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트 클럽(Fight Club, 1999)
2021년 11월 16일 화요일, chuls203에서 '파이트 클럽'을 관람했다. 앞으로 많은 영화를 봐야 한다는 중압감에서 필자를 꺼내 준 영화다. 이런 영화들이 쌓여있다니, 그것은 중압감이 아닌 경외감일지도 모른다.
※영화를 보지 않은 분들에게는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주의 부탁드립니다.
자동차 회사에서 리콜 심사관으로 일하고 있는 '잭'은 반 년 동안 지속된 불면증으로 괴로워한다. 그는 본인과는 상관없는 질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의 모임에 나가서 위로받는다. 하지만 잭처럼 연고 없이 모임에 나오는 '말라'를 만나게 된 뒤로 그의 불면증이 다시 발병한다. 한편, 우연히 '타일러 더든'을 만난 잭은 몸싸움으로 뜨거운 생기를 느끼게 된다. 그들은 함께 '파이트 클럽'이라는 비밀 조직을 만들게 되고, 그것의 인기는 날이 갈수록 커진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이 조직 안의 희열과 분노가 사회를 향해서 터져나가기 시작한다.
폭탄
The Bomb
영화의 시작은 잭의 아주 작은 세포였다. 화면은 그의 아주 작은 부분부터 보여주다가, 총구를 물고 있는 그의 입 밖으로 나온다. 이후 화면은 이처럼 깊숙하고 작은 부분부터 시작해서 외부로 빠져나와 전체를 보여주는 식으로 진행된다. 결국 잭의 내면에 있는 것들이 바깥으로 쏟아져 나오듯, 내부의 에너지가 터져나가는 것들이 반복해서 영화에 등장한다.
잭은 자동차 리콜 심사관으로 일하는데, 그곳에서 그는 사고의 원인이 제조사의 결함이었는지를 판단한다. 즉, 수많은 부품이 들어가는 자동차의 작은 부분이, 자동차 전체뿐 아니라 탑승자의 삶과 목숨을 앗아간다. 하지만 이런 업무에서 피해자의 안전과 생명은 그다지 중시되진 못한다. 그는 간단한 공식에 값을 넣어서, 대규모 리콜의 손해액과 피해자(사망자)의 피해 보상액을 비교해서 리콜 여부를 결정할 뿐이다.
비행기에서 잭의 옆자리에 앉았던 타일러는 비누 전문가다. 그는 최적의 재료와 비율로 모두를 만족시키는 비누를 만드는데, 이런 그의 능력은 다른 것을 제작하는 데에도 탁월하게 발휘한다. 그는 말하기 어려운 이름의 화합물을 배합해서 혼합물을 제조한다. 우리는 이를 쉽게 '폭탄'이라고 부른다. 타일러의 폭탄은 가장 먼저 잭의 집을 터뜨려버린다. 그곳은 잭이 꾸준히 사 모으던 브랜드의 가구들로 가득 찬 곳이었다. 어느 날 잭은 카탈로그를 심사숙고해서 고른 가구들이 집 내부가 아닌, 빌딩 근처에 찢기고 불에 탄 채 흩어져있는 것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 가구들을 소비사회의 부산물이라고 여기게 된다.
어느 순간 잭은 타일러와 함께 만든 파이트 클럽이 사회를 위협하는 폭탄이라는 것을 인지하기 시작한다. 그들은 더 이상 클럽 내부에서 서로를 때리며 희열을 느끼지 않는다. 타일러 더든이라는 자가 만든 규율을 지키면서, 그들의 분노를 클럽 밖의 사회를 향해 터뜨리기 시작한 것이다. 파이트 클럽의 회원들이 품게 된 분노는 더 이상 그들의 것이 아닌, 타일러가 갖고 있던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들은 실명을 버린 채 스스로를 우주로 쏘아진 원숭이라고 생각하고, 테러를 자행하다 죽은 회원을 사람이 아닌 물증이라고 복창한다. 스스로를 사회에서 의미 없는 쓰레기라고 일컬으며, 결함 있는 부품처럼 치부한다.
잭은 이런 테러 활동에 제동을 걸려고 하지만, 그 방법은커녕 회원 모두가 믿고 따르는 타일러가 어디로 사라진지도 알지 못한다. 미국 전역에 퍼진 파이트 클럽의 지부에는 타일러의 흔적만 있을 뿐, 그 어디에서도 타일러를 만나지 못한다. 잭이 타일러의 행방을 회원들에게 물을 때마다, 그들은 누설금지 규칙을 재창할 뿐 타일러의 행방을 알려주지 않는다. 그동안 파이트 클럽을 창립한 타일러와 자신이 주인공이라고 생각했던 잭은, 결국 이 클럽의 주인공은 타일러라고 생각한다.
