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자와 산 자의 유쾌한 공존,
멕시코 시티(하)

영화 속 도시이야기 '스펙터' 외

by 신천옹

애(哀·tristeza)


애니메이션이지만 멕시코 문화를 잘 보여줘 2018년 아카데미 장편애니메이션상을 받은 ‘코코(Coco)’.


이 영화에서 중증조 할머니가 미겔(Miguel)에게 불러주던 ‘우는 여인(La Llorona)’은 이보다 앞서 이미 15년 전에 더욱 애잔한 버전으로 영화에서 소개된 바 있다.


바로 ‘프리다(Frida)’다. (프리다는 영화 코코에 자화상으로 아래 사진처럼 등장하기도 했다.)

화면 캡처 2025-04-25 073916.png

멕시코시티의 또 다른 아이콘인 프라다 칼로의 일대기를 다룬 이 영화는 그녀의 정열과 아픔이 고스란히 잘 드러나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6살 때 소아마비를 앓아 오른쪽 다리가 불편했던 프리다는 의사가 되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던 똘똘한 아이였다.

L1090671.JPG 프리다 칼로 박물관인 카사 아술(Casa azul)

하지만 18살 때 발생한 교통사고로 그녀는 그녀의 말처럼 ‘다친 게’ 아니라 ‘부서졌다’. 당시 깁스를 한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두 손으로 그림을 그리는 일뿐이었다.


이때 이미 화가로서 입지를 다진 디에고 리베라가 등장한다. 1929년 8월 스물두 살의 프리다는 그녀보다 21살 연상이면서 이미 2번이나 결혼한 경험이 있는 그와 결혼했다.

L1090663.JPG 프리다가 교통사고 후유증을 보여주는 보조의료용구들

그녀는 남편을 위해 못할 게 없는 여인이었지만 디에고의 아내로 사는 건 고통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디에고의 여성 편력은 죽을 때까지 지속됐다. 프리다는 디에고가 멍에로 던져버린 고독 속에 평생을 헤어나지 못하고 살았다.


그 고독과 고통이 그대로 남아 있는 곳이 그녀의 박물관인 ‘푸른 집(Casa Azul)’은 그녀가 살던 집이었다. 푸른 집에서는 디에고의 흔적도 볼 수 있다. 물론 디에고의 흔적은 멕시코시티 전역에서 프리다보다 훨씬 더 많이 남아있다.

L1090365.JPG 디에고 리베라의 올림픽경기장 그라피티

디에고는 지금은 흔하게 볼 수 있는 그라피티 장르를 개척한 3인방(시케이로스, 오로스코) 중 한 명이기 때문이다.


한때 공산주의에 심취해 있던 그는 핏속에 들어있던 혁명의 DNA를 그라피티로 승화시킨다. 멕시코 원주민 문화 속에 자리한 죽음과 주술의 이미지를 형상화해 멕시코 역사에 대입시킨다.

L1090762.JPG 레스토랑에서 노래를 부르는 마리아치

멕시코시티 대통령궁에 있는 아즈텍시대부터 멕시코혁명기까지의 서사시(La Epopeya de Mexico)가 그의 작품이다. 라틴아메리카에서 최초로 개최된 제19회 올림픽 메인 스타디움이었던 멕시코 올림픽경기장과 멕시코 국립자치대학교에서도 그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그렇지만 이런 모든 것들이 프리다에게 위로가 될 순 없었다. 디에고의 예술적 명성만큼이나 프리다의 고통도 깊었지만 끝까지 그를 품으려 했던 프리다는 이제 멕시코시티의 슬픈 아이콘으로 남았다.


‘이 외출이 행복하기를

그리고 다시 돌아오지 않기를…….’

프리다의 유언이다.


락(樂·felicidad)


007 시리즈 24번째 작품인 영화 ‘스펙터(Spectre)’의 도입부에서는 멕시칸들의 죽음을 읽는 시각을 엿볼 수 있다. 그 출발점은 헌법광장이라고 하는 소칼로(Zocalo)이다.

L1090580.JPG '스펙터' 도입부에 나왔던 183m 높이 라틴아메리카타워

‘독수리가 뱀을 물고 앉은 호숫가의 선인장이 있는 곳에 도읍을 세우라’라는 아스텍 건국의 전설이 담긴 멕시코 국기가 광장 중앙에서 펄럭이는 모습을 보면 도시의 희로애락을 이해하는 출발선상에 섰다고 보면 된다.


