건에 방어권이 침해된 사건으로 생각한다. 또는 김정남이 저지른 국제적 스파이 행위에 따른 처벌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사건의 시작부터 종결까지 불변한 것이 있다. 김철의 여권을 사용한 남자가 공항에서 피살당했다는 것이다. 용의자와 배후 세력들은 '혐의를 받던 것'인 과거로 넘어갔다. 반면 피해자는 사건의 시작부터 앞으로도 쭉 죽임을 당한 상태일 것이다.
2021년 08월 06일 금요일 CGV 용산아이파크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