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7일 수요일
손자는 가족과 함께 영국 주재원으로 파견된다. 인사를 하기 위해 당시 할머니가 거처하고 있던 고모의 집으로 향한다.
할머니에게 뭐라고 말을 해야 마음이 편하실지 생각해 본다. 할머니는 영국이 어딘지도 모르고, 손자가 쉽게 올 수 없다는 것도 모른다. 손자는 주재원이라는 것에 대하여 설명을 하고, 일 년에 한 번은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할머니가 고모 집에 머무르게 되었기에 홀로 지내실 때보다는 마음이 가벼워졌지만, 여전히 할머니를 외로운 곳에 홀로 남겨둔 느낌이 들어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렇게 할머니와 작별인사를 하고 예정된 일정에 따라 손자는 영국으로 떠난다.
몇 개월이 되지 않아 손자는 본사에 회의가 있어 한국에 올 기회가 생긴다. 한국에 오자마자 할머니를 찾는다. 고모에게 인사를 하고, 할머니가 거처하고 계시는 방으로 들어선다. 할머니는 이불 위에 앉아서 멍하니 뭔가를 바라보고 있다.
할머니에게 ‘할머니 나 왔어’라고 말하자, 할머니는 ‘니가 누구여?’라고 하며 손자의 얼굴을 이리저리 살펴본다. 손자는 믿을 수 없어 할머니에게 얼굴을 들이밀며 ‘나 영호야, 할머니 손자’라고 힘주어 말한다.
할머니는 ‘우리 영호가 언제 이렇게 컸어?’라며 다시 손자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본다. 할머니의 기억 속에는 손자의 어린 모습만이 남아 있었다. 할머니는 앞에서 말하고 있는 사람이 자신이 키운 장손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손자는 착잡한 마음으로 발길을 돌린다. 자신을 세상 그 누구보다 사랑해 준 존재로부터 지워진다는 것은 생각보다 큰 상실감을 안겨주었다.
그러나 몇 년간 할머니를 찾아볼 수 없는 상황이 될 수도 있으니, 할머니가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 꼭 나쁜 일은 아니라며 스스로를 위안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