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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이브 마이 카(ドライブ・マイ・カー/Drive My Car, 2021)

by 우린

2021년 12월 19일 일요일, 씨네큐브 광화문에서 열린 '마이 드라이브 카' GV(이동진 평론가 진행)에 참석했다. 이후 2021년 12월 23일 목요일, CGV 오리에서 한 번 더 영화를 관람했다. 평소에는 영화를 본 후에 원작을 찾아서 읽어보는 편이었는데, 이번에는 원작을 읽은 후에 한 번 더 영화를 관람하는, 샌드위치 방식으로 영화를 접했다.


※영화를 보지 않은 분들에게는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주의 부탁드립니다.

※이 글은 GV에서 언급된 내용이 인용되어 있습니다.


movie_image (1).jpeg 출처: 네이버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ドライブ・マイ・カー/Drive My Car)'

줄거리

'가후쿠'는 아내 '오토'의 외도를 목격하지만 이를 함구하고, 없던 일처럼 덮어버린다. 어느 날 갑작스럽게 오토는 세상을 떠나고, 시간이 흘러 가후쿠는 히로시마에서 연극 제작에 참여하게 된다. 여기서 그는 전속 운전기사로 '미사키'를 소개받고, 아끼던 차량을 그녀에게 맡기게 된다. 한편 연극 오디션에 아내의 외도 상대였던 '다카츠키'가 나타난다.




고도를 외면하는 법
Waiting for Godot


가후쿠는 연출가이자 배우이며 오토는 각본을 창작하는 사람이다. 부부가 계획적으로 공동창작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들의 창작 과정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이들이 사랑을 나눌 때 창작이 시작된다는 점도 그러하지만, 오토가 운을 떼고 가후쿠가 이를 정리하는 과정이 반복되기 때문에 더더욱 그러하다. 가후쿠는 오토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얼마나 자전적인지 궁금해하기도 하며, 오토는 가후쿠가 정리해 주지 못하면 자신이 만든 이야기를 일절 기억하지 못한다. '야마가'라는 남학생을 짝사랑하는 여학생의 이야기가 중심적으로 영화 내내 다뤄지고, 이전에도 많은 각본이 이런 과정으로 창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가후쿠는 '고도를 기다리며'를 무대에 올리고 직접 연기한다. 이 작품은 사무엘 베케트(Samuel Beckett, 1906~1989)의 동명의 희곡을 원작으로 한다. 인물들이 '고도'를 기다리는 내용이지만, 그것이 사람인지 혹은 상징인지 알 수 없다. 고도를 신적인 존재 혹은 인간에게 필연적인 죽음으로도 보는 견해가 있다. 하지만 베케트 또한 '고도'가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는 정도로, 그들이 기다리는 것은 안갯속에 갇혀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를 조금만 다른 각도에서 보자면, 고도는 그 어떤 것으로도 해석될 수 있고, 그 누구나 고도를 기다릴 수 있다. 그렇다면 가후쿠가 기다리는 고도는 무엇일까?


오토의 입에서 나오던 말들이 가후쿠의 고도가 된다. 오토의 외도에 대해 알게 되자, 가후쿠와 오토의 창작에 변화가 생긴다. 오토는 평소처럼 가후쿠와 잠자리를 가진 후에 이야기를 시작하지만, 가후쿠는 다음날 이를 기억하지 못하는 척한다. 아내의 입에서 나오지 못한 말도 가후쿠의 고도였을 것이다. 그녀는 가후쿠에게 긴히 할 이야기가 있다고 말했지만, 가후쿠는 하염없이 시간을 보내다 귀가한다. 그녀가 부부생활의 최후를 통보할 것만 같은 짐작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쓰러진 오토를 발견하고 병원으로 옮기지만, 그는 끝내 오토의 마지막 말을 듣지 못하게 된다.


'고도를 기다리며'의 인물들은 결국 고도를 만나지 못하고 막을 내리게 된다. 이처럼 가후쿠도 무언가를 기다릴 수밖에 없는 체념적인 태도를 보인다. 하지만 연극과 달리 가후쿠는 회피하는 모습만 보인 것은 아니다. 가후쿠와 오토는 이전에 어린 딸을 먼저 떠나보냈다. 그 뒤로 자녀는 없었지만, 이것이 그들 부부의 최후는 아니었다. 그들은 죽은 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를 얼마나 사랑하는지에 대해 솔직하게 대화하며 상실의 슬픔을 정면으로 마주했다. 더 나아가 그들은 자녀 대신 이야기를 낳고 보살펴주는 것으로 서로를 위로했다. 이처럼 죽은 아이에 대한 죄책감과 상처는 그들이 기다리는 고도가 아니었다.


