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01월 18일 토요일
주말 아침, 아내 그리고 큰 아이와 함께 카페에 가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친절의 필요성에 대하여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아이는 얼마 전에 겪은 일을 말한다.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어떤 어른에게 인사를 했는데, 완전히 무시를 당했다는 것이다.
그런 일을 겪게 되면, 다음부터 사람에게 인사하고 싶은 마음이 완전히 사라질 수밖에 없다. 너무나도 당연한 반응이다.
나는 아이의 이야기를 들으며, 아이가 겪은 이런 현상들이 오랜 세월 번지고 팽배해져,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에 보편화되고 고착화되었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내가 경험한 미국이나 영국의 경우, 인사나 양보가 일상화가 되어있다. 모르는 사람에게도 눈을 마주치면 자연스럽게 인사를 한다.
양보도 그렇다. 엘리베이터에 타고 내릴 때, 공공장소의 문을 드나들 때, 운전을 할 때 등 수많은 일상의 공간에서 양보와 배려는 우리가 숨 쉬는 공기와 같이 모든 곳에 자연스럽게 스며져 있다.
우리가 선진국이라고 부르는 그런 나라들에는 왜 그런 문화가 형성되고 정착되어 있을까? 그것은 아마도 친절이 그만큼 가치 있고 중요한 것이라는 인식이 보편적으로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아이들은 부모나 어른들이 하는 행동을 습득하고, 자연스럽게 그것을 따라 하게 되어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현실은 어떨까?
내가 사는 아파트만 하더라도, 먼저 인사를 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고, 먼저 인사를 해도 짧게 ‘네’라고 답변하는 사람들이 많다. 심지어 젊은 사람들 중에도 ‘네’라고 성의 없이 반응하는 경우가 있다.
나는 그들을 비난하지 않는다. 그럴 권리도 자격도 없다. 누구 한 사람이 아닌, 이 사회가 그렇게 만든 것이다. 다만, 사람들이 친절함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기를 바랄 뿐이다.
나는 사람에게 친절할 때 행복하다. 먼저 인사하고, 양보하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손을 내미는 그런 순간들 속에서 행복감을 느낀다. 사람은 누구나 그럴 것이다. 단지, 사회 분위기가 그렇지 못하기에 하지 않는 것이다.
물론 사람들에게 친절하지 않아도 살아가는데 아무런 문제는 없다. 아파트에서 이웃을 만나도 모른체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친절이 나 자신과 타인을 행복하게 만드는 소중한 가치가 있다는 것, 그리고 나의 아이들이 그런 가치를 알게 되고, 아이들의 삶이 행복해지는데 도움이 된다는 것 등을 놓치게 되는 것이다.
무관심과 외면은 사회를 병들게 한다. 반면, 친절과 양보와 배려와 같은 정신적 가치는 나 자신과 사람들의 일상에 행복을 증진시킨다.
큰 아이에게 인사는 우선적으로 나 자신을 위한 것이기에, 무시당했다고 또는 거부당해 상처받을까 두렵다고 사람에 대한 친절을 멈추지 말라고 조언해 주었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이 세상에는 진리라는 것이 있다. 기분이 상하고 상처받을 수는 있지만, 그 진리를 추구하며 살아가다 보면 그 가치를 알게 되고, 인격이 훌륭해지고, 인간으로서 온전해지고, 행복해지는 것이다.
나는 아이들이 공부를 잘하고, 좋은 대학에 다니고, 좋은 직장에 다니는 그런 사람이 아닌, 인격이 훌륭한 존재로 이 세상을 살아가기를 바란다.
나는 그것이 인간이 추구해야할 가장 소중한 가치이며, 진정한 행복이라고 믿는다.