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쿠라우(Bacurau, 2019)
2021년 8월 31일 수요일, 롯데시네마 월드타워에서 열린 '바쿠라우' 시사회에 참석했다. 이번에도 역시 예고편도 보지 않은 채로 영화를 관람했다.
※영화를 보지 않은 분들에게는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주의 부탁드립니다.
※해당 시사회는 키노라이츠에 응모 및 당첨되어 참석할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시장으로 출마한 ‘토니 주니어'와 바쿠라우 사람들은 서로 적대적이다. 바쿠라우의 '룽가'가 나서서 담판을 지으려 했지만, 이 과정에서 사람들이 죽고 댐도 막혀버린다. 한편 할머니 '카르멜리타'의 부고를 들은 '테레사'는 식수차에 물을 가득 싣고 단수된 바쿠라우로 향한다. 장례식을 마친 후 마을은 위성지도에서 사라지고, 통신이 마비되는 등 기이한 일들이 연달아 일어난다. 어린아이를 비롯한 사람들이 총에 맞아 죽게 되자 바쿠라우 사람들은 직접 나서기로 한다.
물
Water
영화는 의료진 테레사가 약품과 음용할 물을 식수차에 실어 오며 시작된다. 그녀는 바쿠라우의 족장이었던 할머니 카르멜리타의 장례식에 참석한다. 할머니가 땅에 묻힐 때, 관에서 맑은 물이 흘러나오는 장면이 지나가며, 바쿠라우에게 물이 얼마나 중요한지 기이하게 묘사된다. 이후 마을 사람들은 식수차로 배달된 물을 이용하기 시작하는데, 마치 멈춰있던 마을이 활기를 찾은 듯하게 느껴진다. 특히 폐차처럼 보이는 스쿨버스 안에 있는 식물에게 물을 주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스쿨버스란 일정한 학군의 학생들을 태우는 목적을 갖고 있지만, 오랜 기간 멈춰있는 듯한 스쿨버스는 그 기능을 상실한 듯하다. 이 마을에서 끊긴 것은 물길뿐만 아니라 주변지역과의 관계일 것이다.
물을 끊어버린 토니 주니어 세력은 아이러니하게도, 바쿠라우에서 선거 유세를 하며 생필품을 나누어준다. 이 품목에는 '브라솔 4'이라는 이름은 가진 진통제가 포함되어 있었다. 바쿠라우의 의사인 도밍가스 부인은 이를 설명하며 중독성이 있다고 말한다. 이처럼 토니 주니어는 당근과 채찍으로 바쿠라우 사람들을 장악하려고 한다. 그는 물을 끊음으로써 자신으로 하여금 생명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권력이 있는 사람임을 보여주었다. 또한 학교에 책을 기부하거나 중독성이 있는 진통제를 포함한 생필품을 보급하면서, 자신에게 의지해야 함을 필력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생필품에 '관'도 들어가 있는데, 총을 직접 들이대는 것보다 더 살벌한 느낌을 준다.
이 영화에서는 바쿠라우 사람들이 왜 토니 주니어 세력과 갈등 중인지 알려주지 않는다. 그렇기에 관객은 이 두 세력 어느 쪽에도 쉽게 동화되지 못한다. 오히려 갈등의 원인이 직접적으로 등장하지 않음으로써 관객은 다양하게 그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다. 댐을 막아버리고, 식수차에 총탄 구멍을 만들어도 격렬하게 저항하지 못하는 마을 사람들을 보여주며, 토니 주니어가 이들을 얼마나 바보같이 취급하는지 관객들은 알고 있다. 하지만 관객들의 눈에는 바쿠라우를 어리석게 여기는 토니 주니어가 더 우매해 보인다. UFO 모양의 비행 물체로 마을 사람들을 관찰하는데, 오히려 바쿠라우 사람들은 이것이 드론이라고 정확하게 알고 있는 장면에서 더욱 그러하다. 관객들은 이 분노가 이미 들끓고 있음을, 그리고 반드시 터질 것을 이미 알고 있다.
이처럼 물은 본질적으로 생명의 의미를 갖고 있기에, 갑작스럽게 막혀버린 댐 아래의 바쿠라우는 생명이 위협받는 위치에 놓인다. 하지만 하류뿐만 아니라 댐의 상류에도 여러 문제가 일어난다. 순환하며 정화시키는 물이 한곳에 고여버리기 때문이다. 댐을 닫으며 단수를 일으킨 시장 후보 토니의 세력은 부패한 권력인 것이다. 또한 이로 야기된 갈등에 여러 사람들 사이에선 유혈사태가 일어나며, 단수는 간접적인 방식으로도 파국을 야기한다. 물의 흐름이 끊긴 것으로 그려지는 바쿠라우의 고립 사태는 단절된 모든 방향으로 썩어간다.
확성기와 이어폰
The megaphones and the earphones
바쿠라우 사람들은 대면, 그리고 비대면의 대화를 나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창궐하고 있는 지금, 비대면의 대화방식은 우리에게 아주 익숙하다. 하지만 바쿠라우 사람들의 비대면 대화는 현제 코로나 팬데믹의 그것과 다르다. 이들은 먼저 카르멜리타의 장례식에 모여서 대화를 나눈다. 직접 얼굴을 보며 조의를 표하고, 오랜만에 찾아온 듯해 보이는 테레사와 포옹하며 환영인사를 나눈다. 같이 식사를 하기도 하고 연인들은 사랑을 나누기도 한다.
