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비극의 어둠을 뚫고 여명에 선 사라예보

영화 속 세상이야기 '투와이스 본'

by 신천옹

세상 수많은 도시와 우리 인생은 참 많이 닮아 있다.


아무리 화려하게 보이는 도시라도 겉보기와 달리 굴곡진 이야기 하나 정도는 감추고 있다. 어두운 시간이 길었거나 짧았거나 많았거나 적었거나의 차이일 뿐이다. 그 어둠이 지금도 현재진행형인 곳도 물론 있다.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수도 사라예보는 결코 짧지 않았던 어둠을 딛고 지금은 여명에 선 도시라고 할 수 있다.

IMG_6236.JPG 사라예보 도심을 흐르는 밀랴츠카강

도심 한 복판에 위치한 건물 외벽에 남은 총탄 자국은 그 길었던 어둠을 대표하는 아이콘이다. 메울 수도 있지만 ‘잊지 말자’는 의미에서 그대로 두고 있다고 한다.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는 보스니아인(48%), 세르비아인(37%), 크로아티아인(14%)으로 구성돼 있다.


국토는 보스니아인과 크로아티아인 중심의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연방과 세르비아인 중심의 스릅스카 공화국으로 나눠져 있다. 크로아티아의 남동국경을 맞대고 있는 브르치코 행정구는 양측 모두에 속한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발칸 반도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이반 안드리치의 수상에 결정적 역할을 한 소설 ‘드리나강의 다리’가 위치한 비셰그라드는 스릅스카공화국에 위치해 있다. 그가 살던 당시에는 나라전체가 보스니아로 불렸다.

IMG_6244.JPG 사라예보 시립도서관

수도인 사라예보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연방 땅에 있다.

지금까지 설명으로도 이해가 잘 되지 않을 것이다. 나라 이름만큼이나 영토와 국가 구성, 정치시스템 등이 매우 복잡하기 때문이다. 웹으로 정보를 어느 정도 파악하고 나서 현지인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도 의문은 쉬이 사라지지 않았다.


지도를 펼쳐놓고 보지 않고 말로만 들으면 이해하기가 매우 어렵다. 솔직히 지도를 펼쳐놓고 봐도 점선으로 나뉜 영토만 눈에 들어올 뿐이다.

IMG_6251.JPG 1차세계대전의 촉발지점인 라틴다리

당초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는 과거 6개의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 중 하나였다. 유고슬라비아 연방이 해체를 겪은 1991년부터 2001년 사이의 전쟁을 통해 독립했다.


내전이라고도 불리는 이 전쟁은 발칸반도의 비극이라 이름 불려야 마땅하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 나갔다.


1991년 52만 명에 달했던 사라예보의 인구가 사라예보 포위전 즉 1992년 4월 5일부터 1996년 2월 29일까지 총 1천425일 동안 지속된 세르비아군의 폭격으로 이후 30만 명으로 줄었다. 아직도 이때 인구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IMG_6256.JPG 사라예보 도심

사라예보 포위전 당시 소위 인종청소라는 의미의 제노사이드는 물론 여성들의 성적 피해도 엄청났다.


영화 ‘투와이스 본(Twice Born)’(왜 '트와이스'라고 하지 않았는지 알 길은 없다)은 이 소재를 모티브로 시대적 비극을 그려낸 작품이다. 페넬로페 크루즈를 비롯한 다국적 배우들의 연기가 비극적 시대 상황과 어우러져 아픔과 감동을 동시에 선사한다.

특정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당시 사라예보시민 누구도 주인공이 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울림이 컸다.


