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아 Vs 그루지아

영화 속 도시이야기 '분노의 질주: 더 얼티메이트'

by 신천옹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조지아 등 흑해와 카스피해 사이에 위치한 캅카스(코카서스) 지역은 가기가 편하지만은 않다.


그나마 조지아는 대한민국 여권을 가진 사람이라면 1년 무비자 거주가 가능해 입국비자가 필요한 나머지 2개 국가보다 여행이 훨씬 수월하다. 같은 조지아이지만 조지아정부의 미승인국인 오세아티아나 압하지야만 들어가지 않으면 조지아 자체 여행에 별무리는 없다.

조지아5.JPG 트빌리시 전경. 가운데는 성삼위일체성당

2024년 기준 범죄발생률도 26.1로 한국(24.9)과 별반 차이가 없다. 안전하게 여행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이는 새벽 입국에서 바로 확인할 수 있었다. 터키 이스탄불에서 비행기를 이용해 조지아 수도 트빌리시에 도착한 시간이 새벽 1시를 조금 넘긴 시간이어서 걱정이 살짝 됐던 게 사실이었다.


하지만 공항은 물론 슈퍼마켓, 약국에다 은행까지 24시간 영업하는 곳이 많아 깜짝 놀랐다. 오히려 옛 소련 시절 그루지아가 아니라 새롭게 태어난 조지아의 역동성마저 느낄 수 있었다.

조지아20.JPG 트빌리시 루스타밸리거리의 노점

트빌리시의 인구는 서울의 10분의 1 수준인 134만 명이고 면적은 서울보다 조금 적다.


이전에 그루지아로 불렸던 조지아는 1991년 옛 소련(소비에트연방)의 붕괴 이후 지금까지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소련에서 갈라져 나온 여타 신생 국가처럼 나름의 색깔을 보이며 세계의 일원이 돼가고 있다.


조지아란 국호는 2005년부터 조지아 정부 요청으로 서방세계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는데 중국, 북한을 비롯한 일부 국가에서는 여전히 러시아어인 그루지아를 사용하고 있다. (조지아사람들은 특히 러시아사람들이 자신들을 그루지아사람이라고 부르는 걸 매우 싫어한다.)

조지아9.JPG 솔로카키언덕. 오른쪽에 조지아의 어머니상이 보인다

그러나 최근 정세로 볼 때 조지아가 다시 그루지아로 바뀔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우려는 기우가 아닐 수도 있을 것 같다.


2024년 12월 친러집권당 ‘조지아의 꿈’이 강행한 간선제 대선을 통해 축구선수출신 미하일 카벨라슈빌리 후보를 대통령으로 선출하면서 러시아 밀착이 보다 가시화될 전망이기 때문이다.


정치 이야기가 너무 길어졌다. (남의 나라 정치를 손가락질할 형편이 아닌데도…).

조지아16.JPG 트빌리시 루스타밸리거리. 가운데는 성조지 동상

어쨌든 2024년 초 조지아의 꿈이 발의한 이른바 ‘언론통제법’ 반대 시위가 열린 트빌리시 중심 루스타밸리거리가 바로 영화 ‘분노의 질주: 더 얼티메이트(Fast & Furious 9 THE FAST SAGA)’ 촬영으로 인해 2019년 8월 한때 봉쇄된 거리다.


블록버스터 촬영장이 몇 년 만에 반정부 시위로 인해 시민과 경찰의 대처 현장이 된 셈이다. 루스타밸리거리는 그나마 넓지만 나머지 트빌리시 도심은 다리가 살짝 아프긴 해도 걸어 다녀도 될 정도다.

조지아13.JPG 그림처럼 독특한 조지아 알파벳이 써진 간판

맨 먼저 눈길을 끄는 건 모음 5개와 자음 28개로 구성된 조지아 알파벳의 동글동글한 형태가 이색적인 간판이다.

간판만큼이나 독특한 건축물들도 많다. 영화에서 화면 가득 TBILISI 자막이 나오는 사진 맨 오른쪽에 보이는 건물도 그중 하나다.


흡사 보드게임의 하나인 젠가 같이 보이는 이 건축물은 옛 소련 시대에 유행했던 잔혹주의 양식으로 지어진 구조물 중 가장 아름답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전 자동차 도로부 건물이었으나 현재는 조지아 은행 본부로 사용된다.


일반인이 건물 내부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건 아쉽지만 어차피 건축물은 외관으로 승부하지 않는가. 건축물 건너편 쿠라강 너머가 사진 찍기 좋은 포인트다.

화면 캡처 2025-04-11 082514.png
화면 캡처 2025-04-11 082655.png 젠가 같은 조지아은행본부 건물(출처:IMDb)

펑화의 다리 역시 트빌리시의 상징적 건축물 중 하나다. 보행자 전용 다리이며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를 연결한다.


유리병 모양 건축물이 있는 평화의 다리 옆 리케공원에서 트빌리시의 상징인 ‘조지아의 어머니상’으로 가는 케이블카를 탈 수 있다. 걸어서 올라가도 20분이 채 안 걸린다.

조지아11.JPG 리케공원과 평화의 다리

조지아의 어머니상은 1958년 만들어진 20m 높이의 조각상으로 왼쪽에는 와인잔, 오른쪽에는 검을 들고 있다. 친구에게는 와인을 주지만 적에게는 무기로 응징한다는 의미다. 이곳에서 트빌리시 전체를 내려다 볼 수 있다.


낮에도 좋지만 야경도 아름답다.


잘 알려지지 않아 여행객들은 찾지 않지만 ‘조지아의 어머니상’ 대척점이라고 할 수 있는 신시가지 높은 언덕에 위치한 수도원과 공원묘지 옆 공원에서도 트빌리시 전체를 내려다볼 수 있다.

조지아15.JPG 트빌리시 조지아의 어머니상

건축물보다 더 인상적인 건 건물 담벼락 아래에 군데군데 있는 길거리 중고책서점이다. 과거 동유럽 공산권 국가 도시들에서 볼 수 있기는 하지만 트빌리시는 규모(?)도 크고 숫자도 많다.


책을 파는 사람이나 사는 사람이 아무 곳이나 앉아 책을 보는 모습은 그들 정서의 한 단면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트빌리시만의 독특한 색감이라고 할 수 있다.

조지아6.JPG 트빌리시 시내 웬디스 매장

트빌리시에서 또 하나 특이했던 점은 미국 프랜차이즈들이 눈에 많이 띄는 가운데 특히 웬디스(Wendy’s) 매장이 많다는 점이다.


한국에서는 사라진 패스트푸드매장이 트빌리시에만 10개가 넘는다는 게 낯설었지만 그게 뭐 대수인가. 숙소에서도 가까워 하루에 한 번 정도 들렀다. 매장도 크고 내부 인테리어도 쾌적하게 잘 되어 있어 아주 편하게 이용했다.

조지아1.JPG 트빌리시 시내 맥도널드매장

미국 프랜차이즈 역시 정치 환경에 따라 변화하게 될지 모르겠지만 역사의 흐름을 되돌렸을 때 오는 거센 저항과 그로 인한 충돌로 인해 ‘조지아’란 이름이 힘을 못쓰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앞으로 한 번 가기는 쉬울지 몰라도 뒤로 한 걸음 후퇴하기엔 포기해야 할 것이 너무도 많기 때문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