확성기를 이용한 대화 방식도 볼 수 있다. 'DJ 우르스'가 마이크를 잡고 바쿠라우의 날씨, 가게에서 판매하는 물건의 상태 등 크고 작은 소식을 마을 전체에 들리도록 방송한다. 의견을 주고받는 게 대화라고 생각한다면, 이는 대화가 아니라고 여길 수도 있다. 하지만 바쿠라우에서는 이런 비대면 방식의 대화도 중요한 소통이 된다. 왜냐하면 토니 주니어 일당의 방문을 미리 알려주기 때문이다. 이들이 마을 초입에서 포착되면, DJ 우르스에게 이 소식이 보고되고, 정확한 도착시간을 예측해서 방송한다. 이런 소식이 들리면, 마을 사람들은 하던 것을 모두 정리하고 눈에 띄지 않는 곳으로 숨는다. 마을로 향하는 이방인이 목격될 때에도 보고된다. 이들을 피해서 숨으려고 하지는 않지만, 바쿠라우에 위협을 가하는 사람일 수도 있으니 경계태세로 전환하는 것이다.
이런 소통은 토니 주니어 측에서도 사용한다. 바쿠라우의 학교에 기증한 책을 덤프트럭에 한가득 싣고 와서는 마을 사람들에게 선거 유세를 펼친다. 엄청난 수의 책들을 흙바닥에 부어버리는 행위는 기증과는 정반대의 모습처럼 보인다. 이는 오히려 기증보다는 '처분'에 가까워 보이기도 하지만, 토니 주니어는 이 모습을 잘 촬영하라고 자신의 수행인에게 명령한다.
의견을 많은 사람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서 확성기를 사용하는 것은 DJ 우르스나 토니 주니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지만 바쿠라우 사람들은 이 두 소리를 분명하게 구별한다. DJ 우르스의 소리는 즉 공동체의 소리고 귀중한 정보지만, 토니 주니어의 것은 듣기 싫어도 들리는 소음처럼 대한다.
킬러들이 착용하고 있는 이어폰은 앞서 언급한 확성기와 대비된다. 확성기는 모두가 숨 쉬는 공기 속으로 소리를 퍼뜨려 개방적이지만, 킬러들의 귓속에 들어 있는 이 이어폰들은 폐쇄적이다. 킬러들은 이 이어폰에서 나오는 지령을 따르는 듯 보이지만, 관객의 입장에서는 이들의 대화를 들을 수가 없다. 특히 킬러 조직의 '백인'으로 불리는 사람만 이어폰을 착용하고 있는데, 더 나아가 오로지 백인만이 그 나머지를 죽일 권리가 있다는 '인종 우월주의'적 만행을 저지른다. 또한 브라질 국적의 두 사람이 바쿠라우 사람들을 죽인 것은 '동족상잔'이라며, 본인들이 자행하는 살인과는 '결'이 다르다고 말한다.
박물관과 지도
The history museum
and the map of Bacurau
바쿠라우는 그들만의 박물관을 갖고 있다. 이 지역의 역사와 전통을 볼 수 있는 이곳은 지구촌 어디에나 있는 박물관과 유사해 보인다. 하지만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마을 사람들뿐이다. 킬러 조직에서 보낸 남녀 한 쌍의 바이커들이 바쿠라우에 방문했을 때, 사람들은 박물관을 추천하지만 이들은 일정이 있다고 둘러대며 그곳을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그리고 어느 날 이 마을이 GPS 상에서 모습을 감춘다. 학생들과 지리를 공부하던 선생님들은 여러 장비 속에서 바쿠라우를 찾으려 하지만, 위성사진에선 이곳의 흔적을 찾을 수 없다. 하는 수없이 선생님은 인쇄된 지도를 펼쳐들고, 그 지도에는 주변 지역 없이 바쿠라우의 모습만 나타나있다. 하지만 바쿠라우의 존재를 정의하는 데에는 부족함이 없다.
크지 않은 땅에 건물도 몇 채 없는 바쿠라우는 이렇게 외지인에게 잊힌다. 이전에도 존재감이 큰 마을이 아니었기에 '잊혔다'라는 표현보다는 '존재가 지워졌다'라는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바쿠라우를 이미 알고 있는 토니 주니어의 경우에도, 이 작은 마을의 역사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고 여긴다. 바쿠라우 사람들은 오직 그들 스스로만 마을의 존재감을 증명하고 있었다.
이후 킬러 조직이 그들의 마을에 통신과 전기를 차단한다. 슈퍼마켓의 직원으로 지냈던 조슈아, 교도관으로 일하고 있는 테리 등 일반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이 조직의 일원이다. 아버지의 총들을 항상 동경해왔다는 사람부터 이혼한 아내에 대한 복수심으로 살상을 저지르려는 사람까지, 그들의 동기를 다양하다. 하지만 그들의 목적은 오로지 인간 사냥이다. 그들은 관광코스처럼 이런 살상을 즐겨왔던 것으로 묘사된다.
우리들에게 왜 이러는지 묻는 도밍가스 부인의 질문에 킬러 조직의 우두머리 '마이클'은 답을 하지 않는다. 도밍가스 부인이 말하는 '우리'는 바쿠라우 공동체에서만 의미가 있을 뿐, 킬러들에게는 그저 사냥꾼이 노리는 사냥감과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킬러들은 숨어있는 마을 사람들을 찾아내려고 하고, 그중 한 명이 박물관에 발을 들여놓는다. 처음으로 마주하는 바쿠라우의 역사를 흘겨보던 그는, 어느 구역의 소장품들이 비어있는 것을 발견한다. 그리고 바쿠라우의 역사는 이미 흘러간 것이 아닌, 현재까지 진행되고 이어지고 있는 '흐르는 역사'가 되어 무자비한 외지인들 앞에 나타난다.
2021년 08월 31일 롯데시네마 월드타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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