파이트 클럽을 전전하던 잭은 본인도 폭탄이었다는 것을 인지하기 시작한다. 그의 내면 깊은 곳에 있던 폭력과 분노가 터져 나오면서 그는 살아있음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타일러와 말라 관계에서 보이는 성욕처럼 본능적인 것으로 그려지는데, 내부의 욕망이 외부로 분출되는 것이라는 유사점이 있기 때문이다. 위에서 다룬 내용을 보면, 폭탄은 늘 누군가에 의해서 만들어진다. 파이트 클럽 회원들의 분노는 타일러에 의해 촉발되었고, 잭의 아파트는 타일러가 만든 폭탄에 의해서 터져버렸다. 그리고 리콜이 고려되는 자동차 사고는 제조사의 과실로 일어난다. 결국 파이트 클럽의 회원들은 마치 생기 없는 소비사회의 결함 있는 부품으로 묘사된다.
그가 이러한 점을 알아차리기 시작한 것은, 건물을 폭파시키기 위해서 설치된 폭탄을 마주했을 때였다. 이는 타일러가 만든 것이었는데, 이를 해체하기 위해서 잭은 여러 선들로 둘러싸인 폭탄과 고군분투한다. 지금까지 내부에서 외부의 방향으로 움직이던 카메라의 움직임이, 이전과 반대의 방향으로 움직인다. 폭탄을 실은 차량에서 폭탄으로, 그리고 그 폭탄의 전체 모습에서 복잡한 도선을 따라서 폭탄 내부로 들어간다. 잭은 여태껏 터져 나오는 것들을 목격해왔다. 하지만 지금부터는 반대로, 외부에서 내부로 접근하기 시작한다. 폭탄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때로, 타일러가 파이트 클럽을 만들어내기 시작한 곳으로. 타일러는 잭이 폭탄을 멈추게 하는 것을 방해하지만, 잭은 그것을 잠잠하게 할 방법을 알고 있다고 확신한다.
호접몽
Tylor and me, or Jack and me
장자가 말한 '호접몽'은 익히들 알고 있을 것이다. 나비가 되어 날아다니는 꿈을 꾸다 깨보니, '나'라는 인간이 나비가 된 꿈을 꾸는 건지 혹은 '나'라는 나비가 인간이 된 꿈을 꾸는 건지 알 수 없었다는 것이다. 결국 나비와 인간은 '나'라는 것으로 상응된다. 이 영화를 보고 호접몽을 떠올린 것은 비단 필자뿐만은 아니라고 확신한다.
우리는 잭이라는 주인공의 목소리를 통해서 서사를 따라간다. 그는 영화의 초반부부터 현대사회가 야기하는 편리함 들은 무의미한 잉여라고 말한다. 그가 이렇게 말할 때, 화면은 쓰레기통 밑바닥부터 훑으며 바깥으로 나온다. 그 쓰레기통 안에는 수많은 포장지들이 담겨 있는데, 소비되는 것에는 언제나 쓸모없는 부산물이 나온다는 것을 개괄적으로 보여준다. 이는 굉장히 클로즈 업된 장면이며, 앞서 언급한 내부에서 외부로 향하는 카메라 무빙이 여기도 사용된다. 현대사회의 모든 것은 과잉으로 양산되며 그에 따라서 많은 것들은 사용되지 않은 채 버려지기도 하며 질병처럼 다른 것으로 변모하기도 한다는 것이, 시작적으로 매우 인상적으로 표현된다.
그는 자신에 대해서도 내레이션으로 설명하는데, 그는 불면증을 앓고 있다는 사실도 스스로의 입을 통해 나온다. 이렇게 자신을 제3자처럼 화면 밖에서 바라보는 것은, '나'라는 호칭을 사용하지만 1인칭과는 확연히 구별되는 화법이다. 본인과 거리를 둔다는 점에서 그러한데, 이런 방법으로 본인을 타인처럼 관찰하게 된다. 그럼으로써 본인도 여느 사람처럼 현대사회에 종속되어 있음을 함축한다.
그가 겪고 있는 불면증 또한 현대사회에 들어와서 만연하게 나타나는 질병이다. 물론 근대사회 이전에도 존재했을 병이지만, 잭이 불면증을 갖게 된 것은 그의 직업과 관련되어 있다. 그는 직업상 미국의 전역을 이동하며 자동차 사고를 조사해야 했다. 그러면서 생기는 시차에 적응해야 했는데, 이 과정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을 비행기나 호텔에서 만나는 일회용품처럼 여기게 된다. 단 한 번 사용하고, 혹은 그 한 번도 사용되지 않고 사라지는 것들에 둘러싸여, 자신도 그것들과 동일시하게 된다.