소칼로광장은 007이 악역과 헬기에서 격투를 벌이던 장면 아래로 보이던 수많은 관중이 운집한 곳이다. 16세기 스페인 정복자들이 이 광장을 중심으로 동서남북을 가로질러 지금의 멕시코시티 뼈대를 만든 곳이다.

화면 캡처 2025-04-25 074530.png

스펙터의 시작 부분.

가면을 쓴 시민들이 거리를 빽빽하게 메운 채 행진을 하고 있다. 한눈에 봐도 많은 사람들이 미소 띤 해골 가면을 쓰고 죽은 사람을 나타내려 했다는 걸 알 수 있다.


이 퍼레이드가 해마다 10월 31일부터 11월 2일까지 3일간 지속되는 ‘죽은 자들의 날’ 축제다. 중남미 종교의 특성이기도 한 토속신앙과 가톨릭의 결합이 죽은 자들을 산 자들이 초대하는 축제의 바탕이 되었다.


죽은 이들이 1년에 1번 가족과 친구들을 만나러 세상에 내려온다는 믿음을 축제로 승화시킨 것이다. 10월 31일에는 제사를 올릴 제단을 준비하고 11월 첫날에는 죽은 어린이 그리고 11월 2일에는 죽은 어른들을 위해 기도를 올린다.

L1090957.JPG 인류학박물관 내부 모습

‘죽은 자들의 날’ 축제는 멕시코시티에 국한된 게 아니며 축제와 관련된 기념품이나 제수용품들 역시 축제 시기에만 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멕시칸들이 이처럼 죽음을 너그럽게 그리고 삶의 연장으로까지 받아들이는 증거는 더 있다.


멕시코시티 북동쪽, 버스를 1시간 정도 타고 가면 여의도 면적의 4배 정도인 고대 도시 테오티우아칸이 있다. 이집트 기자에도 규모면에서 뒤지지 않는 피라미드의 도시 테오티우아칸은 신의 도시로 불렸다.

L1090828.JPG 테오티우아칸의 달의 피라미드

여기에 있는 달의 피라미드에는 인간의 심장을 신에게 바쳤던 흔적이 남아있다. 1세기에 시작돼 7세기에 갑자기 사라져 버린 테오티우아칸을 세운 고대인들의 전설 중 가장 흥미로운 이야기가 달의 피라미드에 숨어있다.


이들에게 있어서 죽음은 승리에 대한 보상이었다. 지금의 축구와 비슷한 경기를 해서 MVP를 차지한 선수는 신에게 심장을 바치는 ‘영광’을 누릴 수 있었다. 빨리 죽어서 신에게 가는 것이 큰 보상이었던 것이다.


이는 과테말라를 중심으로 번성했던 마야문명권에서도 볼 수 있다. 마야인들은 지금 현실의 세계를 ‘꿈’이라고 믿었다.

L1090845.JPG 태양의 피라미드에서 내려다본 테오티우아칸

꿈에서 빨리 깨어나면 자신들의 본향으로 돌아간다고 믿었다. 자신들이 실제 살았던 곳은 어둠의 세계, 즉 죽음의 세계이기에 죽음을 기쁘게 받아들였다고 한다.


어린이들이 죽어도 슬픔이 크지 않았던 것은 일찍 꿈에서 깨어 원래의 나라로 돌아가기 때문이라고 믿었다는 것이다.

L1090935.JPG 인류학박물관의 아이콘인 생명의 나무 분수

이런 전설들이 현실과 뒤섞이면서 죽음은 이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삶 속에 늘 가까이 있고 내게서 혹은 우리에게서 분리할 수 없는 일상의 존재였을지 모르겠다

죽은 자와 산 자가 아무 거리낌 없이 만났다가 다시 헤어지는 곳, 고대 문명과 현대 예술이 절묘하게 섞여 있는 곳, 태양을 사랑하는 그들의 열정과 환한 미소 그리고 생존을 위한 현실적 투쟁이 도시 전체에 역동성이 되어 흘러넘치는 곳, 바로 멕시코시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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