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임 유어 맨(Ich bin dein Mensch, 2021)
2021년 9월 9일 목요일, CGV 용산아이파크몰에서 열린 '아임 유어 맨' 시사회에 참석했다. 이번엔 포스터만 보고 고른 영화였다.
※영화를 보지 않은 분들에게는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주의 부탁드립니다.
※해당 시사회는 키노라이츠에 응모 및 당첨되어 참석할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고대 언어를 연구하는 '알마' 박사는 휴머노이드 로봇 '톰'과 3주간 시간을 보내며, 그를 평가해야 하는 임무를 맡게 된다. 이런 로봇은 완벽한 반려자가 되기 위해, 참가자의 뇌를 스캔하는 등 충분한 분석을 거쳐 제작된다. 그의 궁극적인 목표는 참가자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톰의 노력에도 알마는 쉽사리 마음을 열지 않으며 그를 기계처럼 다룬다. 자신이 소중하게 여기던 과거와 많이 닮아있는 톰을 마주할수록 알마의 마음은 그에게 궁금한 것이 많아지는데, 그들의 미래는 어떻게 진행될까?
과거는 언제나 미래로 이어지는가
Does past always go to future
휴머노이드 로봇 톰을 테스트하기로 한 알마는 관계자로부터 조언을 듣는다. 자연스러운 반려자가 되려면 그에 걸맞은 추억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늘에서 뚝 떨어졌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은 시작에, 알마와 톰 사이의 과거는 텅 비어있었다. 그들은 과거뿐만 아니라 처음으로 조우한 곳도 텅 비어있는데, 그곳의 사람들이 모두 홀로그램으로 제작된 환영이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관심 없어 보이는 알마를 대신해서, 톰은 이 둘이 코펜하겐에서 열린 컨퍼런스에서 아름답게 만났다는 과거를 만들어낸다. 알마는 그때의 기분이 어땠는지 톰에게 질문하고, 톰은 마치 추억을 회상하듯 묘사한다. 그의 실감 나는 이야기에, 알마는 그 과거를 공유하는 듯한 느낌이 잠시 들었을지도 모른다.
아카드어 등 고대 언어를 연구하는 알마는 과거에 대해 다른 견해를 갖고 있다. 과거에는 풍부했던 언어들이 현재에 이르지 못하고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알마의 가슴 아픈 경험들로 비춰볼 때에도 그녀는 과거가 미래도 죽 이어진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이전에 율리안와 헤어진 이후로, 그와의 과거를 현재로 만들지 못했기 때문이다. 더 이전으로 가본다면, 어릴 적 덴마크에서 만났던 '토마스'와의 기억은 너무나도 아름답지만, 그 역시 과거에 머물 뿐 현재에는 만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 보면, 현재에 존재하지 않는 것일지라도 그것의 가치를 알아보는 것이 그녀가 하는 연구의 사명이다. 과거가 현재까지 이어지지 않는 것이라고 해도 과거의 의미는 사라지지 않는 것이다. 오히려 고대 언어의 입장에서는 발굴로 인해서 다시 미래가 생긴 것이기도 하다. 마치 알마의 아버지가 찍은 사진들처럼 이미 멈춰버린 것을 현재로 불러낼 수 있는 과거도 있는 법이다.
한편 알마의 그런 신념이 좌절되는 일이 일어난다. 현재 알마가 진행하고 있는 연구를 다른 학자가 3개월 앞서서 발표한 자료가 있다는 말에 알마는 박탈감을 느낀다. 그렇다고 해서 알마가 몰두해 온 연구가 의미 없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톰은 알마에게 말한다. 과거가 없던 톰이 연구의 미래가 사라졌다고 생각하는 알마를 위로하는 것이다.
이처럼 알마는 과거를 두 가지의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는 위치에 있고, 그 사이에서 갈등하는 것으로 보인다. 과거라는 시점은 미래를 감히 내다볼 수 없는 곳이고, 미래에서는 사라졌던 과거만들어진 과거 또한도 조망할 수 있는 곳이다. 알마에게 톰은 과거 없는 현재이기에 그 존재가 낯설고 부담스럽다. 하지만 알마가 말없이 나가면 톰은 그녀가 올 곳에 찾아갔고, 알마 또한 집을 나간 톰이 있을 곳에서 그를 조우한다. 톰은 알마의 과거를 탐구했고, 알마는 자신의 기억 속 장소에 들어온 톰을 마주한다.
93%와 7%
Why 7%
톰은 여느 휴머노이드 로봇처럼 인간에게 '적정 수치'를 계산해 준다. 예를 들어 운전하는 알마에게 15cm, 12˚ 그리고 27%와 같은 구체적인 숫자들을 제시하며, 더 편하게 운전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려고 한다. 톰은 인간의 목적은 '행복'이라고 여기며 그것을 달성할 수 있도록 계속해서 제안을 산출해낸다. 하지만 알마는 '계산'보다는 '해석'에 더 가까운 사람이기 때문에, 이런 톰의 모습을 부담스러워한다. 로맨틱한 상황을 원하는 독일 여성이 93%라는 확률을 갖고 톰은 알마를 위해 그 분위기를 만들어줬지만, 알마는 그런 걸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러자 톰은 알마가 93%의 나머지 7%에 속하는지 묻는다.