잭은 자신이 타고 있는 비행기가 폭파되는 꿈을 꾸기도 하는데, 그 꿈에서 깨어보면 그는 비행기 안에 탑승 중이다. 이렇게 어느 순간부터 꿈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해지기 시작한다. 추락하는 비행기에서 꾸는 꿈이 지금 현실인지, 현실에서 추락하는 꿈을 꾸는 것인지 그는 분간하기 어려워진다. 이후 그의 아파트가 누군가 설치한 폭탄으로 인해서 터지는 사건으로 인해 꿈속에 잠재되어 있던 것들이 표출된다. 그는 자신의 파괴적인 성향을 꿈에서 확인하고, 그것을 현실로 받아들인다.
잭은 자신에게 혼잣말을 하기도 하는데, 타일러는 자신이 만들어낸 허구의 인물이라고 되뇌는 행위도 그중 하나다. 영화의 화자가 잭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의 말을 믿기 쉽다. 자신의 내부의 폭력적인 면이 타일러 더든이라는 가상의 인물을 만들어내어 이중인격을 지니게 되었다는 추론은 신빙성이 있다. 하지만 호접몽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결국 잭과 타일러는 하나의 강에서 뻗어 나온 지류일 뿐이다. 잭이 타일러에게 설득되어 가는 영화일 수도, 가학적인 타일러가 잭이라는 인물을 내면에서 밀어내는 동시에 동화시키려 한다고 볼 수도 있다.
회귀
The great return
영화는 액자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잭의 입에 총구가 박혀있고, 그는 말라와 타일러의 이야기가 있는 과거로 간다. 그리고 그 이야기가 끝나는 지점이 잭이 총을 물고 있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이런 전체적인 구성 외에도, '파이트 클럽'은 시작점으로 회귀하는 서사를 갖고 있다.
영화는 고통으로 시작한다. 잭은 불면증 때문에 일상생활이 힘들어지고, 병원을 찾아가지만 그곳에선 불치병 정도는 심각하지 않다며 그의 고통을 무시한다. 그리고 약을 처방해 주는 대신에, 더 심각한 고통을 받고 있는 사람들과 자신을 비교해 보라는 권유를 받는다. 그래서 잭은 고환암 투병 환자들의 치유모임에 나간다. 그는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밥'이라는 사람의 넓은 품에 안겨 눈물을 흘린다. 그러자 그의 불면증은 마법처럼 싹 사라진다. 그는 고환암과는 더 연고가 없는 말라가 모임에 나타나자 분노를 느낀다. 그처럼 다른 사람의 고통으로 위안을 얻는 그녀를 보자, 자신의 모습이 뻔뻔하게 느껴졌다. 이제 그는 다시 잠에 들지 못한다. 이처럼 말라는 잭으로 하여금 스스로를 자각하도록 만드는 인물이다.
그는 치유모임을 떠나 파이트 클럽에서 그의 고통을 해소한다. 불면증을 '별것 아닌 가짜' 고통으로 선고받은 그는, 가짜 위안으로는 치유받지 못한다고 여기게 된다. 그는 쏟아지는 눈물 대신 뜨겁게 고이는 피로 고통에서 벗어난다. 그는 눈에 보이지 않는 고통을, 오감으로 느낄 수 있는 고통으로 해결하려고 한다. 뼈가 부러지고 치아가 뽑히는 고통으로 희열을 만끽한다. 영화의 결말에 다가가게 되면, 이 파이트 클럽은 굉장히 자학적으로 보이게 된다. 파이트 클럽에는 주인공이란 없으며, 누구나 부상을 입을 정도로 가학적이기 때문에, 그곳에 들어가는 것은 자신의 안녕을 포기하는 행위기 때문이다. 잭이 자해하는 모습이 직접적으로 나오기도 하는데, 여기서 직유적으로도 비유적으로도 스스로를 죽음으로 몰아가는 그를 발견할 수 있다.
파이트 클럽이 기존의 회원들끼리만 주고받던 가학적인 폭력을 넘어서서 사회에 대한 테러를 자행하자, 잭은 이를 막으려고 한다. 누구나 싸우고 싶은 욕망은 있다며 이를 일깨워준 타일러를 없애는 것이 그가 생각한 유일한 강구책이다. 타일러를 자신의 보호자로 여겼던 잭은, 자신과 타일러를 부부라고 일컫기도 했다. 하지만 현실과 허상의 경계에서 이 둘을 구분할 수 있는 지표가 되는 말라와 달리, 타일러는 끊임없이 잭을 현실과 허상의 어느 한 쪽의 끝으로 몰아세우는 인물이다. 말라와 타일러 두 인물 모두 선과 악의 구분이 없는 캐릭터라는 점에서 잭은 더욱 이들 사이에서 갈등한다. 과연 그는 타일러를 지우고 회귀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 회귀만이 그가 가진 고통의 유일한 탈출구일 것인가?
2021년 11월 16일 chuls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