이렇게 가후쿠의 고도를 살펴보니 원작도 조금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다. 가후쿠는 자신이 기다리는 고도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고, 그래서 외면하고 회피할 수 있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가후쿠는 이것은 마주하는 법 또한 알고 있다는 것이다. 고도를 마주하지 않으려는 후회 가득한 핑계가 기다림이라는 탈을 쓰고 있었을 뿐이다.


movie_image.jpg 출처: 네이버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ドライブ・マイ・カー/Drive My Car)'




눈에 보이는 마침표
Audible Period


가후쿠의 연극은 독창적이다. 배우들은 다국적으로 구성되어 있어, 각자의 모국어(혹은 유창한 언어)로 연기하도록 연출한다. 대사와 행동으로 인물들이 완벽하게 소통해야 한다는 틀 안에서, 가후쿠는 소통의 의미를 재정의한다. 그는 완전한 소통만이 작품이 완성되는 것이라고 보지 않는 것이다. 특히 '유나'의 수화가 합류하면서 그가 정의하는 연극은 소통 그 이상의 의미를 갖게 된다.


배우들이 대본을 리딩 하는 방식 또한 특이하다. 이들은 각자의 대사가 끝나면 주먹이나 펜으로 책상을 두드려 소리를 낸다. 일명 눈에 보이고, 소리로 들리는 마침표다. 서로 다른 언어로는 완전히 소통할 수 없기 때문에, 이런 연습 없이는 각자의 대사가 얽혀버리기 일쑤였다. 또한 연습을 할 때에는 최대한 감정을 배제한 채로 대사를 읽는다. 이런 연습이 어느 정도 익숙해지자, 가후쿠는 감정을 더해서 연기할 수 있도록 한다. 이전에는 느껴지지 않던 반언어적인 요소들을 첨가되자, 배우들 사이에는 특별한 무언가가 생긴다.


가후쿠는 같은 방식으로 본인 배역의 대사를 암기한다. 상대 배역들의 대사를 또박또박 읽는 목소리를 카세트테이프에 담고, 운전할 때 수시로 듣는다. 이 대사들 사이에는 가후쿠의 대사가 들어갈 수 있도록 여백이 마련되어 있다. 이 목소리는 아내인 오토의 것이었는데, 그녀가 죽은 후에도 가후쿠는 같은 테이프로 연습을 해왔다. 앞서 다루었던 내용과 이어서 설명하면, 이 연습 방식은 다소 역설적이다. 그녀가 살아있을 때에는 그 목소리를 외면해왔지만, 그녀가 죽은 후에는 그녀의 목소리만 듣는 입장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연극을 제외하고도 이런 대화가 오고 가는 장면이 더 존재한다. 가후쿠의 차 뒷좌석에서 그와 다카츠키가 대화하는 장면이 바로 그것이다. 다카츠키는 가후쿠의 연출에서 오토의 각본이 느껴진다고 말하며 다소 위험해 보이는 대화가 시작된다. 특히 다카츠키는 오토를 높이 산다며, 가후쿠는 필히 행복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후 그들은 직접적으로 오토의 외도에 대해서 말하기 시작한다. 다카츠키는 내연남의 존재를 알고 있다고 털어놓지만, 그들의 대화는 언성 하나 높아지지 않고 대본 리딩처럼 담담하게 이루어진다.