이처럼 톰의 계산들은 정확할 수는 있지만, 모든 것을 알아낼 수는 없는 한계를 갖고 있다. 특히 에픽 페일'Epic fail' 엄청나게 부끄럽고 창피한 실수를 뜻함. 사람들이 넘어지거나 깜짝 놀라는 장면이 담긴 홈비디오가 그 예다.을 접하고 나서는 인간의 감정이 바로 그러한 부분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누군가 실수로 넘어졌을 때 모두가 부끄러워하기보단, 그것을 보고 즐기는 모습을 포착한 것이다. 카페 옆자리의 사람에게 이 부분을 설명해달라고 말하지만, 그 사람은 이를 자연스럽게 여길뿐이었다.
알마 역시 인간의 감정을 톰에게 설명하지 못한다. 인간을 끊임없이 궁금해하고 탐구하는 톰에게 알마는 수학적 방식뿐만 아니라 해석적인 방식으로도 톰에게 알려주지 못한다. 오히려 톰이 제시하는 것들에 반대 입장을 자주 취하게 되고, 톰에게도 반대로 행동하라고 말한다.
이 조언을 들은 톰은 알마의 요구에 정확하게 반대로 행동하기 시작한다. 이는 알마의 명령을 따르거나 골려주려는 의도 때문이라고 해석하긴 어렵다. 우리가 상대를 위할 때는 반대로 행동할 때도 있기 때문이다. 기계처럼 톰을 예측해보려던 알마는, 어느 순간부터 그를 대하는 데에 난항을 겪기 시작한다. 그리고 자신의 명령을 따르지 않는 톰에게 알마는 불만을 표출한다.
하지만 톰은 알마에게 오히려 알마의 오류를 그녀에게 일깨워준다. 알마는 쾌락을 위해서 그를 이용하려고 하고, 실제로는 마음속으로 품고 싶지만 겉으로 밀어내는 행동을 하는 자신을 곧 알게 된다.
이처럼 톰은 수학적 알고리즘으로 인간을 이해하려고 하지만, 이는 쉽지 않다. 또한 알마는 자기 자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톰은 알마가 7%에 속하는 알마를 93%로 잘못 파악했다. 그리고 알마는 자신이 93%에 속하지 않고 7%에 속하는 이유를 알지 못한다.
아버지같이
As my father
알마는 형제 코라와 함께 나이 드신 아버지를 돌아가며 돌본다. 아버지 집의 벽은 여러 사진들로 가득 차있다. 알마와 코라의 어린 시절이 담긴 사진도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아버지는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는 듯한 모습으로 그려지는데, 바지를 입지 않겠다는 오기를 부리거나 손자를 종종 잊어버리기도 한다. 과거의 추억들이 가득한 이 집에서 아버지의 기억이, 벽에 걸린 사진처럼 바래져 가고 있었다.
알마는 아버지의 보호자 역할을 하며, 곁을 지킨다. 어느 날 알마는 아버지를 예상치 못한 곳에서 발견한다. 아버지 집에 가는 도중, 도로 옆 숲에서 머리에 피를 흘리는 그를 발견한 것이다. 리모컨이 이 근처에 있다며, 같이 찾아보자는 아버지를 간신히 설득해서 집으로 데려간다. 집은 강도가 들어온 흔적들로 가득했지만, 금전적인 피해는 크지 않았다. 이를 조사한 경찰은 그 강도들은 아마추어인데, 있는 거라곤 값어치 없는 사진들만 있는 집으로 들어왔다는 게 근거였다. 이 말을 들은 알마는 이 사진들이 얼마나 소중하고 값진 것인지 말하며 화를 낸다.
보호자와 피보호자의 관계는 톰과 알마 사이에도 존재하게 된다. 아버지의 삶을 우선시하던 알마처럼, 톰은 알마의 행복을 위해 노력한다. 자신만의 기준이 있다고 주장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알마에겐 말이 통하지 않을 억지처럼 보인다. 알마의 도움마저 필요 없으니 찾아오지 말라는 말을 알마는 들어줄 수가 없다. 따뜻한 눈빛이 필요 없다는 알마의 말을 들은 톰 역시 그녀를 이해하지 못한다.
톰과 함께 해서 행복했던 것처럼 보였던 알마는, 돌연 그를 공장으로 돌려보내기로 한다. 이전에 그녀는 자신도 결국 아버지처럼 혼자서 늙어갈 거라고 비관했었다. 톰이 알마의 집에서 나가지만, 알마의 삶은 톰이 오기 전과는 다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알 수 없는 고집을 피우던 아버지의 모습을 자신에게도 발견한다. 아버지와 닮아가고 있다는 회의적인 추측은 어쩌면, 아버지처럼 되겠다는 보잘것없고 냉소적인 다짐이었을지도 모른다.
2021년 09월 09일 CGV 용산아이파크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