사라예보의 상징 중 하나이자 영화에 파우바라(모스크 앞에 세워진 분수)만 잠깐 등장하는 ‘가지후스레브-베그’ 모스크 역시 이때 심하게 파괴됐다. 16세기 오스만튀르크시절에 세워진 이 모스크는 전쟁이 끝난 후 시리아와 사우디의 도움으로 재건됐다.

sarajevo-4505752_1280.jpg 사라예보 바슈카르시아 바자르(출처:Pixabay)

이처럼 사라예보엔 여느 유럽 도시와 달리 모스크와 히잡을 쓴 여성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약간의 차이라면 다 인종과 다 종교가 전쟁의 불씨가 됐던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지만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는 듯 사라예보에서 느끼는 이슬람은 무언가 ‘자유’스럽다.


특히 사라예보 중심에 있는 시장인 바슈카르시야 바자르(Baščaršija Bazaar)는 다양한 인종, 다양한 종교의 사람들이 팔고 사과 구경하느라 그 '자유'스러움을 만끽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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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의 종교로 인한 비극은 없어야 된다는 국민적 공감대의 발로이기도하지만 예부터 하루가 멀다 하고 지배세력이 바뀌면서 개종에 대한 거부감이 거의 없다는 점에서 그 이유를 찾아도 될 것 같다.


실제로 오스만튀르크 시절부터 무슬림으로 개종하면 세금과 신분상승의 혜택이 주어지면서 종교를 바꾸는 게 이 나라에서는 전혀 낯설지 않게 됐다고 볼 수 있다.


무엇보다 사라예보는 제1차 세계 대전을 촉발시킨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의 황태자와 부인의 총격사건이 있었던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총격 장소인 라틴다리는 여전히 건재하다. 다만 당시 다리 옆에 있었던 ‘모리츠 쉴러’ 카페는 현재 기념관이 됐다.

IMG_6239.JPG 사라예보 모스크의 미나렛

비스마르크가 죽기 전 발칸반도를 “지금 유럽의 화약고”라고 말했는데 1차 세계대전에서 그게 확인됐고 유고슬라비아 내전이 그러한 걸 보면 역사는 되풀이된다는 말이 실감 난다.


물론 사라예보도 늘 비극만 지속된 곳은 아니었다. 유고슬라비아의 '리즈' 시절도 있었다.

사라예보의 길거리 키오스크나 기념품가게에서 파는 마그네틱에서 힌트를 찾을 수 있다. 어디서나 빠지지 않고 걸려 있는 마그네틱이나 사진이 바로 ‘티토’다.

Josip_Broz_Tito_uniform_portrait.jpg 유고슬라비아 전 대통령 티토(출처: Wikipedia)

2차 대전 후 전쟁이 끝나면서 파르티잔에 의해 군주제 폐지가 이뤄지고 유고슬라비아 연방정부가 수립되면서 티토는 연방의 초대 총리 겸 국방장관으로 선출됐다. 이후 유고슬라비아는 공산 독재 국가의 길을 걷게 되지만 티토는 냉전 체제 아래 중립, 비동맹을 표방하면서 실리를 찾았다.


티토는 미국과 소련 어느 나라의 눈치도 안 보고 제3세계 국가들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비동맹 운동을 주도했을 뿐 아니라 다 민족과 다 종교 국가인 유고슬라비아를 동유럽에서 잘 사는 나라로 만들었다.


아쉽게도 티토 사후에 감춰져 있었던 인종, 종교 문제들이 결국 불거져 나오기 시작했고 지금에 이르렀다.

화면 캡처 2025-04-18 113724.png 영화 '투와이스 본'의 한 장면(출처:IMDb)

무슬림들이 절반이 넘다 보니 사라예보 요리는 ‘야채친화적’인 게 많다. 그렇다고 해도 영화에 나오는 바제니 레스토랑은 소고기 굴라쉬 맛도 훌륭하다.


숙소 주인 추천으로 가 본 레스토랑 바체니(Bazeni)는 결혼식 장소이기도 해서 주말엔 즐거운 분위기를 느껴볼 수 있었다.

레스토랑 손님으로 갔음에도 먹을 걸 권해서 살짝 난감하기도 했지만 잔치는 어느 나라든 인심이 후하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한 자리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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