어쩌면 이들은 대본 연습처럼, 서로 마주했을 때 어떤 대화를 나누게 될지 혼자서 연습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가후쿠는 자신을 두고 바람을 피우던 오토의 마음이 헤아려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또한 본인을 찾아온 다카츠키의 마음 또한 알 길이 없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다카츠키도 가후쿠를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마음은 알 수 없을지라도, 그 과정에서 자신에 대해서는 조금 더 알게 될 것이라고 다카츠키가 말한다. 이처럼 그들은 본인이 말하고 싶은 바를 꾹꾹 눌러 담다 보니, 더 단단해진 스스로를 발견하게 된다.


movie_image.jpg 출처: 네이버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ドライブ・マイ・カー/Drive My Car)'




평화는 평화로운가
Absolute Peace


영화 속 인물들은 한겨울의 호수와 닮았다. 살얼음으로 뒤덮여 물결 한 점 없는 조용한 호수처럼 살아간다. 조금 전 큰 돌이 호수 위로 떨어졌지만 그 아무도 그것을 보지 못했고, 돌은 깊은 호수로 빠르게 가라앉았다. 그리고 그 위로 다시 아주 얇은 얼음이 얼기 시작한다. 이전과 달라진 것 하나 없어 보인다. 그제서야 가후쿠와 미사키는 이 평화가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깨닫기 시작한다.


"나는 제대로 상처받았어야 했다."


가후쿠는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다. 그는 아내의 외도를 직접 목격했지만, 그것으로 결혼생활을 끝내고 싶지 않을 만큼 그녀를 사랑했다. 그래서 그는 이를 모르는 척, 아무 일도 없었던 척을 연기하기로 한다. 배우인 그에게 있어서 이는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아내에게 털어놓는 것이 힘든 일이었다. 갑작스러운 아내의 죽음이 찾아왔지만, 그 이후로도 그는 이 연기를 그만둘 수 없다.


미사키는 불의의 사고로 어머니를 잃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미사키가 원하던 온전한 정신과 모성을 가진 사람은 아니었지만, 그녀에게는 어머니가 전부였다. 그녀가 수준급의 운전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술집에 나가시는 어머니를 차로 모셔야 했던 가혹한 어린 시절 때문이었다. 하지만 운전을 가르쳐주는 순간만큼은 어머니에 대한 사랑을 느꼈다. 또한 어머니가 미사키에게 폭력을 휘두른 이후에 나타나는 어린아이의 인격 '사치'는 미사키의 친구나 다름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산사태로 인해 집과 어머니가 토사에 묻히게 되고, 여기서 겨우 빠져나온 미사키는 그대로 운전을 해서 멀리 떠나게 된다.


가후쿠도 미사키도 사랑하는 상대를 잃었지만, 이들의 감정적으로 온전하게 슬퍼하지 못한 것으로 묘사된다. 아내를 잃을까 봐 외도에 대해서 터놓고 말하지 못했던 가후쿠는 결국 뇌졸중으로 오토를 잃게 되었다. 정신분열증을 앓고 있던 어머니가 미사키로 하여금 사랑과 증오를 동시에 느끼게 만들었지만, 그 모순을 미사키는 끝까지 받아들이지 못한다. 이들은 모두 자신의 상처를 외면하고 직시하지 못한 인물들이다. 게다가 그 관계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하직했기에, 살아있는 가후쿠와 미사키가 이 죄책감으로 엉켜버린 감정을 오롯이 감내해야 한다.


가후쿠와 미사키는 다카츠키의 입을 통해서, 오토가 들려주던 이야기의 결말을 듣게 된다. 야마가가 좋아서 그의 집에 몰래 들어가던 여학생은, 자신이 들어왔었다는 징표를 남기는 동시에, 그의 물건을 훔치기도 한다. 이런 그녀의 행동은 날이 갈수록 대범해졌고, 결국 이 학생은 집을 들어온 누군가와 마주치기까지 한다. 그 사건이 있은지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고, 그녀는 야마가의 집을 다시 한번 찾아간다. 하지만 현관 자물쇠가 바뀌고 감시 카메라가 생긴 것 외에는 이전과 다를 게 없었다. 그녀가 그 집에서 사람과 맞닥트리면서 확실히 불경한 일이 일어났지만, 이 세상은 여전히 평화롭다. 그래서 그녀는 그 평화에 동조하려고 하지 않기로 한다. 이는 가후쿠와 미사키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고통을 감내하는 대신 본인의 탓이 아니라고 서로 위로한다.


movie_image.jpg 출처: 네이버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ドライブ・マイ・カー/Drive My Car)'





출처: 다음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ドライブ・マイ・カー/Drive My Car)'













2021년 12월 19일 씨네큐브 광화문

2021년 12월 23일 CGV 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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